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민호/토민호] Good - Bye Moebius 002
+) NOTICE
영화 기준으로 토마스가 초반 글레이더들과 함께 공터에 올라갑니다.
IF 책에 예민하신 분들은 피해주세요.
결과적으로 영화와 비슷한 줄거리지만, 중간중간 다른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 됩니다.
선공개 분엔 없지만 이후 원고에 (후천적) 엠프렉 소재 및 모브X민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임신 이후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행복한 분위기는 아닙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어느정도까지 연재 후 뒷부분을 추가해 회지로 만들 예정입니다.
책이 나와도 연재한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Good - Bye Moebius 002
토마스는 그 수술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다. 막연하게 생각을 했다. 항상 어른들이 너희 둘은 페어라고 말하던 트리사와 관련된 수술이 아닌가 싶었다. 둘이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는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딱이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아직 몇 번 더 수술을 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지. 한 번으로 끝날 수술이 아니기도 하고.”
“일단 토마스가 정신을 차려야 뭔가 진전이 있을 텐데, 역시 너무 무리한 수술 일정이었을까요?”
“…아니. 이겨내야 해.”
“…….”
“이겨내야 하고말고.”
담당 연구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는 도중에 온갖 약이 토마스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아파서 끙끙거리며 식은땀을 흘리던 아이는 어느새 까칠하게 말라갔다. 하얗게 일어난 입술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았다.
토마스는 아주 천천히 먼 곳으로 흘러간 의식을 잡았다. 물론 정신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라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반쯤 의식을 잡은 머릿속은 온갖 정보를 한 번에 다 뭉개버린 것처럼 어지럽기만 했다. 조금이라도 손을 움직이려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아. 마른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얼마나 꼬물거렸을까. 그런 토마스를 발견한 사람들이 바쁘게 다가와 의식이 완전히 돌아온 것인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흐릿하게 뜬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보고 기계에 복잡하게 표시되는 심장 소리를 검사했다.
“의식은 돌아온 거 같은데…….”
“…….”
“토마스? 내 말 들리니? 들리면 손을 움직여 보아라.”
“…….”
“토마스?”
“…….”
갑자기 주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뚝뚝 끊겨 들리는 목소리는 애초에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손가락을 힘겹게 움직였다.
하지만 머리가 핑글 핑글 돌았다. 손가락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가쁜 숨이 산소마스크에 가득 찼다. 토마스는 바짝 마른 상태 그대로 부서져 내릴 것 같았다. 촘촘하게 난 속눈썹은 물기 하나 없이 바삭바삭 소리가 나며 떨렸다.
“…….”
“정신이 드니?”
“…으.”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토마스. 잠깐만 다시 잠들면 안 된단다. 내 말 들리니? 토마스?”
“…….”
토마스가 의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어지럽게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눈은 얇은 막에 가려진 것처럼 시선이 온통 우그러진 채 느릿느릿 움직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면서 말하는 목소리와 희마하게 보이는 입 모양이 맞지 않았고, 행동도 눈으로 보는 것보다 두 박자쯤 느리게 움직였다. 보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의 차이가 심해지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약에 절여져 있다 간신히 깨어난 뇌에 갑자기 온갖 정보가 몰려오자 피곤해졌다. 그래서일까. 자꾸 졸음이 밀려왔지만, 주위에 있는 손들이 연신 볼을 두드리고 팔을 주무르며 좀처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귀찮다. 토마스는 그런 손길마저 아팠다. 얼마나 꿈속의 꿈을 헤매고 걸어 다녔지? 흐릿하게나마 기억하던 꿈은 완전히 기억의 저편으로 가라앉았다. 멍하니 눈을 뜨고 있지만,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꿈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희미했다.
“…아.”
며칠 만에 흘러나온 목소리는 형편없었다. 쩍쩍 갈라진 목소리는 성대를 긁으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머리. 아파. 겨우겨우 한마디 내뱉었지만, 밖으로 들리지 않았다. 순간 헉헉거리자 마스크 안에 뿌연 숨이 가득 찼다. 토마스가 연신 뭔가 말하고 있는 것을 알아챈 연구원이 산소마스크를 벗겨주었다. 아. 산소호흡기 없이 숨을 쉬기 시작하자 불규칙하게 들썩이는 가슴이 부풀었다가 급히 꺼지길 반복했다. 입술 사이로 한참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온몸에 필요한 만큼 숨을 고르던 몸은 좀처럼 떨림이 멎지 않았다.
