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 뉴트는 간신히 격리실을 빠져나와, 되는 대로 헤매고 있었다. 옷은 사막에서 편히 움직일 만한 복장이 아니었다. 체온이 너무 올라가서 바깥이 뜨겁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두툼한 목도리를 둘둘 감은 채 간신히 눈만 내놓은 상태로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다.
“여긴 어디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간신히 만난 사람은 사막 모래에 반쯤 묻혀있는 송장이었다. 띄엄띄엄 광인들이 죽어있는 것을 이정표 삼아 광인 궁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물론 뉴트는 그 장소를 기억하지 못했다.
여전히 바짝 마른 손목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본능이 시키는 대로 걷는 뉴트 뒤로 긴 그림자가 끓어올랐다. 체온은 점점 뜨거워져서 온몸의 피가 그대로 말라붙을 것 같았다.
이 발걸음이 멈추는 곳에 자신의 답답함을 풀어줄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았다.
***
석양이 지고 있었다.
뉴트는 눈으로 새빨갛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발길이 가는 대로 하염없이 헤매다 보면 언제나 어둠이 스며들었다. 오늘은 여기서 잠을 자야 하나. 온 세상을 집어삼킨 사막은 뉴트의 발목은 부드럽게 감싸 쥐고 놔주지 않았다. 뉴트는 한숨을 쉬며 사막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았다.
“…….”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곳에 달빛이 하얗게 내렸다.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을 따라 저 멀리 다 무너져가는 건물이 흐릿하게 눈에 보였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홀로 앉아있는 뉴트는 최대한 바람을 피할 곳을 찾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모래 폭풍에 휘말리는 것. 두 번째는 영원히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죽는 것. 세 번째는 없었다. 혼자 있다거나 누군가 뒤에서 덮친다는 것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차피 한 번 죽을 뻔했는데, 그런 거로 목숨을 잃을 운명이라면 벌써 이 세상에 없을 거로 생각했다. 차 문이 다 떨어져 나간 자동차에 몸을 숨겼다. 세찬 바람은 어둠을 머금고 점점 추워졌다. 사막은 낮에는 끓어올랐지만, 해가 지면 그 어느 곳보다 추워졌다. 뉴트는 온몸을 빈틈없이 두른 옷을 좀 더 단단하게 여미며 가늘게 신음을 내뱉었다.
“…춥다.”
아무리 체온이 펄펄 끓어도 한계가 있었다. 쩍쩍 갈라진 손이 바람에 부서지지 않을까. 내일은 눈을 뜰 수 있을까. 뉴트는 한참 생각이 많아졌다. 누구를 만나야 이 답답함을 풀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이미 세상은 다 죽어가고 있었고,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내일은 누군가 찾을 수 있길.”
뉴트는 항상 같은 생각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계속 걷다 보면 이 사막의 끝이 보일 것 같았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점점 그 생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모래로 된 비가 석 달 열흘 동안 내려서 모든 곳을 채워버린 것 같았다. 이젠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은 온통 부서진 유리와 뾰족한 철근이 마구잡이로 널려있었다.
“그래도…살아있으면.”
살아있으면 누군가 만날 수 있을 거야. 뉴트는 흐릿하게 빛나는 별 무리를 하나하나 세어보다 잠을 청했다. 조각조각 깨진 기억을 이어붙이는 시간은 고독하기만 했다. 꼭 잠이 들려 하면, 온갖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민호. 토마스. 알비. 척. 갤리. 단어가 조금 더 기억났다. 하지만 저 사람들이 누군진 아직 몰랐다. 적인지. 아니면 친구인지. 혹은 어른인지.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그저 이름 한마디만 손에 쥔 채 세상을 헤맬 뿐이었다.
목이 타는 갈증을 해소하려면 저 사람을 만나야 했다. 만나서 붙들고 내가 누구냐고 물어봐야 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가 당신들과 무슨 관계였느냐 라는 질문도 하고 싶었다. 뉴트는 너무 생각이 많아. 순간 귓가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
뉴트가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귀에 들리는 것은 모래를 몰고 지나가는 바람뿐이었다. 산이었다면 메아리라도 말동무로 삼을 수 있을 텐데, 사막은 너무 황량했다.
“잘못 들었나.”
이젠 몸이 망가지다 못해 헛소리가 들리나 싶었다. 이 이상 몸이 안 좋아지면 움직이는 데 불편할 텐데. 뉴트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몸도 굉장히 불편하긴 했지만 말이다. 조금이라도 잠을 자야 했다. 뉴트는 다시 꼬물꼬물 몸을 웅크렸다.
**
“민호.”
“…….”
“민호. 이쪽이야. 오늘은 이쯤에서 쉬자”
토마스는 한쪽만 남은 벽을 등 뒤에 둔 채 민호를 불렀다. 어둠 속에서 뭔가 보이는 건지. 민호는 내내 사막을 바라보며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여튼. 민호가 저러고 있으면 앞으로 한 시간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토마스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하게 덮을만한 것을 찾았다. 다 떨어진 누더기를 주워오고, 불을 피울만한 재료를 찾았다. 나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적어도 불이 붙을 만한 목재 장식만 찾아도 행운이었다.
