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11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센티넬버스 au입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속으로 곪아가는 캡틴이랑 기억 조각을 찾는 버키가 나옵니다 취향탈 수 있어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물론 한번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나면, 조금씩 기분은 나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버키는 여전히 잠을 잘 자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스티브도 따라서 내내 선잠을 잤다. 무슨 이유인진 알 수 없지만 버키가 스티브의 가이드 형질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긴 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불안해하고, 그 감정이 수습이 안 되면 예전처럼 발작 증세를 보일 수 있다는 말도 함께 전해 들었다.
스티브의 입장에선 친구가 자신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손을 벋으면 항상 닿을 만한 거리에 앉아있는 녀석은 팔이 조금 불편한 것 빼곤 꽤 침착한 표정이었다. 아니. 오히려 메탈 암이 날아간 그 순간부터 무엇인가 내려놓은 사람마냥 흔들거렸다. 마치 바람 불면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빛이 바래버린 녀석은 자꾸 땅에 발을 붙이지 않고 그냥 붕 떠 있었다.
“버키?”
“왜 그래?”
“아니…그냥.”
“별일이네.”
고개를 한쪽으로 슬쩍 기울이던 녀석은 곧 흥얼흥얼 가사를 알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누가 알려줬는지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혹시나 그 노래가 세뇌의 증거라면 더는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자신도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럴 때면 스티브는 한쪽 손에 턱을 괸 채 내내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운 일이 계속 생겼다. 발작이 줄어들고 나자 정신은 조금 더 돌아왔고, 말도 많아졌다. 결과적으로 옛날 일을 하나둘 기억해내고 있었지만, 더불어 떠오르는 하이드라의 기억에 괴로워했다.
“…….”
“버키. 왜 그래.”
“내가 죽인 게 맞아.”
“뭐?”
“내가 그랬어. 스티브. 다들 내가 죽였어.”
“버키.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야.”
“하지만 내 손에 피가 묻었어. 옆에서 자꾸 그들의 비명소리가 들려.”
“…….”
“기분이 이상해. 스티브.”
이럴 때면 스티브가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가이드 능력도 조절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혈청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하염없이 품에 안아주고 진정하라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접촉하면 좀 더 빨리 진정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 온 탓도 있지만, 버키는 남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 좀 더 빨리 진정하곤 했다. 사람을 원하면서도, 그들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그런 여석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간 오랜 친구는 미묘한 감정을 품었다. 좋아한다. 존경한다. 이런 일차적인 감정은 절대 아니었다. 이것저것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뒤섞여 만들어진 깊고 깊은 것은 끝을 알 수 없었다.
“쉬…버키. 그냥 내 심장 소리에 집중해.”
“…….”
“천천히 숨 쉬고. 응?”
“…….”
“괜찮아. 곧 마음이 가라앉으면 그런 거 들리지 않을 거야.”
“…….”
“괜찮아.”
끊임없이 괜찮다고 말하는 스티브의 목소리에 버키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눈을 감아도 그 앞에 항상 피를 뒤집어쓴 괴물이 보였다. 괴물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새빨간 발자국이 남았고, 그 발자국을 따라 아는 얼굴이 기어 나왔다. 그렇다고 눈을 뜰 수도 없었다. 보이는 것은 늘 같았다.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오면 피 냄새가 났다. 그럴 리 없는데, 뇌가 착각이라도 한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 말이 되지 못한 기묘한 말이 귓가에 들리고 피 냄새가 코끝까지 차오르면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럴 때만 스티브는 버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귀를 막아주며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버키. 괜찮아. 차라리 날 봐.”
“…….”
“날 봐. 다른 곳 보지 말고.”
“…스티브.”
뻣뻣하게 얼어있던 입술에서 간신히 친구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눈은 여전히 꼭 감은 채 스팁의 옷을 꽉 그러쥐었다. 셔츠에 주름이 쫙쫙 갈 정도로 힘이 들어가는 걸 보자 스티브는 몇 번이나 등을 토닥거렸다. 아무리 힘을 빼라고 귓가에 소곤거려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럴 땐 솔직히 방법이 없었다. 스티브가 버키의 턱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그리고 입술에 부드럽게 입술을 맞춰갔다.
“…….”