‘…머리 아파.’
열이 올라 웅웅 울리는 귀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순식간에 훅 멀어지는 소리를 따라가기엔 아직 약에서 깨지 못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수술실에 들어갔던 이후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침대에 누웠던 것까진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 이후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뻥 뚫려있었다. 간신히 손에 쥐고 있는 기억의 파편이 만들어낸 기억의 끝은 점점 부서졌다. 아차 하는 순간 손에서 놓친다면 그저 흐릿한 파편만 드문드문 떠오를 뿐이었다.
“아…머리…….”
약이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 지옥이 찾아왔다. 온몸이 퉁퉁 붓는 것처럼 아프다 못해 모든 혈관이 터지는 것 같았다. 간신히 뜨고 있던 눈이 저절로 감길 만큼 아픔이 심했다. 푹 쓰러진 토마스가 끙끙 앓는 것을 도와줄 방법은 그저 진통제뿐이었다.
하지만 먹은 것도 없는 녀석의 몸에 약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헛구역질이 시작됐다. 빈속에 쏟아진 약은 쉽게 흡수되지도 않았다. 이불을 붙잡으며 위액을 토하는 토마스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머리는 빙글빙글 돌다 못해 뇌가 뭉그러지는 것 같았다. 머리가 아프고 눈이 뽑힐 것 같았다. 심장과 폐를 쥐어짜는 느낌을 마지막으로 토마스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진통제와 안정제가 또다시 흘러들어 갔다.
“일단 옮기도록 하지.”
“정말 괜찮은 걸까요?”
“체질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
“아마 이번 이후 경과를 보고 몇 번 더 수술과 약물치료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야.”
“…….”
말단 연구원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토마스를 개인실로 데려간 사람들은 혹시나 생길 일에 대비해 교대로 곁을 지켰다. 시간마다 상태를 체크하고 필요한 약을 다시 넣었다. 그러는 동안 이번 수술에 대한 두꺼운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토마스는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내 잠을 잤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진통제가 떨어져서 다시 한 번 잠이 깨면 지옥이 펼쳐졌다. 머리가 아프다고 울 때마다 고통에 못 이긴 손이 온몸을 긁어댔다. 진통제와 진정제를 놔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토마스는 잠이 깰 때마다 머리가 쪼개질 정도로 아팠기 때문에 차라리 깨고 싶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아파서 구르고 다시 약을 처방받았다. 위액을 토하고 기절하듯 잠드는 일이 일주일도 넘게 계속되었다.
간신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토마스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곰곰이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몸에는 눈에 띄게 변한 상처도 없었고, 흉터도 남아있지 않았다. 화장실 거울에 몸을 비춰보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아이는 영 찝찝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뭐였을까.”
어른들을 붙잡고 물어봤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플레어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수술이라는 말만 해줄 뿐이었다. 역시 다들 뭔가 숨기고 있어. 볼을 부풀리던 토마스는 자신의 몸인데 이렇게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토마스가 계속 물어보는데…….”
“절대 말하면 안 됩니다. 이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다른 실험군을 모두 투입할 예정이니까요.”
“토마스와 다른 아이들이 A라면 그와 대칭되는 수술을 받을 아이는 누구인가요? 최종 선발이 되었습니까?”
“물론입니다.”
총장이 프로필 하나를 내밀었다.
“…….”
“이 녀석이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물론 토마스와의 합도 잘 맞아야겠지만.”
“…민호.”
총장이 건넨 프로필엔 민호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언제부터 민호를 지켜봤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토마스가 민호에게 과할 정도로 많은 관심이 있다는 점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이 사실은 물론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민호를 수술실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젠 이 프로젝트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의문을 가져봤자 아무도 알려주려 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자신이 받은 수술이 상당히 어려운 것이라 몇 번이나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날 뿐이었다.
***
“무슨 일이죠?”
“잠자코 따라오도록 해라.”
“…….”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히 선발된 집단에 포함된 것이니 더 이상의 투정은 용납하지 않겠다.”
“…….”
