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민호/토민호] Good - Bye Moebius 003
+) NOTICE
영화 기준으로 토마스가 초반 글레이더들과 함께 공터에 올라갑니다.
IF 책에 예민하신 분들은 피해주세요.
결과적으로 영화와 비슷한 줄거리지만, 중간중간 다른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 됩니다.
선공개 분엔 없지만 이후 원고에 (후천적) 엠프렉 소재 및 모브X민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임신 이후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행복한 분위기는 아닙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어느정도까지 연재 후 뒷부분을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책이 나와도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Good - Bye Moebius 003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야 언제나 그랬지만, 러너들의 삶은 더욱 팍팍했다. 러너라는 존재가 없는 공터에 처음 그런 이름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민호였다. 민호는 공터에 올라오고 나서부터 내내 입을 벌리고 있는 미로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언제 열려서, 어떤 시간에 닫히는지. 그 닫히는 시간은 항상 일정한지. 하나하나 계속 눈으로 보고 땅에 새겨가며 무엇인가 생각하던 민호는 어느 날 알비와 뉴트, 그리고 갤리를 불러 모았다.
“내일은 저기에 들어가 볼 거야.”
“…뭐?”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아무리 생각해도 저 안에 들어가야 답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
민호의 손은 곧게 미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쉽게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없었다. 민호가 올라오기 전에도 같은 소리를 하며 미로로 들어간 아이들은 하나같이 공터로 돌아오지 못했다. 굶어 죽었던, 떨어져 죽었던 미로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알비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 옆에 서 있는 뉴트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민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항상 일정한 시간에 열려. 그리고 해가 이 정도 기울어지면 큰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빠른 속도로 문이 닫히지.”
“…….”
“내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단 한 번도 이 사이클에서 어긋난 적이 없어.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건 분명 저 안에 우리가 찾는 답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민호…넌.”
“아무도 하지 않겠다면 내가 할게.”
“…….”
단호한 말을 막을 수 없었다. 뉴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알비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도대체 언제부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저만한 데이터를 뽑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미로가 열리는 시간을 관찰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알비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갤리는 민호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미쳤어? 아무도 미로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아.”
“하지만 난 들어갈 거야. 갤리.”
“…….”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더라도 난 갈 거야.”
“민호. 잠깐만.”
알비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제 겨우 공터에 규칙이 생긴 참이었다. 몇 가지 규칙을 정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진통을 겪었다. 그것을 옆에서 보던 갤리와 뉴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 갑작스러운 제안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한 편으론 일리 있는 말이기도 했다.
“난 여기서 더는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아.”
“나도 그래. 알비.”
“하지만…….”
“내내 생각했었어. 내가 과연 이 공터에서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뭘 해야 할까.”
“…….”
“답은 한 가지뿐이었어. 그러니 알비가 정식으로 허락해주길 바라고 거지.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아.”
“그런데 혼자서 할 수 있겠어?”
“일단 안쪽에 뭐가 있는지만 보고 나올 생각이야. 그리고 아마 내 힘만으론 힘들겠지…….”
민호는 다부진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공터에 올라온 이후로 단단하고 반질반질해지기만 하던 까만 눈이 반짝이나 싶었다. 그리곤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도와달라고 할 거야. 미로 안쪽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고 탈출할 출구를 찾을 거니까.”
“…….”
“다들 저곳이 무섭다고 생각하니 억지로 시키진 않겠지만, 도와준다는 것은 거절하지 않을 생각이야.”
뉴트는 민호의 결심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내내 탈출구를 찾고 있었지만, 저곳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결국, 민호가 이겼다. 과묵하고 별다른 의견도 안 내던 녀석이 어디서 이런 고집이 솟는지 알 수 없었다.
민호는 공터에 올라온 사람 중 처음 자기의 의지로 미로 앞에 섰다. 무작정 도망치려는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떨리는지 긴장을 숨기지 못하고 계속 땅을 툭툭 쳤다. 어느새 듬직해진 어깨가 떨리는가 싶더니 잔뜩 긴장한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런 민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알비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다.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저 안에 들어가는 건 좋아.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곧바로 나오도록 해.”
“…알았어.”
“민호. 조심해.”
