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뉴트/그레이브스뉴트+크레덴스] Home Schooling 014
+) NOTICE
그레뉴트 기반으로 크레덴스 줍는 이야기
그레이브스 한참 안나옴 주의.
둘이 일면식도 없어보이지만 영화 이후 이야기로 천천히 진행합니다.
영화기반이기때문에 약스포..? 있습니다.
뉴트가 크레덴스를 많이 아껴줍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영화 이후 그레이브스와 크레덴스를 다시 만난 뉴트 이야기.
현재 뉴트는 뉴욕에 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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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방에 돌아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뉴트는 아직도 눈치 없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당황했다. 처음 뉴욕에 돌아가기로 정한 이후 굳게 먹었던 결심은 눈이 녹는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그저 어린애 같은 모습으로 또 한 번 그레이브스 앞에 선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
괜히 머리를 쥐어뜯어 봤지만, 딱히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그레이브스의 얼굴을 봤고, 무사한 것을 확인한 행동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켜켜이 쌓여가던 걱정을 한 번에 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안심 속에서 슬금슬금 민망함이 피어오르는 것은 그저 언제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그레이브스 앞에 서 있기 때문인가 했다.
“나도 아직 어려.”
많이 어린가 봐. 늘 이젠 다 컸다고 말하던 말투는 간 곳이 없었다. 뉴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된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가 그대로 뒤로 누워버렸다. 높은 천장이 시선 가득 들어왔다. 그렇게 낯선 곳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남의 집 같은 건지. 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몸이 계절을 알지 못하는 걸까. 뉴트는 뒤늦은 봄을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몸이라도 움직여야지.”
마음이 복잡할 땐 집중할 곳을 만들어야 했다. 뉴트는 침대에 놓여있는 가방을 끌어당겼다. 물론 티나가 알면 뒤로 넘어갈 만한 일이지만, 당장 가방 속이라도 살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뉴트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괜히 눈치를 봤다. 단단히 묶은 끈을 풀어내고 가방을 와락 껴안았다.
“…….”
막상 가방 안으로 들어가자니 쉽게 결심이 서질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뉴트는 몇 번이나 가방을 안은 채 방 안을 빙빙 돌았다. 결국, 러그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천천히 가방을 열었다. 다행히 니플러도 튀어나오지 않았고, 큰일이 생긴 것 같지도 않았다.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천천히 심호흡하며 익숙한 몸짓으로 사다리를 타고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곧 뉴트가 사라졌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방이 닫혔다. 또 한 번 덩그러니 남게 된 가방은 한동안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얘들아?”
“…….”
“엄마 왔어. 다들 잘 있었고?”
그새 약간 흥분된 말투가 툭툭 흘러나왔다. 며칠 보지 못한 것뿐인데 꼭 한두 달은 족히 떨어진 기분이었다. 애써 어색한 기분을 털어낸 뉴트의 품에 니플러가 와락 달려들었다. 잔뜩 토라진 녀석의 배주머니에 작은 동정을 하나 밀어 넣었다.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녀석을 토닥이던 뉴트는 망가진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법이 제대로 작동한 모양이었다.
“아무 일 없었고?”
니플러가 대답을 할 리 없었다. 니플러가 동전을 가져다 두기 위해 둥지로 간 틈을 타 뉴트는 크레덴스가 누워있는 방을 들여다보았다. 생각보다 회복이 더뎌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마법을 걸어준 것이 아직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새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일 테고, 새롭게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중일지도 몰랐다. 치렁치렁하게 긴 머리카락이 베개에 푹 파묻혀있었다.
“크레덴스?”
“…….”
이쪽도 대답이 없었다. 뉴욕으로 돌아온 것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전혀 모를까. 뉴트는 또 마음이 복잡해졌다. 자신이 그레이브스를 만나서 풀어야 할 일이 있는 만큼 크레덴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복잡한 인간관계에 끼어들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짐작해야 했을까. 점점 머리가 복잡해졌다.
“다행히 큰일은 없는 거 같은데…….”