민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앞에 단단히 버티고 선 어른들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같이 등을 맞대고 있던 친구들을 억지로 떼어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보내버린 것도 짜증이 나는데, 이젠 민호 차례였다. 구석에 바짝 몸을 붙이고 으르렁거리는 작은 짐승 같은 녀석을 익숙하게 잡아 눌렀다. 뒷목을 잡히고 두 팔을 제압당한 민호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지만, 어른들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민호가 끌려간 방 안엔 싸늘한 공기만 가득했다.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알비가 사라지고, 뉴트가 눈앞에서 끌려갔다. 그리고 이번엔 민호였다. 다른 아이들을 다독이는 우두머리 집단에 포함된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 갈 때마다 엄청난 공포가 몰려왔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포는 아이들의 머릿속을 갉아먹었다.
소동물 마냥 오글오글 뭉쳐 앉은 녀석들은 금방이라도 어른들이 자신들을 끌어낼까 두려움에 떨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민호가 끌려나간 이후론 문이 열리지 않았다.
“뭐라고요?”
“그러니까…….”
“민호가 어째서요!”
그리고 이 소식은 뒤늦게 토마스에게 들어갔다. 토마스는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있다가 그대로 벌떡 일어났다. 현기증이 핑 돌아 쓰러지려는 아이를 간신히 잡은 연구원이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토마스의 귀엔 민호란 단어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총장님이 직접 내린 명령이라 나도 확실히는 모른단다. 이미 수술실로 들어갔을 거야. 네 수술과 프로젝트에 상관이 있는 일이니 알아야 한다는 투로 말씀하셨단다.”
“…….”
“수술이 끝나면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마.”
“민호가…왜. 어째서.”
나 때문인가. 왈칵 걱정이 들었다. 숨긴다고 숨겼는데, 어른들 눈에는 그런 것이 다 보인 모양이었다. 물론 민호와 함께 있으면 무슨 일을 당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호의 몸에 멋대로 손을 대는 것은 사양이었다. 토마스 자신조차도 지금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민호까지. 토마스는 마른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토마스도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24시간 내내 지켜보고 있는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어서 몸이 나아야 할 텐데. 토마스에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야 했다. 컴퓨터도 패드도 없는 곳에선 민호의 소식을 듣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트리사나 다른 아이들과 만나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었다. 답답한 우리 같은 공간은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숨이 막혔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 이후 토마스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그저 결과에 굉장히 기뻐했다. 하긴 예민한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꽤나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예전처럼 입맛이 없다며 나오는 밥마다 족족 거부하지도 않았고,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것도 두말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자신의 피가 빨려 올라오는 주사기를 빤히 바라보던 아이는 언제쯤 지긋지긋한 검사가 끝날지 만을 생각했다.
“이제 거의 다 나은 거 아닌가요?”
“…하지만 며칠 더 두고 봐야 한다.”
“도대체 무슨 수술이었기에 티도 안 나는 몸을 이렇게 헤집고 또 헤집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왜냐면 겉으로 티가 나는 수술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
“며칠 지나면 네 방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토마스.”
“…그럼.”
토마스는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며 잠시 눈치를 살폈다. 요즘 고분고분 말을 듣는 토마스 덕분에 분위기가 풀어져서일까. 딱히 아이의 질문을 막지 않았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물어보렴?”
“민호는 수술을 받았나요?”
“…….”
연구원은 그걸 왜 물어보느냐는 표정으로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토마스도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수술을 받았다 치더라도, 민호까지 이렇게 막무가내로 수술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또다시 까칠하게 변할 것이 분명했다. 잠시 시선을 교환하던 연구원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영 떨떠름한 표정으로 토마스와 눈을 맞추고 주저앉은 사람이 입을 열었다.
“민호는 지금 1인 격리실에 있단다.”
“어째서요?”
“토마스만큼 준비가 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지.”
“…….”
“민호가 아무리 실험군 중에 뛰어난 축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단다.”
“그럼 아직 수술에 들어간 건 아니란 소리죠?”
“그렇지?”
“그러면 됐어요.”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겠지만. 실험군한테 너무 정을 주진 말아라. 그 애들은 너와 달라.”
“…….”
토마스는 다르다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근거로 자신과 민호가 다르다고 하는 걸까. 비록 연구원과 연구소 실험군이란 소속으로 만났지만,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편을 나누는 방식이 조금 특이한 건가. 토마스는 억지로 이해했다.