“도대체 저 안에 뭐가 있으려나. 뭐 스스로 가준다니까 이제야 알 수 있을 거 같네.”
“…….”
갤리는 빈정거리면서도 못내 긴장한 티를 숨기지 않았다. 그런 동료를 바라보던 민호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내 생각엔 우리를 여기로 보낸 사람들은 이걸 원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겠지.”
“뉴트 말도 일리가 있어. 사실 그래도 상관없잖아. 우리가 탈출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닐까?”
“…….”
민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잠시 멈춰 서서 좌우로 길게 이어진 길을 둘러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한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두꺼운 벽 뒤로 금방 몸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을 하나둘 돌려보던 알비는 아직도 미로 안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괜한 짓을 한 것 같기도 했다. 아직 너무 이른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런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뉴트가 다가왔다.
“알비.”
“…….”
“…걱정돼?”
“물론이지. 민호가 저곳에 들어간 게 잘한 일이지 모르겠어. 내가 허락해도 되는 일이었을까.”
“그건 민호가 정한 거야. 그리고 난 믿어. 분명 돌아올 거라고.”
“…….”
“알비. 네가 흔들리면 글레이드 전체가 흔들려. 우리는 그냥 믿고 있자. 민호는 돌아올 거야.”
“…….”
“민호는 꼭 돌아와.”
“그렇겠지. 내가 요즘 생각 많아져서 괜히 불안하게 만들었네. 고맙다 뉴트. 조금 정신이 들었어.”
“뭘. 이것도 내가 할 일 중 하나지.”
“고맙다.”
“우린 그냥 할 일 하면서 기다리자.”
그렇게 말하는 알비도 영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연신 마른세수를 하던 사람이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믿고 기다리자. 그리곤 뉴트의 바싹 마른 어깨를 툭툭 쳐주고 자리를 떴다.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듯 믿고 기다라는 말을 했지만, 뉴트는 좀처럼 민호가 사라진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까맣게 입을 벌리고 있는 곳은 계속 바라보면 마치 깊은 물처럼 사람을 홀리는 기분이 들었다.
‘다들 이래서 저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건가.’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고 바라보면 속절없이 이끌려 저 안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마치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의 집 같은. 이상한 기분에 뉴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자신까지 홀리면, 대책이 없었다.
게다가 아직 저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깊은 불안함은 눈을 한번 깜박이고,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며 자라났다.
민호는 한 시간이 조금 지나서 돌아왔다. 얼마나 긴장하고 움직였는지 땀으로 푹 젖은 아이가 공터 바닥에 그대로 넘어졌다. 거칠게 내쉬는 숨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그런 민호를 발견하자마자 공터에 있던 아이들이 와르르 달려왔다. 그리고 민호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모여섰다. 저마다 궁금한 점은 쏟아내는 아이들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물 좀.”
민호가 바짝 마른입으로 간신히 한마디 건넸다. 뉴트가 물통을 건네주자 벌컥벌컥 반절도 넘게 비워버렸다.
“하. 죽는 줄 알았네.”
민호가 입을 닦으며 축축하게 젖은 숨을 뱉어냈다.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민호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미로. 움직임. 출구. 몇 가지 없는 키워드였지만, 알비는 무엇인가 알아차린 것 같았다. 이제 가야 할 방향을 잡은 것 같은 표정이기도 했다.
“민호. 네가 본 것을 말해줘.”
“…그러니까.”
민호는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들어가서 한번 꺾자 눈앞엔 복잡한 미로가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서 벽이 움직이는 것을 본 것 같았지만, 아직 지리를 확실하게 알지 못해 거기 까진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높은 벽을 넘어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지르는 기괴한 소리를 들었다. 아마 밤마다 우는 그것이 분명했다. 먹을 것은 없었으며, 몸을 숨길만 한 곳도 역시 없었다. 민호가 하는 말은 쉽게 믿기 힘들 정도로 허황한 말이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벽을 만지면 축축하고, 나 외의 사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어.”
“…….”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리긴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진 않더라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어.”
“일단 조금 쉬는 것이 좋겠어.”
“…그래.”