크레덴스는 함부로 깨울 수 없어서 들여다보기만 했다. 아무리 그레이브스가 모른 척 눈감아 준다고 해도, 오랫동안 가방 안에 머무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뉴트는 소매부터 걷은 다음 바쁘게 가방 안을 오가기 시작했다. 더러워진 곳을 치우고 먹이를 놔준다. 언제 또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최대한 많은 것을 챙겨주고 싶었다. 한참 허리도 펴지 못하고 일을 하다 겨우 짬이 났다.
“…….”
허리에서 우드득 소리가 나고, 어깨는 뻐근했다. 뉴트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주무르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포트키를 사용하면서 혹시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견뎌준 것 같았다. 크레덴스에게서 분리해낸 옵스큐러스는 예전보다 더 엄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아무리 숙주가 없으면 금방 소멸하는 녀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멋대로 처리할 순 없었다.
“옵스큐러스도 괜찮고, 다들 얌전하고. 다행이네.”
이제야 슬쩍 웃어본다. 니플러가 계속 들러붙는 것을 겨우겨우 달래서 떼어놓았다. 두걸은 가만히 둥지에 앉아 있다가 자꾸 고개를 기웃거린다. 뉴트는 그런 행동의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두걸의 호기심과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뉴욕에 들어온 이상 그럴 수 없었다. 혹여 가방 안에서 큰일이라도 벌어진다면 걷잡을 수 없었다.
“두걸?”
“…….”
“크레덴스가 신경 쓰여?”
“…….”
“그런 거야?”
“…….”
“아직은 안 돼. 시간이 필요한 걸,”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할게. 그리고 며칠 동안 가방 안으로 못 들어올 수 있는데 다들 얌전히 있으라고 말 좀 전해주고.”
슬슬 나갈 준비를 하며 혼잣말을 쏟아낸다. 두걸은 눈치가 빨라 어느 정도 뉴트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니플러는 금방 시무룩해져서 둥지에 처박혔다. 당장 끌어안고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뉴트는 조심스럽게 사다리 곁으로 다가왔다. 크레덴스가 누워있는 공간을 한 번 더 확인한 후 올라가기 시작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사다리를 밟았다.
“읏차.”
꾹 닫혀있던 가방 문이 벌컥 열렸다. 잔뜩 지친 뉴트는 몸을 반쯤 내민 채 주변을 살폈다. 그레이브스의 명령인지, 아니면 이 집의 예절인진 몰라도 인기척이 없었다. 집요정조차 느껴지지 않은 공간은 온전히 뉴트를 위한 침실이었다.
“…….”
내일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침대에 누워서도 영 잠이 오지 않았다. 가방 안에서 바쁘게 움직일 땐 조금 나은 것 같았는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머릿속이 한껏 복잡해진다. 뉴트는 괜히 베개를 껴안은 채 뒤척거렸다. 이불은 자꾸 구겨지고 베개를 껴안은 손엔 점점 힘이 들어갔다. 방금까지 잠을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눈이 반짝였다.
“…이렇게 두근거릴 줄은 몰랐는데.”
사실 그레이브스의 얼굴을 한 그린델왈드를 알아차리는 덴 제법 시간이 걸렸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레이브스를 보면서 그저 사회생활을 잘 해보지 않은 자신을 탓했었다. 일을 하는 공간이니 엄하게 대하는 것이겠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결국 모든 사람을 속이고 있던 그린델왈드가 만들어낸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결국 그린델왈드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조금 힘든 일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레이브스도 돌아왔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쿵쾅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베개에 코를 묻은 채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안 그래도 가방 속에 들락거리느라 생각보다 침대에 눕는 시간이 늦어졌다. 게다가 뉴욕에 놀러 온 것이 아니니 늦잠을 자선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의식할수록 오히려 잠을 자기 어려워지곤 했다. 예전 같으면 신경 쓰이지 않았을 이불 구겨지는 소리부터, 문틈으로 흘러들어온 바람에 두꺼운 커튼이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소리.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달빛과 그림자. 모든 것이 뉴트가 잠을 자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
계속 뒤척거리다 어느새 잠이 든 뉴트의 얼굴에 흐린 달빛이 걸렸다. 몇 번 눈을 찡그리며 돌아누운 채 이불을 좀 더 당겨 덮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에 머물게 된 영국 마법사는 꿈속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새벽이 찾아오고 저 멀리 해가 천천히 떠오를 때까지 그레이브스 가문의 저택은 조용할 뿐이었다.
