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리토마스/갤톰] 전력 60분 : 비
+) NOTICE
고등학생 Au로 둘이 사고치고 싸우다가 사귀는 가벼운 이야기 입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우리 비가 오면 여기서 만나.”
“…….”
“비가 그치고 땅이 마르기 전에.”
“…….”
“기다릴 거니까. 알았지?”
“…….”
“알았다고 생각할게.”
대답도 듣지 않고 멋대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곤 싫다고 하면 당장에라도 얼굴을 갈길 기세로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그런 토마스를 보고 있자니 절로 코웃음이 났다. 어린애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생활을 했기에 저렇게 어린아이들이 보는 동화 같은 이야기만 줄줄 늘어놓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것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내새끼가 말이다.
“하아.”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저런 소리를 한두 번 듣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져 왔다. 하지만 토마스는 내내 진지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촘촘하고 길게 난 속눈썹에 길게 맑은 시선이 걸리곤 했다. 그 눈이 너무 곧아서 바라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자 빳빳하게 다려진 소매를 잔뜩 구기며 양팔을 꽉 잡고 있던 손이 아쉽게 떨어졌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하여튼 약속한 거야.”
“내가 왜.”
“약속한 거라고.”
“아, 이 미친 새끼가.”
짧게 타박을 하려는 순간 토마스는 한걸음 훌쩍 물러섰다. 아무리 키가 훌쩍 컸다 해도 눈앞에 보이는 녀석보단 작았다. 후끈한 여름 바람이 셔츠를 흔들었다. 도대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토마스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역시 사람이 책만 읽으면 미치는 게 틀림없어. 잔뜩 빨갛게 변한 얼굴을 애써 가리며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녀석은 내내 제자리에 서 있었다. 사이가 안 좋아서 죽으라 싸우던 것을 잊기라도 했는지, 토마스는 내내 갤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맴돌고 있다고 하기보단 갤리의 약점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바보 같은 놈.”
물론 갤리도 만만한 성격은 아니었다. 토마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녀석이 싸우기 시작하면 둘 중 한 명은 피를 보고 나서야 끝이 났다. 민호나 뉴트가 내내 쫓아다니며 둘이 같이 있지 못하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굳이 싸우고 싶지 않으면 서로 모른 척하고 소 보듯 닭 보듯 하면서 생활하면 될 텐데 꼭 가서 옆구리를 쿡쿡 찌르곤 했다. 갤리도 끓는점이 낮아서, 그런 것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서로 주먹질을 하다 양호실에 끌려가는 것이 지겹지도 않으냐며 뉴트가 혀를 쯧쯧 찼다.
‘하여튼 너희 둘은 사이가 좋을 건지, 원수가 될 건지 하나만 정해서 행동해라.’
‘뭔 헛소리야.’
‘보는 사람이 답답하고 귀찮아서 그런다’
‘웃기는 소리 하네.’
‘너야말로.’
짜증이 빡 들어간 눈썹이 구겨지며 뉴트가 으르렁거렸다. 안 그래도 토마스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데, 너까지 왜 이러냐며 타박이었다. 하긴 토마스가 사고를 치는 것만큼 둘이 부딪히는 시간도 많았다. 갤리는 언제나 같이 뉴트의 말을 자연스레 흘려 넘겼다. 뉴트 넌 언제나 잔소리가 심해. 그런 말을 하며 하품을 하는 녀석을 보던 까만 눈이 샐쭉하게 길어졌다. 그런 눈빛이 너무 따가워서 갤리는 모른 척 자리를 떴다.
‘하여튼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지.’
뉴트는 그런 커다란 덩치를 다시 한 번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이후 토마스는 갤리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비가 오면 만나. 그 약속이 무엇을 뜻하는 진 알 수 없었다. 다만 갤리가 한마디만 하면 따박 따박 맞받아치던 것조차 줄어들자 친구들은 한시름 놓고 좀 더 학교생활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둘이 잠시 싸우거나 주먹다짐을 하지 않을 뿐인데 이렇게 평화로울 수 없었다.
물론 일주일이 넘어가자 조금 불안해졌다. 하지만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으니 둘이 없을 때 자기들끼리 수군거릴 뿐이었다.
**
막 여름이 시작되려는 그 날은 유난히 하늘이 파랗고 맑았다.
울창하게 짙어진 나뭇잎은 커다란 그늘을 만들었다. 하루하루 착실하게 날짜가 지나가고 있었다. 날짜가 지나가는 만큼 여름은 바짝 말라갔다. 비가 올 것 같지도 않은 날씨가 이어지자 학생들은 하나둘 책상 위에 쓰러졌다.
“덥다.”
누군가 한마디 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동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나기라도 한 번 왔으면 싶은데, 쨍하니 맑은 하늘은 하얀 구름만 가득했다. 운동장에 내리쬐는 햇볕은 금방이라도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겁기만 했다.
“…왜 비가 안 오냐.”
“모르지.”
“덥다. 진짜.”
“누구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애들의 입에서 웃음이 툭툭 튀어나왔다. 토마스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과학 논문을 읽고 있었고, 갤리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들으라고 하는 행동에 점점 표정이 구겨져 가던 갤리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너 때문이다.”
“내가 뭘. 그렇지 뉴트?”
“이번엔 네가 맞을 차롄가 보다.”
뉴트가 손으로 부채질하며 웃었다. 교실은 금방 시끄러워졌다. 시원한 거라도 마시러 가자는 목소리가 커질 무렵 토마스는 읽고 있던 논문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토마스도 챙기자며 다들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빈자리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
그렇게 기다리는 비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더욱 바짝 말라가는 공기에 숨쉬기도 힘들다는 듯 손사래를 치는 녀석들이 늘어났다. 덥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친구들은 슬슬 토마스를 원망했다.
