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리토마스/갤톰] The day when we first met 003
+) NOTICE
플레어가 나타나지 않은 현대 aU입니다
갤리는 인테리어 가게 사장 , 토마스는 위키드 연구소 직원입니다
실제 영화와 본 회지상의 나이 설정이 다릅니다
첫 만남 당시 나이차 갤리 >>> 토마스 >>>>>>>>>> 민호 뉴트
토마스가 어린 민호와 뉴트를 키우는 싱글 파파로 나옵니다.
셋은 혈연 관계가 아닙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책은 금수본이 될 예정입니다만, 샘플은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The day when we first met 003
갤리는 몇 년 동안 스승 가게에서 조수 노릇을 하며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올라가다 겨우 자기 이름으로 된 인테리어 가게를 차렸다. 그런 갤 리가 토마스와 만난 것은 한참 조수 일을 할 무렵이었다. 언제나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시간에 가게 앞을 지나갔을 뿐인 데다, 딱히 눈에 띄는 생김새도 아니었기에 그저 지나가는 행인처럼 시선이 머물지 않았다.
“…음?”
그런 갤리의 눈에 일주일 만에 보인 녀석은 굉장히 수상한 차림이었다. 보통 때라면 십 분 전에 지나갔어야 하는데, 오늘은 걸음조차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갤리는 그런 모습에 조금 호기심이 돋았다. 저 잠시 딴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려는 것일 뿐이라며 자기 위안을 했다. 이것저것 들고 있던 짐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청소 한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먼지가 폴폴 날리는 도면들이 책상에 와르르 쏟아졌다.
“…….”
갤리는 팔짱을 낀 채 하늘을 쳐다보는 기분으로 토마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앞만 보고 척척 걸어가던 녀석은 오늘따라 커다란 짐을 들고 잔뜩 당황한 표정이었다. 가방도 아닌 천 뭉치를 품에 안은 녀석의 얼굴을 발갛게 얼어있었다.
돈이라도 훔쳤나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천 뭉치 안에서 조그만 손이 쑥 올라왔다. 갤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토마스는 잔뜩 놀라서 갤리 가게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이는 토마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둥거렸다. 찬바람에 금방 빨갛게 얼어가는 손을 어떻게든 이불 안으로 집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아기는 도와주지 않았다.
“아…미안.”
토마스가 억지로 이불을 닫으려 하자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금방 울음을 터뜨렸다. 갤리는 문틈으로 흘러들어오면 아기 울음소리에 눈을 찌푸렸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저 멀대같은 녀석이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는 점점 크게 울기 시작하고 토마스는 당황해서 계속 헛손질을 했다. 갤리는 저러다 애를 떨어뜨릴 것 같은 불안감에 뚜벅뚜벅 문 앞으로 걸어갔다.
“저기요.”
“…….”
딸랑. 종소리가 울리면서 문이 활짝 열렸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런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어설프게 아기를 달래고 있었다. 조금 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갤리가 다시 한 번 토마스를 불렀다.
“저기요.”
“…네?”
토마스가 잔뜩 당황해서 반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갤리를 쳐다보았다. 그런 얼굴을 보니 어쩐지 한숨부터 나왔다.
“밖에서 그러면 애가 추워서 더 울잖아요.”
“……”
“들어와서 정리하고 가요. 아직 손님 없어서 비어있으니까.”
“하지만…….”
우물쭈물 눈만 깜박이는 모습에 갤리는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때마침 다시 울음소리가 커지는 아기 때문에 토마스는 허둥지둥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바깥하곤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후끈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토마스는 꽁꽁 언 손이 녹는 것이 느껴졌다.
“…….”
“저기 책상에 내려놓고 다시 정리해요.”
“…감사합니다.”
“아니 도대체 이 추운 날에 그렇게 대충 애를 데리고 나오면 어떡합니까. 어른들도 다니기 힘든 날씨에.”
갤리가 타박하자 토마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게…집에 아무것도 없어서…….”
