뉴트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 얼굴이 제법 사랑스러운지 그레이브스의 얼굴엔 옅은 웃음이 피어났다. 길고 푹신한 의자에 편히 몸은 기댄 채 책상 앞에서 씨름하는 남자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러다 가끔 그런 시선에 돌라 고개를 든 뉴트와 눈이 마주치곤 했다.
옵스큐러스 사태가 일어난 지 약 두 달이 지났지만, 미국 마법 의회의 마법 보안부 국장이자 마법 법률 집행부 부장을 맡고 있던 남자는 아직도 정상적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집에 머무는 뉴트에게 자연스럽게 대화가 많아졌다.
“…….”
이럴 때면 늘 그답지 않은 소소한 이야기가 한마디씩 따라붙었다. 절대 농담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농담하면 놀라게 마련이다. 뉴트는 몇 번이나 놀란 뒤에야 겨우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아마 오늘의 주제는 희망인 것 같았다. 뉴트는 만년필을 쥐고 있느라 새까맣게 잉크가 묻어난 손을 한 채 퍼시벌 그레이브스를 바라보았다. 네? 짧게 반문하면서 시선을 돌린다.
“당신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
“…….”
“듣고 싶은 것도 많고.”
“…….”
“그러니까…….”
“그럼 그렇다고 하지 왜 희망이 있냐고 물어봐요.”
이러고 싶지 않은데 뾰족한 말이 툭 튀어나온다. 그레이브스는 그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고, 뉴트는 곧바로 후회한다. 늘 이런 식이었지만, 도저히 고쳐지지 않았다.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난 청년이 긴 의자 앞에 가서 그대로 주저앉는다. 그리곤 무릎에 이마를 댄 채 한참이나 숨을 골랐다.
“…뉴트.”
“미안해요.”
“…….”
“난 그때…정말. 놀라서.”
“…….”
“당신 잘못이 아닌 거 다 아는데…그게…….”
“뉴트.”
“…….”
안타깝게도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은 언변이 좋지 않았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다 둥물과 있는 편이 훨씬 좋다고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알지만 그걸 그럴듯하게 꾸며내지 못했다. 그레이브스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
“뉴트. 일어나봐. 응?”
“…….”
바지가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레이브스는 두 손으로 뺨을 그러쥐었다. 얇은 피부가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그대로 천천히 손을 움직이면 이미 축축하게 젖은 눈이 보인다. 그래도 다리를 끌어안은 채 꼭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던 스물아홉의 청년은 눈앞의 남자가 이끄는 대로 무릎걸음을 걸었다.
“정말 나빴어.”
“그래. 내가 다 나쁘지.”
“난 정말 당신이 죽은 줄 알고 다시는 미국 땅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 했는걸.”
“다행이야. 이렇게 돌아올 수 있어서.”
“…….”
“살아 있잖아.”
“몰라요.”
“뉴트. 나의 뉴트. 얼굴 좀 보여줘.”
“…….”
“응?”
“정말…….”
뉴트는 그레이브스의 이런 표정에 약했다.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남자가 친절하게 눈을 맞춘다. 그리고 눈썹을 축 늘어뜨리면서 웃는다. 누가 이런 얼굴을 거절하겠는가. 뉴트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손끝에 축축한 습기가 옮아붙었다.
“살이 더 빠진 것 같네.”
“누구 때문인데…….”
“그것도 사과하지.”
“…….”
“오늘은 같이 저녁이라도 먹지.”
“…….”
“늘 그랬던 것처럼 밖으로 나가진 못하겠지만 말이야.”
“당신은…….”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 더 아팠다. 뉴트는 그냥 그레이브스의 몸에 푹 안겨버렸다. 단단한 손이 등을 두드려준다.
“늘 이렇게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는데, 날 구해주고. 뉴욕도 구하고. 테세우스가 들었으면 정말 자랑스러워 할 거야.”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화났어?”
“아니…그냥.”
입술이 비죽비죽 움직인다. 형과 친구인지라 어쩔 수 없이 어린애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덜덜 떨면서 고백 아닌 고백을 할 때도 그랬다. 좀처럼 사람과 눈을 맞추지 못하는 녀석이 드물게 고개를 꼿꼿하게 세웠다. 물론 금방이라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결국, 입술을 떼지 못하고 그레이브스의 손에 편지만 쑤셔 넣고 돌아섰다. 그 일이 벌써 십 년도 넘었다.
“내 희망은 당신이 무사히 복귀하는 것뿐인데…….”
“다른 건?”
“다른 건 이미 이루어졌는걸.”
“…….”
“정말로.”
“진짜?”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하긴 나의 아르테미스는 거짓말에 서툴지.”
“…….”
짐짓 웃으면서 놀린다. 뉴트는 한마디 더 할까 하다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 생활도 며칠만 지나면 지겨워 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뉴트를 다시 이끈 것은 그레이브스의 생환 소식이었다. 부엉이에게 받은 편지를 여는 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줄 알았다. 희망은 부질없다며 꼭꼭 묻어버렸는데, 그새 또 심장을 타고 자랐다.
“너무해.”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겠어.”
“…….”
“내 사랑스러운 아르테미스의 얼굴에 수심이 떨어지질 않으니.”
“당신은…정말.”
결국, 얼굴이 푹 달아오른 채 말을 어물어물 넘기고 말았다.
