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08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센티넬버스 au입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속으로 곪아가는 캡틴이랑 기억 조각을 찾는 버키가 나옵니다 취향탈 수 있어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버키가 눈을 떴을 때 세상은 한 번 더 변해 있었다. 드문드문 끊겼던 기억을 더듬던 남자는 도통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지 마냥 웃어버리고만 말았다. 그렇게 이불을 좀 쥐었다가 놓고, 팔뚝에 잔뜩 열린 영양제 팩을 바라보았다. 이래서는 예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늘 이렇게 깨어났다
“…….”
황망한 마음에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분명 당장 죽을 것 같이 괴로웠는데 이유는 생각나지 않았다. 숨이 막혔었던가. 아니면 귀가 먹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역시 그 부분은 검은 잉크를 쏟은 것처럼 캄캄하기만 했다. 팔뚝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긴 했다.
버키는 기억에 대해 포기가 빠른 편이었다. 물론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많았지만, 자신이 모두 기억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쉽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며칠이나 잔 거지. 스티브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자연스럽게 스티브 걱정을 한다. 약간 어지러운 것 같았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랜만에 발을 딛고 서는 기분이었다. 바닥이 울렁거리는 것 같아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타일이 쭉쭉 늘어나면서 자신을 비웃었다.
“…스티브?”
“…….”
“어디 간 거지. 다치기라도 한 건가.”
자기 몸 상태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친구를 찾았다. 한동안 방안을 서성거리며 눈으로 스티브를 찾았다. 주위에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한순간 사라졌던 긴장이 몰려왔다. 아. 또 오감이 쭈뼛쭈뼛 서기 시작했다. 눈앞이 망가진 형광등처럼 깜박거렸다.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가 떴지만 소용없었다.
“…….”
멍하니 선 채 눈만 비비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예민하게 열린 청각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은 눈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자 익숙한 물체가 보였다. 뿌연 안갯속에서 홀로 선명하게 보이는 친구는 성큼성큼 다가와 버키를 꽉 껴안았다.
“왜 이러고 서 있어.”
“…스티브?”
“그럼 내가 누구겠어.”
“이번에도 또 사라진 줄 알았어.”
“내가 왜.”
“자리에 없길래.”
“…미안.”
“스티브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미안. 잠깐 일은 보고 온다는 것이 너무 늦었어.”
“…….”
버키는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이 친구가 왜 이렇게 자신에게 사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으음. 스티브 이상해. 오늘 왜 그래? 자잘한 걱정이 꿀꺽 넘어갔다. 하지만 단단하게 허리를 잡고 있는 손깍지는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스티브?”
“버키. 미안해.”
“네가 미안할 일이 뭐가 있어?”
“…….”
“혹시…내가 기억이 없는 동안 또 사람이 아닌 짓이라도 한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것도 아니면 왜 미안하다 해.”
“이게 다 내 탓인 거 같아서.”
스티브의 입술이 버키의 어깨에 닿았다. 하필 그곳이 흉측한 상처가 남아있는 곳이라 버키는 몸을 비틀어 떨어지려 했지만,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스티브. 스티비. 잠깐만. 밖으로 나오지 못한 목소리가 꿀떡꿀떡 넘어갔다. 물론 스티브가 가까이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심장을 옥죄는 느낌도 없어지고, 눈도 금방 밝아졌다. 그저 긴장이 풀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으…….”
“버키.”
“거기 만지지 마.”
“…왜?”
“안 돼.”
그곳은 죄가 응집된 곳이라 캡틴 아메리카가 닿기엔 좋지 않아.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어깨 밑으로 완전히 날아간 메탈암은 간 곳이 없는데 꼭 다시 돋아난 것처럼 저릿저릿했다. 아. 끊긴 신경이 아팠다. 짧은 신음을 내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순간 다리가 풀려 스티브에게 온몸을 기대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입술이 닿았을 뿐인데 왜 온몸에 힘이 빠지는지 알 수 없었다.
“스…티브. 잠시.”
“…버키.”
“스티브. 스티비. 아…….”
“이렇게 널 안고 있어도 꿈만 같아.”
“나도…….”
“어디 가지 말자.”
“내가 널 두고 어딜 가.”
“어디라도.”