“네가 그런 소리 해서 비가 안 오는 거 아냐?”
“그게 무슨 소리야.”
“갤리한테 비 오면 만나자 운운해서 하늘이 노한 모양이지.”
“…….”
“역시 그 문젠 거 같아. 너희 둘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니까 다들 놀란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알려주겠지.”
토마스의 목을 와락 붙잡고 여기저기 공격을 하던 녀석들은 살이 닿으니 덥다면서 다시 밀어냈다. 잔뜩 헝클어져서 까치집이 된 머리를 손으로 쓱쓱 쓸어 넘기던 녀석은 잔뜩 볼멘소리로 항의했지만, 제대로 먹히진 않았다.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하는 녀석들을 슬슬 피했다.
뉴트와 민호는 그런 토마스의 행동을 모두 보고 있었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조용히 사라진 토마스의 뒤통수에 끝까지 달라붙던 목소리가 교실 문에 막혀 툭툭 떨어졌다.
토마스는 학교가 끝나고 내내 과학실에 있었다.
작은 창문 하나 없는 곳에서 연신 실험기구를 만지며 이것저것 체크를 했다. 여러 가지 색깔 물에서 거품이 끓어올랐다 배배 꼬인 유리관을 따라 움직이는 현상을 관찰하던 토마스는 시간이 얼마나 흐르고 있는지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툭.
투툭.
오랫동안 기다리던 소리가 들렸다. 하긴 아까부터 하늘이 심상치 않던 것 같더니,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짝 마른 운동장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보도블록 위에 동그랗게 짙은 점을 만들며 내리던 비는 온 세상을 적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창문도 없는 깊은 방에 있는 토마스는 그런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눈앞에서 움직이는 물의 흐름에 더 관심이 있었다. 잔뜩 찌푸린 채 안경을 고쳐 쓰던 녀석은 목이 아픈지 한숨을 쉬며 의자에 편히 기댔다. 안경을 벗고 콧잔등을 주물렀다. 아야야. 그제야 뻣뻣하게 긴장했던 목과 어깨에서 짜르르 아픔이 느껴졌다. 이리저리 목을 돌리고 어깨를 움직이던 녀석이 두 손을 깍지 낀 채 위로 쭉 폈다.
그리곤 의자에 걸터앉은 채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히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토마스는 자기가 무엇인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과학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신이 통제하고 있었다.
“…뭐지.”
자꾸 찝찝해지는 마음이 자꾸 불안해졌다. 엄지를 마주 비비며 다리만 덜덜 떨었다. 일분. 이분. 시곗바늘은 자꾸 움직이기만 하는데, 토마스는 이 불안한 기분의 근원을 찾지 못했다. 그때 귓가에 환청처럼 가는 빗줄기 소리가 들렸다.
“…….”
토마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아. 토마스는 멍하니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와장창 소리를 내며 과학실을 뛰쳐나갔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었다. 학교를 빠져나오니 하얗게 물안개가 피어오를 정도로 시원한 비가 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비 오네.”
비가 오네. 토마스는 순간 머리에 번개가 스친 것 같았다. 우산도 없이 그대로 빗속을 뛰어갔다. 하얗게 부서지는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더 거세게 내리기만 했다.
**
“…….”
우산을 든 채 서 있던 갤리는 시계를 한 번 더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무 밑으로 한 걸음 더 발을 옮겼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는데, 토마스 이 새끼는 나타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 o가 속았네. 잔뜩 짜증이 난 갤리는 괜히 나무를 퍽 걷어찼다.
“나도 미쳤지. 그런 걸 믿고 오기나 하고.”
툴툴거리던 녀석은 이미 커다란 웅덩이가 생긴 길을 빤히 바라보았다. 먼저 와서 기다린다고 한 주제에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녀석은 역시 구제불능이라 생각했다. 뭐랄까. 비가 오면 신나는 강아지 같은 녀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짜증이 밀려왔다.
“젠장.”
휙 돌아서는 갤리의 눈에 쫄딱 젖은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을 완전히 젖어 얼굴에 찰싹 달라붙어 있고, 셔츠와 바지는 물에 빠진 것처럼 축축했다. 저 미친 녀석이. 갤리는 바지와 운동화가 젖는 것도 있고 첨벙거리며 뛰어갔다.
“야, 너 뭐하는 거야.”
“…….”
“다 젖어서. 늦어서 미안하라고 이러고 달려왔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따져 물었다. 토마스는 눈 바로 위까지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치우지도 않은 채 갤리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하얗게 피어나는 물안개가 뭉클 살아 올라왔다.
“비가 오는 줄 몰랐어.”
“그럼 약속은 왜 했냐?”
“…….”
“됐다. 집에나 가. 인마.”
갤리가 우산을 슬쩍 기울여줬다. 하지만 토마스는 이미 다 젖었다며 한 걸음 물러섰다. 저 새끼는 꼭 해줘도 난리지. 갤리는 잠깐 불쌍한 마음을 가졌던 것을 후회했다.
“좀 얌전히 있어라.”
“아니…난.”
“야! 토마스!”
둘이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우산을 놓치고 말았다. 흙탕물에 거꾸로 나동그라진 우산엔 금방 빗물이 괴었다.
“아…씨.”
“그러기에 내가…….”
“넌 정말 짜증 나는 녀석이야.”
“…….”
갤리는 말없이 우산을 주워서 빗물을 털어냈다. 그리고 우산을 퍽퍽 접은 채 토마스의 손목을 잡았다. 깜짝 놀란 샴페인 색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어차피 젖었잖아.”
“…….”
“집에 가자.”
그 말을 끝으로 둘은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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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둘은 사이좋게 감기에 걸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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