또 우물우물 말을 삼켰다. 허둥지둥 이불에 싸여있는 아기를 들어 올렸다. 따뜻한 곳에서 몇 번 얼러주자 곧 울음을 그친 아이가 생글생글 웃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 토마스가 아이를 꽉 껴안았다. 갤리는 그런 아기 얼굴을 바라보다 아빠 되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나도 안 닮았네.’
정말 닮은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동양인 아기를 안고 있는 남자는 영 어설퍼 보였다. 그런 꼴을 보고 있으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갤리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다가올 때까지 토마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늦은 거 커피 한 잔 마시고 몸 녹이다 가요.”
“…….”
“댁이 잘나서 그러는 게 아니고, 이 상태로 나가봤자 아이가 또 울 거 같아서 그러는 거니까 이상한 생각 말고.”
“…….”
머그잔을 토마스 옆으로 슥 밀어준 갤리는 괜히 딴짓을 했다. 겨우 아이를 안은 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토마스가 커피를 입에 댔다. 그리곤 한 모금 넘기기가 무섭게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알기 쉬운 행동에 갤 리가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가려고?”
“네. 사실 지금도 많이 늦었는데…….”
“택시라도 부르지 그래요?”
“아, 그러면 되는구나.”
갤리는 답지 않게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아. 토마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걸 보니 당황해서 그런 선택지는 생각도 못 한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가게 전화까지 빌려서 택시를 부른 토마스는 내내 아이를 어르려 했지만, 어색하지 짝이 없었다.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죠.”
“…….”
“어차피 이웃 사촌 아닌가?”
“토마스. 토마스라고 합니다.”
“난 갤리라고 부르면 돼요.”
어색하게 악수를 했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자꾸 칭얼거렸다. 아무래도 토마스가 안아주는 것이 편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갤리는 자꾸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얜 민호라고 해요.”
묻지도 않은 말을 넙죽넙죽 했다. 토실토실한 아기 볼을 살살 만지던 녀석이 또 바보같이 웃었다. 민호. 역시 아빠와 아들이라고 하기엔 너무 닮은 점이 없었다. 좀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때마침 가게 앞에 택시 한 대가 섰다.
“아, 왔다.”
“들어가요.”
“감사…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서 다녀요.”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다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리곤 곧장 문은 열고 나가 잔걸음으로 택시 앞으로 걸어갔다. 문이 열리고, 다시 닫혔다. 택시는 한 줌 미련도 남기지 않고 자리를 떴고, 갤리는 텅 빈 거리를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지.’
왜 이렇게 호기심이 돋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궁금함이 커져도 이 이상 물어볼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괜히 뒤통수를 긁으며 입맛을 다시던 갤리는 싸늘하게 식어있는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아주 조금밖에 줄지 않은 커피를 싱크대에 쏟아버리며 애써 딴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또 아니었다. 컵이 부서지라 선반에 내려놓았다.
“아…괜한 짓을 했다.”
약간 늦어진 청소를 마무리하는 갤리는 연신 툴툴거렸다. 한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자 자꾸 호기심이 생각의 끝을 물고 구불구불 살아 올라오는 것 같았다. 당장 눈앞에 토마스가 있다면 어서 말해보라고 탈탈 털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저 생각을 하며 보낼 것 같았다. 그러나 갤리의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필 오늘따라 일은 그다지 않지 않았고, 남아 있는 것도 모두 가게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 종류뿐이었다. 갤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마를 책상에 쿵쿵 박았다. 이마는 얼얼하게 아파졌지만, 한번 생긴 호기심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어쩐지 오늘 하루는 굉장히 길 것 같았다.
***
토마스는 생각보다 훨씬 늦게 연구소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던 선임 연구원은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로비에 서 있었다. 택시에서 엉거주춤 내리는 녀석을 보고 나서야 급히 마중 나왔다. 금방 볼이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발갛게 물들었다. 이렇게까지 추우리라 생각을 하지 못해서일까. 토마스의 입술 사이로 하얗게 얼어버린 긴 한숨이 흘러나와 공기 중에 섞여들었다.
