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토마스&뉴트토마스/민톰&늍톰] 전력60분 : 기다림
+) NOTICE
위키드가 수인 브리딩을 하는 회사라고 설정한 수인AU입니다.
멀티 커플 주의
민호랑 뉴트가 공평하게 토마스를 이뻐해 주려고 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기다려.”
토마스가 간신히 눈을 뜨고, 온갖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무렵 처음으로 들었던 말이었다. 지금이야 똑똑하다고 다들 칭찬하지만, 그 당시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작은 녀석은 그 말을 이해하기 너무 어려웠다. 이상보다는 본능이 앞서는 작은 몸은 열심히 어미 품을 찾기 위해 꼬물거렸다. 새끼 고양이가 우는 것처럼 빽빽 대는 녀석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연구원은 가만히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
하지만 그 손길이 영 답답한지 사방으로 버둥대는 녀석을 버틸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세게 쥐면 다칠까 싶어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조심 작은 몸을 옮겼다. 막 태어난 수인은 동물과 다를 것이 없어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했다. 물론 인간의 아이라고 다들 것은 없다고 하지만, 인간보단 동물에 조금 더 가까운 녀석은 눈도 뜨지 못한 채 빽빽 울며 부모를 찾았다.
“그렇게 울어도 여기에 네 부모는 없다. 이 녀석아.”
“…….”
“들리기는 하는 건가.”
물론 눈을 간신히 뜨고 있다 해도,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하는 녀석은 계속 울기만 했다. 높게 우는 소리를 들으면 동물인 것이 확실한데,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인간이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연구원은 더 이상한 마음이 들이 전에 맡은 일을 끝내기로 했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든진 알 수 없었다. 질질 끌어봤자 남는 건 잔업 뿐이야. 몇 번이나 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 이제 들어가자.”
따뜻한 전구가 설치된 침대 안에 토마스를 눕혔다. 사람보단 고양이에 가까워 보이는 녀석은 자연스럽게 따뜻한 곳으로 기어갔다. 하지만 그곳엔 따뜻한 부모의 품이 없었다. 연구원은 보들보들한 천을 잔뜩 넣어주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불이 꺼진 방 안에선 인큐베이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그 소음 사이에서 낑낑거리는 목소리가 가물가물 들리는 것 같다가 어느새 뚝 끊겨버렸다.
***
“토마스. 안 돼.”
“…….”
“기다려.”
“…….”
잔뜩 짜증 난 표정으로 꼬리로 바닥을 팡팡 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구원은 엄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연구실에서 자라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를 꼽으라면 ‘기다려’ 였다. 확실했다. 제대로 귀가 들리지 않을 무렵부터 무엇인가 하려고 하기만 하면, 지겹도록 쫓아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토마스는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진 아직 몰랐지만,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장난감이 있어도, 먹을 것이 있어도 항상 마찬가지였다.
“…….”
뚱한 표정으로 쭈그리고 앉아있으면, 흰옷을 입은 어른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크게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이러면 털이 엉키는데 어른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귀를 쫑긋대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귀찮은 일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죽을 정도로 힘들진 않았다.
“토마스.”
“응?”
“토마스. 이리와 봐.”
“…….”
“어서.”
제일 좋아하는 루니아의 목소리에 토마스는 곧장 반응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몸단장하기 귀찮게 머리를 헝클어트리지도, 억지로 손을 잡고 두 발로 서게 하지도 않았다. 냉큼 뛰어간 녀석이 다리에 착 달라붙어서 고릉고릉 목으로 울었다.
“이거 선물.”
“와!”
단 걸 계속 먹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며 잘 주지 않던 간식이었다. 냉큼 받아서 발톱으로 종이를 쭉쭉 찢어내면 달콤한 냄새가 뭉클 올라오는 사탕이 보였다. 혀로 날름 입에 주워 넣었다. 볼이 불룩해진 녀석이 귀여운지 루니아는 계속 등을 쓸어주기만 했다.
“루니아.”
“왜 그러니?”
“왜 다들 나보고 기다리라고만 할까.”
“그게 무슨 소리야?”
“자꾸 뭘 하려 하면 안 된다고만 하고. 기다리라고 하고. 재미없는데…….”
“그건 토마스가 아직 어려서 그러지.”
“…….”
결국,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사탕도 줬는데 굳이 다시 물어보고 싶진 않았다. 까득까득 송곳니로 사탕을 깨물어 먹던 토마스는 또 한 번 혼자 남겨졌다.
***
동물 특유의 예민함은 잠을 자고 있어도 늘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보통 때라면 푹신한 쿠션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한참 깊은 꿈을 꿀 시간이었다. 사박. 사박.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복도를 걷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날카로운 것이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소곤소곤 말을 하고 있었다.
“…….”
토마스가 스르르 눈을 떴다. 이런 밤에 누군가 올 리 없었다. 아직도 칭얼거리는 습관이 남아있어서 한번 잠이 깨면 귀찮다며 연구원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잠이 잔뜩 눌어붙은 눈을 손으로 슥슥 비비던 녀석은 또 한 번 낯선 소리를 들었다.