민호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딛고 일어섰다. 뉴트는 예전에 들어간 녀석들의 흔적을 찾은 것이 없느냐 묻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긴장이 풀린 몸에 잠이 쏟아지는지 민호가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용케 해먹까지 걸어가나 싶더니 그대로 푹 쓰러졌다. 그런 민호를 두고 알비와 몇몇 아이들이 모여 내내 의논했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 봐야 하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누가 가야 할까. 가겠다고 지원할 사람이 있을까. 뉴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알비는 자기라도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뉴트가 크게 반대했다. 공터의 중심과도 같은 사람은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된다고 했다. 알비는 뉴트와 갤 리가 반대하기 시작하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의견을 굽혔다. 내내 생각하던 뉴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들어갈게.”
“뭐?”
“알비는 공터를 지켜야 하잖아. 그럼 부대장인 내가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닐까.”
“…뉴트.”
“어차피 지금 당장 지원자를 구하기도 힘들 걸.”
“…….”
“민호가 일어나면 내가 같이 달리겠다고 전해줘. 누군가 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익숙한 사람이 해야지.”
뉴트는 이미 결심한 듯 팔짱을 꼈다. 무섭지 않으냐고 물어본다면 무섭지 않다 확실하게 말할 순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민호를 백업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중에 물러난다 해도, 지금 당장은…….’
뉴트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다음 날 아침 민호와 뉴트가 나란히 입구 앞에 섰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덴 엄청난 진통이 있었다. 때아닌 말싸움에 공터에서 자기 할 일을 하던 녀석들이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뉴트가 백업을 하겠다고?”
“그래. 왜 모자라?”
“아니…그건 아니고.”
“그럼 뭐가 문제야.”
“뉴트의 문제는 아니야. 다만…….”
민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성장기를 맞은 민호는 날이 갈수록 쑥쑥 자랐다. 이젠 제법 어른티가 나는 어깨엔 단단한 근육이 짜 맞춰져 갔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말주변이 모자란 것이 탈일까. 민호는 한참 할 말을 고르고 있었다.
“혹시나 억지로 하는 거라면, 일단 나 혼자 들어가려고 해.”
“내가 자원한 거야.”
“…….”
“어차피 당장 지원자 뽑기도 힘들고, 당장 저곳이 무섭지 않다고 말해줄 사람도 없잖아. 차출 가능한 인력을 쓰자 이거야.”
“…….”
“넌 너무 걱정이 많아. 일단 뭐라도 해보고 걱정하는 편이 낫지 않아? 지금 당장 헤쳐나갈 곳은 거기 뿐이잖아.”
“그래. 맞아.”
민호는 이제야 결심한 것 같았다. 사실 지원이 필요하다 말했지만, 친구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각자의 의견을 존중한다 말했지만,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뉴트가 낄낄 웃으며 민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러너가 되겠어. 미로를 달리고, 외워서 출구를 찾을 거야. 그리고 그 끝엔 이곳을 탈출할 방법이 있겠지.”
“…뉴트.”
“맞는 말이네. 우리를 여기에 처박은 놈들은 분명 알아서 저 지옥으로 걸어가라고 말하고 있겠지.”
“갤리.”
“아냐. 갤리 말이 맞아.”
민호는 더 이상 시선을 떨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가지를 부탁했다. 러너를 제외한 그 누구도 미로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를 어겼을 시엔 글레이드의 규칙에 따라 처벌한다. 미로에 관한 것은 러너들에게 일임한다. 궁금해하는 것은 괜찮지만,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을 금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로 자체에 다가갈 수 없게 하자는 이야기였다. 알비는 그 제안을 쉽게 이해했다.
“그렇게 하지.”
“미로는 생각보다 무서운 곳일 거야. 파악하는 데 얼마나 걸릴진 모르지만, 다른 녀석들이 괜한 짓을 하지 못하게 해 줘.”
“그래.”
민호와 뉴트는 스스로 러너라고 말했으며, 이 시간 이후로 미로를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공터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서약이었고, 자기만의 약속이기도 했다.
둘은 그 날부터 매일 미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나보단 둘이 낫다고 생각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둘의 합도 잘 맞았다. 뉴트는 민호보다 약간 느렸지만, 못 따라갈 수준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지형을 외워야 하는 러너는 언제나 미로 속에서 정신이 없었다. 미로에서 돌아오던 중 민호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 예전에도 이렇게 달린 적이 있었냐?”