“토마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
“일주일 동안 연락도 없이 출근도 하지 않고, 그리고…….”
“미안해요. 카릴.”
“미안한 것보다…그러니까.”
카릴은 토마스 품에 안겨있는 작은 아기를 발견했다. 당황스러운 표정이 한층 더 깊어졌다. 때마침 칭얼거리기 시작한 아이를 어르던 토마스가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서 설명할게요.”
“…….”
따뜻한 실내에 들어와서 아이를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연구소에 퍼지는 낯설 울음소리에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셋을 쳐다보았다. 토마스는 아이를 몇 번 어르다 한숨을 쉬었다. 카릴은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토마스.”
“…….”
“그렇게 안으면 안 되지.”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한 카릴이 아이를 받아 안았다. 익숙한 포즈로 아이를 안고 달래자 금방 울음이 잦아들었다. 그래. 그래. 통통한 아이의 볼을 몇 번 쓸어주고 조심스럽게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이젠 혼자서 손을 꼬물거리며 놀기 시작하는 아이를 보고서야 토마스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토마스?”
“네? 네.”
“이제 말해봐.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갑자기 휴가를 달라고 떼를 쓰질 않나. 그리고 아이를 안고 나타나질 않나.”
“…….”
“우리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전화는 왜 안 받았어?”
“자꾸 깨서 울기에 전화선을…….”
“너 정말.”
카릴이 토마스의 두 볼을 잡고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막았다. 으. 카릴. 잠시만요. 토마스가 버둥거렸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엄해지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식은땀이 흘렀다.
“정확히 말해봐. 토마스.”
“그러니까.”
“대충 넘어갈 생각 하지 마. 너 혼자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이까지 일주일이나 같이 있었다니 큰일 났으면 어쩔 뻔했어.”
“그건…옆집에서.”
어물어물 입을 결기 시작한 토마스는 계속 눈을 굴리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지만, 이번만큼은 무리인 것 같았다. 반쯤 포기한 채 민호를 만난 이야기를 시작했다.
“풀숲에 있었어요.”
“아기가? 그 추운 날에?”
“네. 그래서 차마 내버려둘 수 없어서 데려오긴 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일단 재우고……”
“그럼 연락을 해야지.”
“조금만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도 울었단 말이에요.”
“…….”
“며칠만 있으면 집이 적응되지 않을까 해서…….”
“넌 정말 어릴 적부터 대책이 없었어. 그러나 큰일 나면 어쩌려고 그랬어. 아이가 얼마나 약한데.”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다행히 아무 일이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런 지식 없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면…….”
“하지만 당장 이쪽으로 전화했으면, 바로 병원으로 데려간 다음 다시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잖아요.”
“…….”
“제가 발견했어요.”
“뭐?”
“민호가…제가 발견해주기를 바라고 그렇게 울었다고요. 이젠 우리는 가족이에요.”
“토마스.”
“내가 키울 수 있어요. 민호는 누구도 나한테서 못 뺏어가요. 절대. 부모가 없는 아이가 얼마나 슬픈지는 연구소에서 내가 제일 잘 알아요.”
“…….”
“아는 것이 없다면 지금부터 배워서라도 키울 거예요.”
“토마스.”
“할 수 있어요. 아니 할 거니까…….”
토마스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러나 민호가 또다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아이를 안은 채 살짝 웃던 녀석은 여전히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
“내가 키울 거예요. 민호의 아빠는 나니까.”
물론 연구소가 발칵 뒤집혔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녀석이 갑자기 아빠가 되겠다니. 그것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말이다. 토마스의 의중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어른들은 토마스의 고집을 꺾을 수도 없었다. 몇 번이나 설득하려 했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물론 작은 아이가 굉장히 귀엽다는 사실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첫째로 토마스는 누구를 보살피는 것보다 보살핌을 받는 쪽이 익숙했고, 둘째론 아이를 키우면서 생길 수 있는 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 것 만으로도 굉장히 힘든 일이 될 것이 확실한데, 여기서 더해 어려도 너무 어렸다.