*
물론 지금은 위기를 넘겼지만, 처음엔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다행히 죽기 전에 발견되었지만, 무슨 주문을 쓰고 어떤 약초를 썼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신비한 동물에 의한 후유증이 겹치기까지 했다. 결국, 뉴트는 다시 미국행 배에 오르고 말았다. 단숨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나라와 나라 간엔 지켜야 할 규칙이 너무 많았다. 허락된다면 당장 바다를 헤엄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만난 그레이브스를 보고 눈물부터 닦았다. 다리엔 흉한 상처가 남았고, 의식을 차리는 덴 일주일이 걸렸다. 몸의 후유증을 생각하지 않고 쓴 공격 주문과 저주를 푸는 데는 내로라하는 오러 무리가 모두 붙어서 치료를 해야 했다. 다행히 강한 남자라 그 치료를 견뎠지만, 다른 상처는 더는 마법으로 손댈 수 없었다.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에 의지해 야했고, 눈엔 흐릿한 상처가 남았다.
“이건…….”
그레이브스가 의식을 차렸을 때 뉴트는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깊고 단단했던 눈동자가 약간 바랜 상탤 불안하게 움직였다. 투명한 것 같기도 하고, 딱 그곳만 색이 빠진 것 같기도 했다. 주문에 걸린 것은 아니었고, 고문의 여파도 아니었다.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건…기생 식물이네요.”
“뭐라 그랬죠? 뉴트?”
티나가 펄쩍 뛰었다. 뉴트는 그레이브스 앞에서 말을 해야 할까 말까 고민했다. 늘 당당한 남자는 어서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남자는 이 순간에도 늘 꼿꼿했다.
“한…번 본적이 있어요.”
“…….”
“세상에 많이 남지 않은 종인데, 숙주의 눈을 둥지 삼아 안쪽으로 자라죠.”
“…….”
“고통은 없어요. 다만.”
“다만?”
“다만 마력을 지속해서 필요로 해요.”
“…….”
“숙주의 마력을 빨아먹고 자라죠. 그냥 그렇게 자라다 딱 한 번 포자를 뿜어낸 후 죽어버려요.”
“…….”
“그런 다음 그 포자가 다음 숙주를 찾는데, 그게 좀 어렵거든요. 그렇다고 공기 중에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요즘은 거의 멸종 되었다고 알려져 있죠.”
“그래서 지금 내 몸 안에 기생 식물이 있다?”
“그런 셈이네요. 미스터 그레이브스.”
“그린델왈드가 그랬겠군.”
“…….”
뉴트는 입술만 깨물면서 고개를 숙였다.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당장에라도 안아주고 싶은데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뉴트는 자진해서 남았다. 물론 그레이브스의 몸을 치료하는데 가장 필요한 사람이긴 했다. 눈치껏 모든 오러를 물린 티나는 자신의 상사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갔다.
“큰일이군.”
“…….”
“귀찮은 걸음을 하게 했어.”
“…….”
“뉴트 스캐맨더.”
“…….”
다짜고짜 다가와 가슴팍을 퍽 밀어버린 뉴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기우뚱하며 침대 위로 넘어간 그레이브스는 찌르르 울리는 발목을 느끼며 눈을 찌푸렸다. 이러면 뼈가 어긋나 스캐맨더. 짐짓 엄한 목소리였지만, 눈앞에 보이는 사람을 개의치 않았다.
“나한테 어떻게 이래요.”
“…….”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슬퍼하고.”
“…….”
“희망을 잡고 또 잡다가 이제야 겨우 포기했는데.”
“미안하네.”
“…….”
“내가 가기 전에 발견되면 좀 좋아요.”
“미안해.”
“정말.”
펑펑 울기 시작하는 청년을 달래는 손이 바빠졌다. 어릴 적 모습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크게 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속에 담아둔 서러움을 다 토해내려는 것처럼 울기 시작한 뉴트는 눈이 퉁퉁 붓고 나서야 겨우 울음을 그쳤다. 내내 그 몸은 안고 있던 그레이브스의 어깨는 이미 물을 끼얹은 것처럼 축축해졌다. 겨우겨우 몸에서 떨어지더니 그레이브스의 발 상태를 보고 또 울기 시작한다. 아까 밀어서 넘어뜨린 것은 뉴트가 아닌 모양이었다. 모질지도 못한 청년은 금방이라도 툭 부러질 것 같았다.
“이러다 앓아눕겠어.”
“당신만 할까.”
“…….”
“난 생각보다 튼튼해요. 그건 알고 있어요?”
“알지.”
“…….”
“이 미안함을 어쩌면 좋을까.”
“알면 됐어요.”
이런 걸 보면 어린 티가 난다. 조금 있으면 서른이 되는 청년은 계속 투정을 부린다. 그레이브스는 가늘게 웃으면서 어린 연인을 껴안았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시기조차 오락가락 한데다, 얼마나 의식을 잃고 있는지도 몰랐다.
“뉴트. 아르테미스.”
“…….”
“내 희망이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딜 가겠어.”
“…….”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
“당신도 살아있어서 고마워요.”
“내가 큰 빚을 졌어.”
“으응. 그건 아니죠.”
뉴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뭔가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레이브스는 퉁퉁 불은 얼굴이 너무 귀여워 그대로 품에 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만 들게 해 입술을 묻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선 연한 걱정이 묻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