“몰라.”
“…하긴. 우린 기억도 없는데 괜한 소리를 했네.”
“싱겁긴. 네가 그런 소리 하는 거 공터 애들이 알면 놀라서 뒤로 넘어 갈 거다.”
“…….”
“그만큼 실없는 소리란 거야. 우리한테 과거가 어디 있어.”
뉴트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만 계속 진행한다면 곧 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던 희망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러너 전용으로 만든 오두막엔 둘이 스케치한 종이가 엄청나게 쌓이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 얹힌 희망을 바라보며 의지를 다졌다. 조금만 더. 이대로 무사히 미로를 탐색한다면 곧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럴 때마다 뿌듯했다.
하지만 나쁜 일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사람의 체력이 늘 한결같을 수 없었다. 미로가 아무리 위험하다고 하지만, 중간 중간 멈춰서 체력을 보충해야 했다. 익숙하게 자리를 잡은 민호가 물통을 꺼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지치지.”
“아파?”
뉴트가 반대쪽 벽에 비스듬하게 기댄 채 심드렁하게 물었다. 입엔 이미 육포가 물려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을 형편이 아닌 곳이라, 식사도 최대한 간단하게 해결해야 했다. 민호는 그런 뉴트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뭐 그 정도는 아니고. 몸이 좀 이상하네.”
“체력 빼면 남는 것도 없는 녀석이 왜 그러냐.”
“…잠을 잘 못 잤나. 좀…….”
민호가 눈을 찡그리며 팔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러너의 체력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뉴트는 계속 민호가 찝찝해하는 것이 못내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민호는 누군가 말리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일어나 뛸 녀석이었다.
“오늘은 그만하지 않을래?”
“왜?”
“기분이 영 이상해.”
“몸이 찌뿌듯한 건 난데. 넌 갑자기 왜?”
“…그냥.”
뉴트도 잔뜩 굳은 근육을 풀려고 하는지 두 손을 하늘 높이 쭉 편 채 기지개를 켰다. 우직. 낯선 소리가 귀에 들렸다. 뭐지. 뉴트는 눈을 깜박이며 다시 귀를 기울였지만, 다시 들리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돌아가자. 다시 한 번 민호를 재촉하던 뉴트가 벽에서 두 걸음쯤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리고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어?”
“뉴트!”
“이게…무슨.”
“뉴트 피해!”
잔뜩 질린 민호의 표정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상 하리만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땅에서 솟아난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발목을 콱 붙들고 놔주지 않았다.
“…아.”
뉴트는 피할 새가 없었다. 그대로 와르르 쏟아진 돌 더미를 피할 수 없었다. 민호는 눈앞에서 뉴트의 몸 절반이 돌 더미에 깔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왜 하필 뉴트가 기대있던 벽이 무너졌을까. 이곳에서 왜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졌을까. 누구의 탓인가. 온갖 생각인 머릿속을 휘저었다.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
“아…으.”
뉴트가 간신히 손을 움직였다.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돌 밑으로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새빨간 피가 웅덩이를 만들었다. 민호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민. 호. 뉴트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민호를 불렀다.
“…….”
“민…….”
그리고 더는 버티지 못했다. 완전히 기절한 뉴트의 얼굴은 잔뜩 상처가 났다. 그리고 이마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민호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뉴트!”
그제야 퍼뜩 겁이 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굳어있던 몸은 잘만 움직였다. 허겁지겁 맨손으로 돌 더미를 파헤쳤다. 손톱이 부러지고, 여기저기 쓸린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겨우겨우 뉴트를 끌어냈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채 늘어진 녀석을 붙잡고. 볼을 두드렸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뉴트! 뉴트!”
“…….”
“뉴트. 아…이런.”
민호는 정신이 없었다. 보통 때라면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며 가장 좋은 방향을 알아낼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 아직도 피가 줄줄 흐르는 몸을 껴안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가늘게 뛰는 심장이 간신히 살아있음을 알려왔다.
그 순간 민호의 정신을 다잡게 한 것은 미로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멀리서, 순간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는 금방이라도 둘을 가둘 것처럼 굴었다. 움직여야 했다. 미로가 움직이는 순간은 항상 위험했다.