흉터를 지우려는 듯 뜨거운 입술이 자꾸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등허리에서 소름이 바짝 돋았다. 단단하게 낀 깍지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쉰 버키는 스티브를 좋을 대로 내버려두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왜 그래. 그런 타박을 하면서 한 손으로 허리를 둘렀다. 그러다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스티브. 스티븐. 스티븐 로저스. 망가진 뇌가 널 잊기 전에 기억해 둬야지. 몇 번이나 불렀던 이름은 입술을 열자마자 후두둑 떨어졌다.
버키는 스티브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고 싶었다. 하지만 끊어진 팔이 점점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고통을 참는 건 익숙했기 때문에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저릿하게 올라오는 환상통은 이내 잘린 어깨 부분을 갉아먹었다. 피부와 함께 오그라든 지점에 닿은 고통은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스티브. 그만…….”
“버키?”
“내가 좀…아파서.”
“버키. 이런…….”
“잠깐 쉬면 괜찮을 것 같아.”
“미안.”
금방 시무룩해진다. 하나도 안 변했어. 버키는 그런 얼굴을 보며 찡그리며 웃었다. 스티브는 몸만 커졌지 변한 것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자신은 너무 달라졌다. 늘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우울해졌다. 달라진 자신이 캡틴 아메리카를 잡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젠 만나선 안 되는 운명이 아니었을까. 한번 스며든 생각은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스티브의 부축을 받고 나서야 소파에 걸터앉을 수 있었다. 지나치게 푹신한 소파에 온몸을 기댄 버키는 더듬더듬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아. 살짝 눌렀을 뿐인데 고통이 밀려왔다. 하이드라에선 이런 일이 없었는데. 입술을 꾹 깨물며 참아봤다. 예전에 다리 위 그 남자와 싸울 때도 방패에 되게 얻어맞아 팔이 망가진 적이 있었다. 그땐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참지 못할 만큼 아픔이 흘러내렸다. 끙끙 앓는 친구를 보는 스티브는 계속 안절부절못하기만 했다.
“버키. 괜찮아?”
“괜찮아. 잠깐만 참으면 되니까.”
“…….”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괜찮아.”
“…….”
“또 그런다.”
이럴 때마다 귓가에 들리는 이명이 깔깔거리며 손가락질을 하곤 했다. 이미 더럽혀진 몸이 팔 하나 잘라냈다고 멀쩡해질까. 네가 사람 속에 섞여 살 수 있을 것 같아? 고통이 밀려올수록 이명도 더 커졌다. 알지 못하는 언어가 들리기도 했고, 또렷한 영어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젠 어깨가 아니라 머리가 아팠다. 몇 년 동안 숨어 지낼 때도 이러진 않았다. 관리를 받지 못한 메탈 암이 문제라면 문제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감정이 널뛰는 일은 처음이었다.
스티브가 무릎을 꿇고 버키를 올려다보았다. 버키는 그런 얼굴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래도 스티브가 가까이 있으면 참을 수 있었다. 겨우겨우 멀어져 가는 고통이 자꾸 의식을 끌고 가려 했다.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고 나서야 세상이 바로 보였다.
“이제 괜찮아?”
“응.”
“검사를…좀 더 빨리 받아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런 거 없어도 괜찮아. 검사는 무슨.”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잖아.”
“어째서?”
“넌 죽을 뻔했어. 버키. 내 앞에서 또 사라질 뻔했다고.”
“…….”
“그런 모습을 봤는데 상처를 그대로 두라는 거야?”
“스티브.”
“이건 양보 못 해.”
“…고집은.”
사실 스티브가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버키는 모른 척 어울려주곤 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평생 살려고 했는데, 친구를 좀 만났다고 왜 이렇게 행복할까. 스스로 미친 것이 틀림없다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행복할 자격이 있는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스티브가 너무 따뜻해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스티브도 걱정이 늘어졌다. 버키는 자꾸 눈앞에서 사라질 것처럼 굴었다. 더는 품 안에서 내보내고 싶지 않은데, 자꾸 거리를 두려는 듯 물러섰다. 저번 발작 때문이라도 최대한 가까이 붙어있어야 했다. 이런 마음이 욕심이라고 한다면,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캡틴 아메리카로 살아왔다면 버키는 단 하나 스티브 로저스가 가질 수 있는 선물이었다.
“버키.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
“그게 무슨 소리야?”
“…….”
“스티브.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뭘 들었구나.”