그 순간 귀를 통해 뇌를 잡아먹으려던 녀석들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아. 버키의 입술이 조금 벌어지더니 그대로 스티브에게 달라붙었다. 꼭 어미 젖을 찾는 강아지 같았다. 이 입술을 놓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굴었다. 스티브는 불규칙하게 뛰는 버키의 심장이 진정할 때 까지 오래오래 하고 싶은 만큼 입술을 맞췄다. 목 안으로 울던 것이 꿀꺽 넘어갔다.
정신이 돌아오면 물론 굉장히 민망해했다. 스티브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한 채 자꾸 땅만 바라보았다. 그런 친구가 귀여웠는지 스티브는 내내 웃었다. 사실 이렇게라도 둘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놓였다. 버키가 힘들어 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제대로 된 가이드의 보호 한 번 받아보지 못한 녀석은 스티브의 애매한 형질에도 쉽게 반응했다. 마치 마약에 취한 사람 같았다.
“버키…괜찮아?”
“…응.”
“그러니까 너무 억지로 기억하려 하지 마라니까.”
“해야 해.”
“…….”
“내가 저지른 일이 팔이 날아갔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센티엘네 관한 자료도 요청 한 거였으니까. 난 이제라도 과거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어.”
“그건 의무가 아니야. 버키.”
“속죄 같은 거지.”
“그런 말 아니야.”
“난 이 상태가 편해. 차라리 이렇게 괴로워하면서도 조금씩 과거가 기억난다는 것이 기쁘기까지 해. 도대체 내 기억이 없는 동안 나는 얼마나 괴물이었을지…….”
버키가 입술을 말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늘 자신을 몰아세우고 죄인처럼 그늘로 숨어들어 가려 한다. 스티브는 태양 밑에 서서 그런 친구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버키는 차마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해와 그늘의 중간지대에 걸쳐있었다.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잡는 손이 스티브라는 사실 때문이리라.
“그래서 내가 있잖아. 세뇌 코드 없앨 수 있어.”
“…쉽지 않아.”
“버키!”
“내가 알아. 그건 이미 내 머릿속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어.”
“…….”
“마치 내 몸을 잡아먹으려는 이 형질처럼 말이야.”
“…….”
“그렇다고 그렇게 울상을 지으란 소리는 아니었는데. 여전하구나.”
버키가 스티브의 얼굴을 슬슬 쓰다듬었다. 스티브는 그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눈을 감으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잘린 팔 응급조치를 취하려 했는데, 이렇게 버키가 불안해하니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스티브. 뭐 할 말 있어?”
“넌 못 속이겠다.”
“넌 항상 그래. 고민이 있으면 여기에서부터 티가 나니까.”
버키가 미간을 쿡 찔렀다. 아.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그 팔 좀 어떻게 치료하면 안 될까?”
“…왜?”
“저번에도 아파서 잠 못 자는 거 알고 있어.”
“그거야…항상 그랬는데.”
“게다가 신경 연결이 되어있던 곳인데 그렇게 내버려두면 어떡하려고 그래. 나중에 다시…….”
“굳이 메탈암을 또 달고 싶진 않아.”
“…….”
“물론 어깨에 새겨져 있던 별은 내가 짊어져야 할 죄의 무게지. 하지만 내 몸에 또 그런 무기가 생긴다면…다음번 내가 폭주했을 때 누가 날 막겠어.”
“…….”
“그런 거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버키,”
“난 괜찮아. 스티브.”
물론 괜찮다는 건 순전히 거짓말이었다. 보통 팔보다 몇 배나 무거운 메탈 암 을 버티기 위해 버키의 뼈는 자연스럽게 변형이 되고 한쪽으로 쏠렸다. 일종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뒤틀린 몸에서 갑자기 금속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니 오히려 몸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곤 했다.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부터 신경까지 스티브는 내내 걱정이 됐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별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
“의수까지 붙이라고 말은 하지 않을게. 제발 떨어져 나간 단면이라도 조금 수리를 받으면 안 될까?”
“꼭 그래야겠어?”
“네가 아픈 걸 더는 못 보겠어.”
사실 버키가 스티브의 말을 거절할 리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둘은 서로 얽힌 채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스티브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으로 쳐다보면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결국, 단면만 수습하기로 하고 나서야 버키는 간신히 스티브의 제안을 허락했다.