“…….”
민호가 뉴트의 팔을 어깨에 둘러서 단단히 잡았다. 돌아가는 거리를 셈했다. 그리 멀진 않았지만,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이젠 다른 방법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입술을 깨문 민호가 뉴트를 끌고 미로 밖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뛰다 다시 걸었다. 빠른 걸음을 걷다가 이내 멈춰 섰다. 의식이 없는 몸을 끌고 가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드는 일이었다. 둘이 지나간 자리엔 붉은 핏자국이 쭉 이어졌다. 아직도 출혈이 멎지 않았다는 것도, 의식이 없는 것도 불안하지 짝이 없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 살펴볼 수 있었다. 민호는 마지막 힘을 짜내서 뉴트를 끌어당겼다.
미로는 러너 외에 들어갈 수 없다. 러너는 자기의 힘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 규칙을 지키는 아이들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누구 하나 미로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문이 닫히려고 움직이기 직전 공터로 돌아온 민호가 뉴트를 풀밭에 내려놓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아이들이 와르르 몰려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
“민호. 뉴트 왜 이래? 어?”
“…….”
“누가 의료팀 불러와. 알비도!”
“민호!”
“민호!”
아이들의 목소리가 한데 얽혀서 빙글빙글 돌았다. 민호는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너무 지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장 일을 멈추고 달려온 갤리와 알비가 뉴트를 침대로 옮겼다. 민호는 겨우 도움을 받아 일어날 수 있었다. 갤리와 윈스턴에게 뉴트를 부탁한 알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민호에게 다가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일단…….”
“민호!”
“뉴트 치료가 먼저야. 알비. 나중에…나중에 이야기할게. 뉴트부터 좀 봐줘. 뉴트가…….”
민호는 답지 않게 횡설수설하며 비틀거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알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따라와. 너도 많이 다쳤어. 손이 그게 뭐냐.”
“…….”
“가서 이야기하자.”
“그래.”
민호와 알비가 의료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기본적인 상황 파악은 끝나있었다. 제프가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뉴트는 어때?”
“민호…이거 어디서 생긴 상처야?”
“…….”
“일단 나랑 민호 의료팀만 남고 각자 할 일을 하도록 하자. 나중에 한 번에 전달할게.”
알비가 다른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문까지 닫고 나서야 민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돌을 파헤치느라 엉망이 된 손을 꾹 쥘 때마다 상처가 터져서 피가 묻어나왔다.
“미로가 무너졌어.”
“…뭐?”
“왜 무너졌는지 모르겠어. 순식간에 뉴트가…….”
민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그 상황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렸다. 잔뜩 놀란 뉴트의 표정과 순식간에 친구의 몸을 삼켜버린 돌무더기까지. 떠올리기 싫었지만, 말을 해야 했다.
“…돌에 깔렸어.”
“…….”
“괜찮아? 많이 다쳤어?”
“다른 곳은 뉴트가 깨어나야 정확히 알겠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것만 봤을 땐 다리를 많이 다쳤어.”
“…….”
“이 정도 출혈이면, 뼈가 완전히 부러졌을 거야.”
“…….”
“일단 부목을 대놓긴 했는데, 알다시피 우린 약이 부족해. 소독은 한 번 하긴 했지만…감염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
“…….”
“일단 무사히 깨어나길 기도하자.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면 머리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거 같아. 그나마 돌이 머리 쪽으로 무너진 것 같진 않아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제프가 말을 흐렸다. 민호는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이렇게 사고가 생길 줄은 몰랐다. 겨우 만든 러너 팀이었는데. 소중한 친구가 눈앞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 민호의 손에 억지로 붕대를 감아준 알비가 일단 가서 쉬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비틀비틀 일어난 민호는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는지 다시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기다릴게.”
“민호!”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겠어.”
“…….”
“내 잘못이야.”
민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는 사람들은 잠자코 자리를 비켜줬다. 뉴트는 부러진 다리에서 열이 오르는지 며칠 동안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끙끙 앓았다. 물을 적신 천을 이마에 얹어주던 민호는 아침이 되어서야 제프에게 뒤를 부탁하고 밖으로 나왔다.