“아무도 못 데려가요,”
물론 토마스가 왜 이렇게 가족과 정에 대해 집착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빼앗아 올 수 없었다. 불편하게 안아주는 녀석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방싯방싯 웃고 있는 아기는 토마스 품에 꼭 안겨 있었다.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결국 총장이 한걸음 물러섰다.
“그래. 네 고집을 아니 함부로 데려올 수도 없구나.”
“그럼…….
“대신. 연구소로 들어오던지, 아니면 아이와 네 생활을 돌봐줄 사람을 고용하던지 둘 중 선택을 해라.”
“…….”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으면 내 말대로 하도록 해. 더는 물러서지 못할 것 같구나.”
“알았어요.”
겨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토마스가 연구소에 들어오면 밤이 늦어서야 퇴근을 하는데 그동안 텅 빈 집에 아기 혼자 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주위엔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면역력이 약한 아이를 환기도 되지 않는 곳에 데리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찬찬히 머리를 식힌 녀석은 생각보다 빨리 수긍했다.
“일주일 동안 아이한테 뭘 먹인 거야. 네 집에 아이가 먹을 만한 것이 없었을 텐데.”
“옆집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여러 군데 폐를 끼치는구나. 정말 못 말리는 녀석이야.”
“…….”
모른 척 시선을 돌리는 녀석을 바라보던 총장이 일어섰다. 지금까지 토마스에 대한 모든 보증은 총장이 담당했었다. 그만큼 연구소에서 중요한 인물이었고,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자잘한 사고를 치면 쳤지, 이런 핵폭탄 같은 일을 저지를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위키드 총장이 승인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뭐 어쩔 수 없죠.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보태면서 자리를 떴다.
졸지에 결혼도 안 하고 아이 아빠가 된 녀석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내 웃고 있었다. 가족이란 단어를 끔찍하게 여기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그걸 확인시켜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아이 입힐 옷이라도 하야하지 않겠니. 언제까지 그렇게 이불에만 싸서 다닐 거야.”
“아…….”
“도대체 이러고 다녔는데 감기가 안 걸린 게 용하다. 용해.”
“당장 옷이랑 또 뭘 사야 할까요? 집에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참 이런 녀석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
토마스가 또 꼬물꼬물 아이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이미 얼굴은 민호한테 푹 빠졌는데, 정작 다른 준비는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런 녀석을 보다 못한 결혼한 여성 연구원들이 하나둘 나서기 시작했다.
“같이 갈까?”
“네?”
“넌 어차피 가봤자 뭐가 필요한지 모를 거 아냐.”
“…그렇긴 한데.”
“어차피 오늘은 토마스 덕분에 다들 일찍 퇴근할 텐데 같이 나가보자. 하나부터 열까지 사려면 지금 가도 빠듯하겠네.”
“…….”
“어서 일어서.”
“…….”
아이에게 잔뜩 관심을 보이던 연구원들이 토마스 주위에 몰려들었다. 아니, 됐습니다. 제가 할게요. 하지만 여러 사람을 이길 수 없었다. 반쯤 강제로 끌려나가는 토마스를 보던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기분이네. 다들 웃으면서 가볍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심각한 표정은 가시지 않았다.
“걱정이네요.”
“마찬가집니다.”
“토마스 저 녀석은 도대체 어쩌려고.”
혹시 가벼운 동정심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오려는 것은 아닐까. 몇 번이나 걱정했다. 무작정 애정을 주다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만큼 아이의 인생에 상처가 되는 것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토마스의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다.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미래에 대해 얼마나 확신이 있는지. 토마스의 목소리는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
“갑자기 저렇게 나올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네요.”
“그러게 말이다.”
“잘 키울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위키드 연구소엔 걱정만 푹푹 쌓이고 있었다.