“토마스?”
“…아니에요. 그냥 민호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보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우리 둘이 받은 수술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거 맞죠?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건가요?”
“그럼. 물론이지. 가장 중요한 역할이란다.”
“민호도 잘 견뎌야 할 텐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당장 죽어 넘어갈 것처럼 아파하던 아이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자, 연구원들이 입가에 웃음을 가득 담았다. 어차피 둘이 중요한 열쇠라면 너무 막아서는 것도 좋지 않았다. 물론 토마스가 조금 더 조급해 하도록 잡아둔 것이 맞았다. 아슬아슬하게 타오르기 직전인 불씨를 살리는 것처럼 연구원들은 가능성을 제시했다. 토마스는 묵묵하게 연구원들의 지시에 따랐다.
‘여기서 나가면 당장 민호를 보러 가야지.’
토마스의 머릿속엔 내내 한 가지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토마스가 모르는 사실도 제법 많았다. 예를 들어 민호가 격리실에 있는 이유라던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민호가 1인 격리실에서 내내 갇혀있는 것은 토마스를 위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준비가 덜 되었다고 말한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 더. 좀 더. 토마스의 마음속에 집착과 독점욕이 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심한 상황은 필요치 않았다. 그저 토마스의 시선이 민호를 쫓고 있으면 충분했다. 둘이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어떤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인지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플레어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만드는 핵심 프로젝트인 것은 확실했다.
혹시나 민호가 수술에 들어가진 않을까 걱정하는 아이는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면 소식을 궁금해했다. 못 이기는 척 말해주는 연구원들의 작은 정보에 아이는 더욱 많은 정보를 원했고, 목말라 했다. 다행히도 토마스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소견서를 받았을 때까지 민호는 내내 격리실에 갇혀있었다.
“민호!”
토마스는 회복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달음에 민호를 찾아갔다. 넘어지지 말고 천천히 가거라!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이미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일단 뛰어나오긴 했는데, 민호가 있는 격리실 위치를 몰랐다.
“어디 있는 거지.”
결국, 물어물어 위치를 찾았다. 중요한 실험체가 들어있는 격리실이라고 보기엔 너무 투박한 곳이었다. 토마스는 맞게 찾아온 것인지 잠시 헷갈렸다. 그만큼 형편없는 곳에 민호가 있었다.
“…찾았다.”
작은 감시 창문과 배식구는 단단히 잠겨있었다. 패드를 누르면 검은 유리가 매직미러로 변했다. 격리실에 들어간 수많은 실험체를 한 번에 감시하려는 시스템이었다. 민호의 모습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토마스는 조금씩 다가갔다. 손바닥이 유리에 닿았다. 숨을 내쉬면 하얗게 김이 서릴 정도로 바짝 붙어서 민호를 바라보았다.
민호는 작은 의자에 걸터앉은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며칠이나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했다. 적어도 일주일. 민호는 아무리 소리쳐도 목소리가 밖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은 소란을 피웠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 수술실에 들어간 건 아니었구나.”
토마스가 내내 격리실 주변은 맴돌았다. 조금이라도 더 민호를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당장 격리실 문을 열고 민호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쉬운 표정으로 내내 어슬렁거리는 토마스의 얼굴엔 우중충한 먹구름이 가득했다
물론 바깥의 상황을 민호가 알 리 없었다. 민호는 스트레스가 쌓이다 못해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계속 좁은 곳에 갇혀있으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당장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이곳보단 나을 것 같았다.
“…너.”
“…….”
민호는 토마스가 보는 앞에서 격리실을 벗어났다.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 너무나 가볍게 열렸다. 연구원들이 안으로 들어가 민호를 끌어냈다. 그런 민호의 눈에 토마스가 들어왔다. 저 새끼가. 단단히 잡힌 팔을 뒤틀며 토마스를 노려보았다. 아마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당장 달려들어 한 대 쳤을 것이 분명했다. 토마스는 눈을 깜박이며 민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걸음 비켜서자, 연구원들이 곧 민호를 끌고 익숙한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
토마스는 민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그림자가 한 줌 남았을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음 같아선 당장 옆에 따라붙어 민호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게 민호와 내가 다른 점인가. 토마스는 예전에 들었던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민호의 싸늘한 눈에서, 연구원들의 행동에서 하나하나 떨어지는 정보는 심장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민호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
꼭 해줄 말이 있었는데. 시간은 토마스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단단히 닫힌 문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곱씹던 아이는 조용히 복도에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토마스?”