“…누구?”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토마스는 조심스럽게 쿠션 위에서 내려왔다. 잔뜩 긴장한 채 바닥에 납죽 엎드렸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하고 있으면,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참 숨을 죽인 채 유리 벽 너머에 고여 있는 캄캄한 어둠을 노려보았다. 가늘게 찢어진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잡아내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귀는 아까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쉼 없이 까닥였다. 꼬리는 잔뜩 긴장해 빳빳하게 부풀어 올랐다.
“…….”
별다른 움직임이 좀처럼 보이지 않자, 조금 호기심이 돈 토마스는 살금살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리 벽에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더니 손으로 유리 벽을 꾹 누르고 일어섰다. 보통 때면 두 발로 서는 것 초자 싫어하던 녀석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캬아악!”
“…….”
그 순간 까만 눈 두 쌍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반사적으로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 토마스가 펄쩍 뛰어오르며 유리 벽에서 멀어졌다. 빳빳하게 털을 세운 채 잔뜩 경계하는 녀석은 잔뜩 몸을 부풀린 채 송곳니를 보였다.
“수인이야.”
“우리도 그렇잖아.”
“뭔가 달라 보이긴 하는데, 이 녀석도 실험 체인가.”
토마스와 달리 두 발로 선 녀석들이 어둠 속에서 눈만 반짝이며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토마스는 둘의 대화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전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만 겨우 쉬는 녀석을 바라보던 둘은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인 채 말이 없었다.
“넌 누구야.”
“…….”
“누구냐고.”
“…….”
“말을 못하는 녀석인가.”
“뉴트. 잠깐만.”
“그냥 내버려 둬. 뭐하려고.”
“알아볼 게 있어.”
“…….”
“잠시만.”
“그러다 우리 둘이 끌려가면 볼만 하겠다. 안 그래? 민호?”
“잠시만.”
민호가 조심스럽게 유리 벽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여전히 눈을 크게 뜬 채 얼어있는 녀석은 간신히 꼬리만 까닥거렸다. 민호가 발톱으로 유리를 긁었지만, 기분 나쁜 소리만 들릴 뿐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가둬둔 건가. 민호의 눈은 내내 토마스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런 민호를 보고 있던 뉴트도 호기심이 동하는지 점점 가까이 걸어왔다.
“왜 그래?”
“이상해. 같은 수인인데,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아.”
“그냥 귀가 안 들리는 녀석인가 보지.”
“아냐. 분명 귀가 계속 움직이면서 소리 정보를 모으고 있는데…….”
“민호. 그게 중요해? 지금 우리가 잡히냐 마느냐의 문제인데.”
“그래도 저런 녀석이 있는데 두고 갈 순 없잖아.”
“…….”
하긴 아직 어른 녀석들이 어른 키만큼 높이 설치된 출입문 용 패드를 만질 수 없었다. 유리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 걸 보니 깨고 구할 수도 없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뉴트는 초조해 하며 민호를 잡아당겼다.
“지금 가야 해. 아니면 늦어.”
“…그래.”
민호가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토마스는 조금씩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녀석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그리 많지 않았다. 민호와 뉴트는 순간 맑은 눈동자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았다. 하지만 데리고 나갈 방법이 없었다.
“…….”
까득 까득.
끊임없이 유리를 긁는 발톱이 부러질까 걱정이 됐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민호는 결국 다시 주저앉았다. 뉴트는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간 없어. 하지만 토마스의 얼굴을 보고나니 매몰차게 굴 수 없었다.
“…어쩌려고 그래.”
“나도 몰라.”
“…….”
“하지만…….”
“하지만?”
민호는 말이 없었다.
토마스의 발톱이 젖혀져서 피가 비치는 것을 보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기다려.”
“…….”
거짓말처럼 움직임이 뚝 멎었다. 뭐라고 말을 하려는 것 같은데,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순 있지만, 제대로 조합할 수 없었다. 어린 수인들에겐 그들만의 언어 체계가 있었고,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구사하기 전까진 그쪽이 훨씬 더 편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녀석은 수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기다려. 알았어?”
“…….”
“나중에 꼭 데리러 올 테니까. 기다려.”
“…….”
놀랄 정도로 순하게 풀어진 눈동자에 그늘이 사라졌다. 그러더니 가볍게 깜박거렸다. 민호는 두 번 돌아보지 않았다. 뉴트도 뭐라 한마디 중얼거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마스는 둘의 모습이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제자리에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을 때, 토마스는 어제 도망간 녀석들이 결국 잡히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기다려. 나중에 데리러 올게. 눈이 까만 녀석들은 꼭 어른 같은 말을 했다. 연구원 품 안에서 뒹굴 거리다가 우유를 받았다. 그리고 혀로 우유를 핥으며 어젯밤 꿈같던 상황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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