저러고 나서도 미로로 들어가는 민호를 보며 지독하다고 혀를 차는 아이들도 있었다. 뉴트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저러고 싶을까. 물론 나쁜 마음에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호는 꼭 미로에 홀린 사람 같았다. 뭐가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미로가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가서 항상 비슷한 시간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쉬지도 않은 채 곧장 뉴트에게 갔다.
“뉴트 괜찮아?”
“열은 조금 떨어졌는데, 이제 슬슬 일어나야 하겠지.”
“…….”
“워낙 큰 사고였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뉴트가 그렇게 쉽게 꺾일 애도 아니잖아.”
“…그렇지.”
공터에 근심 걱정이 가득 찰 무렵이 되어서야 뉴트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물론 발을 쉽게 나을 만한 상처가 아니었다. 으.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이 몰려오는 다리를 붙잡은 뉴트는 온몸이 만신창이었다.
“나…어떻게 된 거야. 언제 돌아왔지.”
“…며칠 됐어.”
“뭐?”
“너 정신을 잃고 오늘 겨우 깨어난 거야. 그리고…….”
“다리가…아…돌이 날…….”
뉴트는 더듬더듬 그날의 기억을 끌어냈다. 그랬구나. 예상외로 덤덤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두 배로 속이 답답했다. 뉴트는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채로 웃었다.
“그럼 이제 러너는 못하겠네.”
“…….”
“이 박살 난 다리가 나아야 뛸 수 있는지 알 텐데. 지금은 좀 무리잖아. 안 그래?”
“…….”
“미안하게 됐어.”
“뭐가 미안해!”
민호의 입에서 벌컥 화가 섞인 목소리가 굴러 나왔다. 뉴트는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화를 내. 러너가 없어져서 그래?”
“그런 거 아니야. 왜! 아냐. 미안하다. 화내서.”
민호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려다 멈칫했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서로 복잡한 생각만 가득 담은 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결국, 뉴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괜찮아.”
“…….”
“당장 러너로 투입되지 못하는 게 조금 걸리지만.”
“…….”
“잠시만 혼자 다녀야겠네. 아니면 다음번 신입이 괜찮은 러너 감으로 나타날 수도 있잖아.”
“…….”
“난 정말 괜찮아. 일단 러너는 못 하는 거니까. 음…….”
“뉴트.”
“내가 봐둔 녀석이 있긴 한데.”
뉴트는 민호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주춤주춤 다가온 녀석의 귀에 누군가의 이름을 소곤거렸다.
“뭐?”
“내가 본 공터 녀석 중에 러너 감으론 제격이야.”
“…….”
“내가 이렇게 됐는데, 미로에 혼자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해. 내 말 듣고 다른 러너 팀을 꾸려. 민호. 이건 러너로서 내 의견이기도 하지만, 공터의 부대장의 의견이기도 해.”
“뉴트…난.”
“때론 희망이 없는 걸 놔줄 수 있는 결단도 필요한 거야.”
“…….”
“내 결정은 변함없어.”
“…….”
뉴트의 의견은 너무 단단했다. 민호는 결국 뉴트가 말한 녀석을 찾아갔다. 막 일구기 시작한 밭에서 농경 일을 하고 있던 이안은 놀란 얼굴로 민호를 바라보았다. 뉴트는 그 녀석과 자신의 역할을 바꿔 공터의 도움이 될 것까지 생각하고 추천했을 지도 몰랐다.
뉴트가 더는 러너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온 공터에 퍼진 사실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대장이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공터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공식적으로 러너 팀에 들어갔다.
민호는 여전히 머리가 복잡했다.
'메이즈 러너 > └ 토민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마스민호/토민호] Good - Bye Moebius 005 [선공개분 完] (1) | 2015.06.14 |
---|---|
[토마스민호/토민호] Good - Bye Moebius 004 (0) | 2015.06.12 |
[토마스민호/토민호] Good - Bye Moebius 002 (0) | 2015.06.09 |
[토마스민호/토민호] Good - Bye Moebius 001 (0) | 2015.06.07 |
[토마스민호/토민호] Here I am 006 [선공개분 完] (0) | 2015.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