“기다릴 거예요.”
“…….”
“민호…기다리다가 나오는 거 보고 갈 거니까.”
“…….”
아이를 말릴 수 없었다. 사실 수술이 얼마나 걸릴 진 연구원들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 끝나느냐는 물음에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토마스 때도 그랬던 것처럼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하염없이 시간이 늘어지곤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수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대꾸도 하지 않고 야무지게 자리를 잡은 채 민호가 나오길 기다리는 토마스를 몇 번 회유했다. 하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자 어른들은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너무 늦어지면 억지로라도 끌고 갈 거다.”
“…….”
“몇 번이나 말하는 거지만 너도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중심축이란 걸 잊지 말도록 해라. 알겠느냐?”
“…….”
“토마스.”
엄한 목소리에 무릎에 얼굴을 대고 있던 아이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다리를 둘러 잡은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알았어요.”
“그래.”
민호의 수술은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토마스가 받았던 것과는 얼마나 다른 수술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시계가 얼마나 움직였는지도 까먹을 정도가 되어서야 민호가 밖으로 나왔다. 토마스가 그랬던 것처럼 약에 취한 몸이 침대 위에 죽은 것 마냥 늘어져 있었다.
“…민호.”
토마스가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움직이는 침대 옆에 바짝 붙었다. 산소호흡기와 각종 링거를 주렁주렁 단 몸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 같았다. 잔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뒤를 따르던 토마스는 결국 연구원의 손에 잡혔다.
“왜요!”
“민호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단다. 일어나면 만나렴.”
“…….”
“토마스.”
“싫어요. 차라리 눈 뜨기 전까지 옆에 있게 해주세요. 다들 말했잖아요. 민호와 나는 다르다고.”
“…….”
“만약 일어났을 때 내가 보러오면 분명 화낼 테니까.”
“…….”
“더는 고집 부리지 않을게요.”
토마스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억지로 어른이 되어야 했던 아이들은 그저 키만 쭉 컸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토마스는 민호 옆에 있을 수 있었다. 죽은 것처럼 누워있는 녀석의 옆을 차지한 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민호. 너랑 나는 다르다고 해.”
“…….”
“난 그냥 친구가 필요했을 뿐인데. 왜 다들 너와 가까워지는 걸 싫어하는 걸까.”
“…….”
“너도 날…싫어해?”
“…….”
“날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둘이 중요한 열쇠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멀리 있는 것 같을까.”
“…….”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민호는 대답을 할 리 없었다. 한참 혼자서 떠들다 지치면, 민호를 바라보았다. 의자를 좀 더 가까이 가져가서 침대 위에 팔을 얹고 엎드렸다. 토마스의 눈에 걸린 이불이 고르게 움직였다. 숨은 쉬고 있는데 눈을 뜨지 않았다.
토마스가 조용히 일어나서 침대 위로 올라갔다. 민호의 허벅지에 걸터앉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두 손으로 어깨를 살짝 누르면서 허리를 숙였다. 토마스의 이마가 민호의 배에 닿았다. 그대로 웅크린 토마스가 끙끙거리며 민호를 찾았다. 민호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한마디 할 것 같은 입술은 아직도 제 색을 찾지 못했다.
“민호….”
“…….”
“나 미워하지 마. 응?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
“난…그러니까.”
민호는 대답이 없었다. 토마스는 스스로 이렇게 좋아한다는 감정을 드러낸 것이 처음이었다. 뭔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이것도 수술이 의도한 것 중 하나인지. 제한된 정보로 자가진단하기엔 너무 위험했다. 애써 불안한 마음을 눌렀다.
“…기억이 사라져도 잊지 않고 싶어.”
“…….”
“그만큼 널 좋아해.”
“…….”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토마스가 내내 혼잣말하는 동안 민호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민호가 눈을 뜰 때까지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며칠이나 회복실에 앉아있었을까. 민호의 의식이 희미하게나마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토마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연구원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다시 회복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무사히 깨어난 얼굴을 보고 싶지만, 반대로 소중하다 생각하는 친구에게 미움받긴 싫었다. 토마스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침대 위에 웅크려 앉았다. 한참 불안해하던 아이는 민호가 무사히 회복했단 소식을 듣고 나서야 긴장을 풀었다.