*
“뉴트?”
“…….”
“스캐맨더?”
“…으응. 퍼시.”
“좀 더 잘 생각인가?”
“조금만 더요.”
“알았네.”
“…….”
도롱이 벌레처럼 이불을 돌돌 말은 채 침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남자를 찾아내는 덴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분명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라고 들었는데, 기어코 뉴트의 방까지 찾아왔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앉은 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불 위로 겨우 머리카락 한 줌만 보일 정도로 푹 파묻힌 남자는 어릴 때부터 아침잠이 많았다. 그 단단하고 냉정한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예전과 똑같군.”
“…….”
“다 똑같은 데 나만 그 시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
“안 그런가.”
“맞아요. 응…….”
선잠에서 아직 깨지 못한 뉴트는 그레이브스의 말끝마다 웅얼거리며 대답을 한다. 그런 뉴트를 한참 바라보던 그레이브스는 그걸 즐기는 눈치였다. 괜히 한마디 두 마디 더 붙여보니 이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따라왔다. 한참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굳이 뉴트를 깨우지 않았다.
“여전히 아침잠이 많군.”
“…퍼시?”
“일어났나?”
“…….”
“일어났으면 아침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
“뉴트?”
“퍼시?”
간신히 이불 밖으로 눈만 내놓은 남자는 한없이 칭얼거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햇빛 때문에 잔뜩 찡그린 눈을 느리게 깜박거린다. 그러더니 손이 쑥 나와서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레이브스는 여전히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초. 이초. 삼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시계가 조금 움직였을 때 뉴트의 눈이 등잔만큼 커졌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앉았다.
“퍼시?”
“응?”
“아니…세상에. 그러니까…….”
“왜 더 자도 괜찮은데.”
“…….”
“여전하군.”
“정말…깨우기라도 하지.”
뉴트는 볼을 꾹꾹 구르면서 고개를 숙였다. 물론 굉장히 피곤한 일정이긴 했지만, 이렇게 남의 집에서 정신 놓고 잠을 자다니. 물론 그레이브스는 아는 사람이었지만, 언제나 이 집은 부담스럽기만 했다. 하나하나 왜 이렇게 됐는지 짚어 올라가니 잘못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가방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더 많이 보낸 것도 있고, 침대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는다며 한동안 뒤척거렸다. 그러나 깜빡 잠이 들었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고 내내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내가 미쳤지. 뉴트는 속으로 자꾸 어제 했던 모든 일을 후회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순 없었다.
“뭐 어때. 둘 다 할 일도 없는걸.”
“그래도…손님으로 와서…이게.”
“그럼 같이 식사라도 하겠나?”
“아직 안 먹었어요?”
“…….”
“세상에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허둥지둥 일어나려는 뉴트를 그대로 저지한다. 그리고 눈을 맞추며 슬쩍 웃어주자 금방 표정이 풀어진다. 그레이브스는 뉴트를 너무 잘 알았다. 물론 그런 사람을 몇 년씩 보면서도 계속 놀라는 쪽도 있었다. 까치집처럼 북실거리는 머리를 천천히 쓸어 넘겨준다.
오늘은 무슨 이유인지 뉴트가 얌전했다. 예전이라면 이제 다 컸다면서 민망한 표정과 함께 휙 사라졌을 텐데. 그레이브스는 요새 사람을 앞에 두고도 과거를 되새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퍼시?”
“아, 내가 또 딴생각을 했네. 혼자서 먹긴 영 쓸쓸하더군. 예전엔 당연한 일이었는데.”
“…….”
“준비하라고 이야기해뒀으니 같이 내려가지.”
“여기까진 어떻게…….”
“걸어왔겠지?”
“…….”
“노마지들은 이런 식으로 상처를 치료한다고 알긴 알았지만, 굉장히 불편하단 말이야.”
“…….”
“그런 표정 하지 말고.”
“하지만…….”
“언제나 걱정이 많아.”
“…….”