“…오늘은 운이 좋네.”
토마스가 사막에 반쯤 묻혀있는 문을 끙끙거리며 끌어냈다. 너덜너덜한 부분을 발로 강하게 밟자 뿌득 소리가 나며 쩍쩍 갈라졌다. 이 정도면 어떻게든 불을 피울 수 있었다. 주섬주섬 목재 조각을 들고 돌아온 토마스는 다시 한 번 민호를 불렀다.
“민호! 뭐가 보여?”
“응? 아니.”
허탈하게 웃으며 돌아선 민호는 토마스 품에 한가득 안긴 나무를 보자 미안한 표정으로 모래 언덕을 쭉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리곤 불을 피웠다. 이젠 노숙이 너무 익숙해진 둘은 자연스럽게 벽에 등을 댄 채 주저앉았다. 먹을 건 넉넉하지 않았다. 돌아갈 생각을 하면 이쯤에서 방향을 돌려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괜히 모닥불을 들쑤시는 민호의 표정엔 내내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토마스도 마찬가지였다. 민호가 가진 희망이 전염이라도 된 것인지 꼭 저 멀리 뉴트가 살아있을 것 같았다. 내일은 찾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간신히 한마디를 뱉어내곤 한숨을 쉬었다.
“일단 자자. 민호. 내일 움직이려면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지.”
“내가 먼저 불침번 할 테니까. 먼저 자.”
“여긴 괜찮을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내 느낌이야.”
“…….”
또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며 타박하던 민호는 예상보다 순순하게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사막은 밤이 추운 만큼 아침이 빠르게 왔다. 내일도 무사히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
뉴트는 해가 사막 끝에서 나타나기도 전에 발을 옮겼다. 슬슬 다시 달아오르는 사막은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석양처럼 새빨갛게 물드는 아침 하늘을 바라보던 까만 눈에도 불꽃이 옮겨붙었다. 버석버석하게 마른 피부는 어제보다 조금 더 균열이 생겼다.
뉴트는 목도리를 코끝까지 올려 감았다. 예전엔 이 정돈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더 안 좋아진 건지. 아니면 체온이 점점 오르는 것인지. 해가 완전히 뜨고 사막에 뜨거운 공기가 가득 차도 몸은 내내 춥기만 했다. 적어도 위키드 내에 있을 땐 몸 상태에 대해서라도 알 수 있었는데. 괜히 입맛이 썼다. 이미 뛰쳐나온 것을 어쩌랴 싶어 고개를 몇 번 저을 뿐이었다.
운명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뉴트와 민호, 토마스는 서로를 향한 채 곧게 걸어가고 있었다. 거리는 아직 꽤 떨어져 있었다. 이대로 누군가 방향을 틀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스쳐 지나갈 순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셋은 여느 때처럼 생명 반응을 쫓아 사막을 헤맬 뿐이었다.
“벌써 해가 지는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
“민호. 뭔가 기분이 이상해.”
“…….”
“그리고 우리는 내일부터 다시 돌아가야 해. 알고 있지?”
“…….”
“다음에 다시 나오자. 그땐 아예 밖에서 두 배 정도 버틸 수 있게 짐을 가지고 나오는 거야.”
“…….”
“민호.”
“뉴트…살아 있겠지?”
“…….”
민호는 갑자기 무거운 말을 툭 던졌다. 처음으로 보인 흔들림에 토마스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민호는 그런 토마스의 얼굴을 살피더니 괜한 소리를 했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른하늘에 비가 내렸다. 바짝 마른 사막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온 세상이 엉망으로 변했다. 모래는 물을 담을 힘이 없었다. 군데군데 푹푹 파인 곳엔 물이 흘렀다. 안 그래도 다리를 붙잡는 모래가 습기를 머금자 걷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갑자기 무슨 비야.”
“나도 모르지.”
“…우리가 사막을 헤매고 다닌 지 몇 년이 된 거 같은데, 이런 거 처음 봐.”
“잔말 말고, 비 피할 곳이나 찾아. 이 똘추야.”
둘은 허겁지겁 비를 피하러 달려갔다.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쏟아지던 비가 멎는 덴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축축하게 젖은 옷을 훌렁 벗어서 물을 짜던 토마스는 언제 비가 내렸느냐는 듯 쨍쨍한 하늘을 보며 짧게 욕을 했다.
“아주 그냥 우리를 놀리나 보네.”
“…….”
“이거 마르기 전까진 모래가…자꾸…….”
“그래도 그쳐서 다행이다.”
“그건 그래.”
토마스는 또 어린애처럼 웃었다. 물기에 닿기만 하면 달라붙는 모래를 털어내는 것도 이젠 반 포기상태였다. 그리고 모래 먼지가 모두 가라앉은 덕분일까. 둘의 눈앞엔 다 무너져가는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