***
제대로 말 한마디 건네 보기도 전에 민호가 공터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토마스조차 알지 못했다. 아직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데, 민호는 그렇게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으로 가버렸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막 모래를 만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위키드 총장의 결정이었기에, 누구 하나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토마스가 바로 민호 위를 이어 공터로 올라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감정이 불안해지고, 몸에 자잘한 문제가 생기면서 조금 뒤로 미뤄졌다. 민호는 이 정도까지 나빠지지 않았는데, 토마스는 혼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위키드는 다른 해결책을 내놓았다. 민호와 토마스 사이를 메우기 위한 징검다리가 필요했다. 조금 늦게 올라갈 예정이었던 아이들의 리스트를 주르르 뽑아냈다. 그리고 토마스와 같은 수술을 받은 녀석들을 골라낸 후 우르르 공터로 올려보냈다. 물론 그 중에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치 쿠션 역할이라도 하라는 것처럼 공터로 내몰린 아이들은 정신이 없었다. 몇몇은 숲 속에서 길을 잃었고, 그중에도 용감했던 아이들은 이곳을 빠져나가겠다며 미로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뭐하나 빠진 로봇처럼 자꾸 오작동하고 있는 토마스의 몸을 진정시키는 내내 몇 명의 아이들이 공터에서 죽어 나갔는지. 희생자 숫자는 공터를 바라보는 연구원만 알고 있었다.
“토마스를 빨리 올려 보내야 테스트가 시작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긴 하지.”
“…….”
“그런데, 토마스가 아직도 불안정해. 물론 민호와 같이 있어서 감정이 폭발하는 걸 수 있지만,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생각하네.”
“하지만…….”
“저기에 올라가서 혹여 발작이라도 일으킨다면 우리가 손을 쓰기 힘들어지네. 게다가…….”
“알겠습니다.”
“그래. 가서 토마스 상태나 자세히 살펴보도록. 괜찮다면 다음번에 올려 보내도록 하지.”
“네.”
그나마 토마스에게 가장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던 연구원은 자처해서 간호를 맡았다. 공터에 있는 아이들이 상제로 자라는 동안 토마스도 크고 있었다. 한 뼘도 넘게 키가 그고 손이 자랐다. 하지만 하얗게 뜬 얼굴은 여전히 아파 보였다.
“토마스 괜찮은 거니?”
“…아마도요.”
“그래. 뭔가 먹을 수 있으면 먹지 않을래?”
“아뇨.”
입맛이 없는지 고개만 저었다. 하긴 머리가 아파서 위액을 토하던 아이가 뭔가 먹을 생각이 날 리 없었다. 옆에 앉아서 까칠하게 마른 손을 쓰다듬어 주던 여성 연구원은 작게 한숨을 쉬며 반대쪽 손으로 이마를 만져주었다. 식은땀이 가득한 이마엔 머리카락이 다닥다닥 젖은 채 붙어있었다. 살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런 손길에 금세 잠이 든 아이는 속으로 끙끙 앓았다.
플레어에 면역이 있는 새로운 세대. 그들을 통해 좀 더 순수한 면역 개체를 뽑아내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가장 먼저 이 계획을 실행할 숙주가 필요했다. 엄격하게 선발된 개체들은 나름대로 수술을 받았다. 민호. 토마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억이 지워진 채 공터에 도착하더라도 서로 무의식중 끌릴 수 있게. 그리고 그 끌림이 점점 더 깊은 감정을 만들 수 있도록. 종국엔 위키드가 원하는 대로 새로운 면역세대를 만들어 내는 것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비밀스럽게 진행된 계획은 조심스럽고 은밀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곳에 던져진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몸부림치고 있을 뿐이었다. 수술을 통해 몸에 무엇인가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 아니면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는 것일까. 미리 올라와 있던 사람들은 새로 올라온 신입인 민호를 맞아주면서 그저 늘어난 입을 걱정했다.
토마스가 공터에 투입되는 것은 생각보다 늦어졌다. 민호와 토마스 사이에 열 명도 넘는 아이들이 공터로 올라가고 나서야 비로소 결정이 내려졌다. 그런 결정에 남은 아이는 반항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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