“치료받고 산책하러 갈까?”
“스티브…우린 여기 놀러 온 거 아닐 텐데.”
“아까 의무실 뒤쪽에 사람이 안 오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셔서 말이야.”
“누가 보면 팔자 편하다고 욕할 거야.”
“괜찮아.”
그 괜찮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둘은 알지 못했다. 버키를 데리고 며칠 만에 방 밖으로 나왔다. 여느 호텔만큼 좋은 방이라 딱히 감금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막상 밖으로 나오니 숨이 트이긴 했다. 계속 이렇게 단맛을 보게 되면 사람을 그것을 갈구하게 된다. 버키는 희망이란 것이 얼마나 지독한 녀석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 했는데, 자신의 친구는 그런 꼴을 두 눈 뜨고 보질 못했다.
“…아.”
“신경 쪽이라 어쩔 수 없어요.”
“…….”
“어깨부터 등 일부분까지 모두 이식된 상태라 마취제도 소용이 없고, 아마 그냥 수리하는 것은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텐데, 지금은 수리 정도의 사안이 아니니까…….”
“버키. 괜찮아?”
“괜찮…아. 응. 괜찮아.”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버키가 입을 콱 다물며 의자 손잡이를 그러쥐었다. 처음 신경이 끊어질 때 왜 아프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응급처치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팠다. 입에 뭐라도 물었으면 좋겠는데. 여기까지 생각하다 순간 온몸이 콱 굳어버렸다. 마우스피스가 입안에 쳐넣어 지면 곧 그 기계가 다가온다. 행복에 잠시 취해 그 끔찍한 기억을 잊고 있었다.
“반즈 씨? 긴장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곧 끝납니다. 나중에라도 이식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모두 죽일 순 없으니까요. 고통이 덜어지진 하겠지만, 신경이 살아있으니 완벽하진 않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다시 기구를 들었다. 뭔가 타는 냄새가 나고 또 온몸에 식은땀이 쭉 솟았다. 아픈 것을 아프다 말하지 못한 채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빌었다. 차라리 정신이 없을 때 하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하니 스스로가 너무 웃겨서 약간 덜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물가물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엉망진창으로 잘려나간 부위를 깔끔하게 덮어씌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뭉툭하게 어깨 아래로 아무것도 없는 모습은 볼 때마다 낯설었다.
“잘 참았어. 이제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지.”
“…….”
이 녀석은 캡틴 아메리카이면서 이렇게 금방 울먹이는 표정을 한다. 누군가 이런 모습의 캡틴 아메리카를 본다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친구를 보며 버키는 애써 괜찮을 것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
그러다 발걸음이 뚝 멎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괴물이 스티브 옆에 서서 새빨간 웃음을 짓고 있었다. 팔을 날렸다고 네 죄가 사라져? 피가 뚝뚝 흐르는 모습으로 날카롭게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스티브는 웃으면서 버키를 잡아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정작 버키는 뒷걸음질을 쳤다. 스티브의 등 뒤에서 웃던 녀석은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머릿속엔 온갖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순간 발이 꼬였다. 한쪽 팔이 없는 상태라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놀라서 달려온 스티브가 버키를 안아 일으킬 때까지 괴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처음엔 그저 피가 뭉쳐진 덩어리처럼 보였는데, 이젠 제법 사람의 꼴을 하고 버키를 비웃었다.
“버키. 많이 힘들었어?”
“어? 어. 어. 그런가 봐.”
“내가 도와줬어야 하는데, 일어설 수 있겠어?”
“그래. 괜찮아.”
비틀거리며 일어서다 다시 발이 꼬여 스티브의 품에 쓰러졌다. 스티브는 내내 버키가 많이 놀란 것 같다며 걱정을 했다. 하지만 버키는 아까 보인 것을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없었다.
“정원은 내일 갈까?”
“…아니. 지금 가자. 밖에 나가고 싶어.”
“그래? 괜찮겠어?”
“난 괜찮아.”
이 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
두 녀석이 만나면 계속 땅만 판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러고 있어서 당황스럽네요
이제 좀 연애도 하고, 좀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시빌워 쿠키 직전 둘이 무슨 생각을 할까- 에서 시작된 글이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항상 모자란 글 양과 규칙적인 업로드라도 지키려고 노력중입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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