***
“그 녀석을 알아?”
“물론이지.”
“…….”
“넌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쪽이 더 신기한걸.”
갤리가 토마스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였다. 여느 때처럼 점심 도시락을 들고 가게 문을 열던 프라이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갤리를 보며 오늘은 또 어떤 손님이 귀찮게 했는지 생각했다.
“또 누가 귀찮게 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점심 도시락.”
“아, 고마워.”
갤리는 익숙하게 프라이가 건네주는 것을 받았다. 딱히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프라이는 언제부턴가 갤리의 점심을 챙겨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종이봉투 안을 뒤적거리며 샌드위치를 꺼내 든 갤리는 아직도 미간의 주름이 펴지지 않았다.
“이야기 좀 해봐.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 그게.”
갤리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잠깐 되돌아보았다. 과연 이런 일을 그대로 말했을 때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쩝. 괜히 입맛을 다시던 갤리는 프라이의 채근에 결국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좀 이상한 사람이 가게에 들렀다 가서 그래.”
“무슨 소리야?”
“아기를 대충 안고 가던 녀석이었는데,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게다가 아이랑 전혀 닮지도 않았어.”
“흐응.”
“그리고 이름이…….”
“혹시 토마스야?”
“어, 맞아. 토마스…응?”
“왜?”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어?”
갤리가 입으로 가져가던 샌드위치를 베어 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입을 크게 벌렸다. 프라이는 오히려 그런 갤리가 더 신기하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둘은 딱히 성격이 맞아 보이지 않았다.
“프라이,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이웃 사촌이니까.”
“뭐?”
“키만 커서 아기 안고 다니는 녀석 말하는 거 아냐? 이 동네에 그런 사람이 둘일 리가 없는데.”
“그건…맞아.”
“역시.”
프라이의 이야기는 예상보다 길었다.
하도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어르고 있는 녀석을 보았다. 이 추운 날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다 못해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 감기 걸리는데.’
프라이의 한마디에 토마스는 잔뜩 당황했다. 마치 조언자를 발견한 것처럼 팔을 덥석 붙잡았다. 결국,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한 프라이는 토마스의 안내대로 집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집안은 정말 형편없었다고 회상했다.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도 알 수 없는 곳은 사람 냄새라곤 나지 않았다. 아이 옷도 한 벌 없는 곳에 간신히 몇 가지만 쟁여둔 채였다. 아기가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 보였는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부엌을 써도 되느냐고 물었다.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토마스는 아직도 칭얼거리는 아이를 껴안았다.
‘가만있어 봐. 먹을 만한 재료가 있긴 하려나.’
프라이는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토마스는 그런 질문에 넙죽넙죽 대답했다. 프라이는 한 시간도 안 되어서 토마스와 민호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민호가 이런 걸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최대한 부드럽게 만든 이유식을 식히던 프라이가 잔뜩 난감한 표정으로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이유식을 할 단계였는지 민호는 투정을 부리지 않고 잘 받아먹었다. 뭐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일주일 동안 프라이를 토마스의 집으로 출퇴근하게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연구소로 출근하다 갤리를 만난 것이었다.
“한마디로 너 코 꿴 거잖아.”
“뭐라고? 기껏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게 코 꿴 거 아니면 뭐냐. 네가 일주일 동안 둘을 먹여 살렸다는 거 아냐. 하여튼 성격만 좋아서.”
“넌 그렇게 성격이 삐딱해서 뭐 하고 살래?”
“이런 거 하고 산다.”
프라이는 이야기를 해줘도 저런다며 혀를 찼다. 저렇게 삐딱해서 누가 데려가려는지. 그런 친구를 보던 갤리는 다 먹었으니 어서 네 가게로 가라며 다시 타박했다.
갤리는 어쩐지 더 의심이 깊어지는 모양이었지만, 프라이는 이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알아서 알아내겠지, 껄껄 웃던 친구는 저녁 먹을 거면 가게에 들르라는 말을 남긴 채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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