버키는 눈치가 빨랐다. 오랜 친구의 얼굴만 봐도 하고 싶은 말을 알았다. 그러면 말주변이 없는 스티브는 금방 티를 내고 만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
“말래줘.”
“…….”
“왜? 죽을병이라도 걸렸다고 해?”
“그런 거 아니야.”
“그러면?”
“…….”
“스티브. 난 알아야겠어.”
“버키…혹시…….”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스티브는 끙끙 앓았다. 버키는 몇 번 채근하다 그냥 소파에 몸을 맡겼다. 이 녀석이 이럴 정도로 큰일이면 뭘까. 속에 장기라도 녹아내린 걸까. 아니면 이제 며칠 뒤 갑자기 죽어버리는 걸까. 최악의 생각만 골라 하고 있던 버키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센티넬 인자가 몸속에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
“무슨 소리야?”
“…….”
“센티넬…그거…알아. 잠깐만.”
“…….”
“말하지 마. 내가 기억할 수 있어.”
“…….”
친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버키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끙끙 앓았다. 익숙한 단어인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어디서 들었는데. 뭐지. 이상하게 생각을 할수록 뿌연 안갯 속을 걷는 것만 같았다. 으. 결국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내 뇌에 나있는 구멍이 더 커진 거 같아. 감추지 못 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들은 적은 있는데…왜 기억이 안 나지.”
“…….”
“아마…한참 전에 들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병장일 때?”
“맞아. 내가 그…….”
“…….”
“어떻게 알았어?”
버키의 눈이 또 커졌다. 이렇게 단어 한마디 들으면 기억이 날 것이 분명한데, 왜 그렇게 앓았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스티브가 그때 일을 입에 올린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어떻게 알긴…….”
“…….”
“그때 돌아와서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던 거 알고 있었어.”
“언제부터…….”
“내가 잠들었다 깨어나서 이런저런 서류를 찾아보다가.”
“…….”
“그랬나 봐. 서류가 그렇게 말하면 맞겠지.”
기억이 아닌 서류로 자신을 인지하는 것도 이젠 낯설지 않았다. 비어있는 구멍을 막을 수 있으면 충분했다. 사실 옛날 기억은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마 스티브가 거짓말을 할 것 같진 않았다. 친구는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조금 생겨서.”
“죽을 만큼 심각해?”
“왜 자꾸 죽는다는 소리를 해.”
“항상 최악을 생각해야지. 죽음이 최악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버키. 네가 그럴 때마다 내가 미칠 거 같아.”
“…….”
“그런 소리 하지 마.”
“스키브. 넌 옛날부터 이런 말에 약했지.”
또 과거 이야기가 생각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래를 말할 수 없어도, 친구와 해야 할 과거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스티브는 최대한 담담하게 상태를 알려줬고, 버키는 놀라지 않으려고 애썼다. 참 기구한 운명이었다. 스티브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알게 모르게 버키를 품고 싶어 했다.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고 싶은데 당사자인 버키는 자신이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어디 가지마.”
“…….”
“나랑 옛날이야기 하자.”
“…….”
“말하다 보면 잊어버린 것이 돌아올지도 몰라.”
어느새 버키 옆에 앉은 스티브는 계속 귓가에서 소근거렸다. 입술에 귀에 닿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그렇게 뜨거운 체온도 아닌데 살에 닿으면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또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녀석은 몇 번이나 피부를 통해 친구를 불렀다. 으응. 그래. 그 체온을 느끼면 느낄수록 자꾸 허리에 힘이 빠졌다. 버키는 따뜻한 걸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잠시 고개를 돌렸을 때, 입술에 불덩이가 닿았다.
“…….”
“버키. 나 떠나지 마.”
“…….”
“제발.”
대답하기도 전에 입술 사이를 혀가 파고들었다. 마지 답을 듣는 걸 무서워하는 어린애 같았다. 숨을 쉬지도 못하게 들이치는 녀석 때문에 버키는 내내 헐떡이고 있었다. 살짝 입술이 떨어졌을 때, 버키가 스티브의 목을 끌어당겼다. 다시 한 번 입술이 닿고 혀가 엉겨 들었다. 축축하고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언제부터 이런 감정이 생겼을까. 잘 알 수 없었다.
+)
연애를...해야 할텐데..
언제 하지...ㅠㅠ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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