뉴트의 입술이 불룩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정곡을 찔린 것이 분명했다. 가늘게 웃던 그레이브스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발로는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익숙한 듯 지팡이를 짚고 일어선 그레이브스는 여전히 꼿꼿하기만 했다.
“그건…….”
“노마지 방식을 따르려면 어쩔 수 없더군. 그래도 이건 빨리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야.”
“…….”
“자꾸 그런 표정으로 보면 민망하네.”
뉴트의 시선이 지팡이에 닿자마자 한마디 한다. 까맣고 미끈한 모습이 꼭 자신이 쓰던 마법 지팡이 같았다. 마법으로 해결하면 금방 될 일을 이렇게 내버려 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물론 마쿠자와 영국의 법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법사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뉴트는 복잡한 생각을 애써 정리했다. 물론 그레이브스 저택에서 마법을 쓸 수 없는 것은 뉴트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벌떡 일어나긴 했지만 꾸물거리며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러지?”
“저…그러니까.”
“응?”
“이곳에선 마법을 쓸 수 없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
“무슨 일인지 말을 해야 내가 알지 않겠나.”
뉴트는 잔뜩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차마 앞에 서 있는 그레이브스의 얼굴을 볼 수 없는지 자꾸 웅얼거리기만 했다. 그런 뉴트를 보는 그레이브스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어렸지만, 목소리는 뭐라 대꾸를 할 수 없을 만큼 중후했다.
“…….”
“스캐맨더?”
“옷을…갈아입어야 나가죠.”
“그게 뭐 어때서?”
“퍼시. 정말!”
더는 참지 못하고 새빨간 얼굴을 들었을 때. 눈에 웃음기를 가득 담고 있는 연상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 또 속았다. 뉴트는 분명 그 눈웃음을 의도를 알았다. 그레이브스는 자신을 놀리고 있었다. 어릴 때도 그랬는데, 나이를 이만큼 먹었지만 하는 행동은 똑같았다. 하지만 이미 진 쪽은 스캐맨더라 뭐라 항변할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레이브스 앞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좀 그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그레이브스가 먼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어릴 땐 같이 곧잘 옷을 갈아입지 않았나.”
“…….”
“응?”
“…….”
“편하게 여기고…….”
“…퍼시!”
“농담이네. 갈아입고 내려와. 먼저 가 있지.”
얼굴이 터지기 직전 그레이브스가 한걸음 물러선다. 느릿한 발걸음을 옮기는 그 순간 뉴트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불규칙한 발걸음이 점점 멀어진다. 방과 복도 사이가 이렇게 멀었는지 처음 알았다. 그레이브스가 방문을 살짝 닫았다. 비틀거리는 소리가 점차 멀어진다.
“정말…….”
뉴트는 후다닥 옷을 갈아입었다. 늘 입던 옷을 입고 조끼를 걸쳤다. 리본을 맬까 하다 약간 귀찮아져서 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좀 봐주면 좋겠는데 아무도 없었다. 꼴이 많이 민망하진 않겠지. 계속 마음을 다독였다. 사실 오지를 헤매면서 옷을 대충 되는대로 주워 입고 다니던 버릇이 남아있어서 늘 집으로 돌아가면 잔소리부터 들었다. 그러다 보니 늘 챙겨 입은 옷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상하진 않겠지?”
괜히 이리저리 둘러본다. 물론 원하는 답을 해줄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된 것 같아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갔다. 꼭 그림처럼 앉아있는 그레이브스가 가볍게 자신을 반겼다. 뭔가에 이끌린 것처럼 의자에 앉았다. 집요정이 익숙하게 음식을 내왔다.
“…….”
“오랜만에 음식을 준비하느라 기쁜 모양이야.”
“…….”
“내가 잘 먹질 않으니.”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고 생각했다. 뉴트는 잠자코 포크를 들었다. 씩씩하게 식사를 시작했지만,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익숙하게 홍차를 내놓는 행동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맑은 홍차 표면을 바라보고 있으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함께 식사하는군.”
“그 오랜만이 퍼시가 채 스무 살도 안 됐던 옛날이란 사실을 알고 있죠?”
“물론이지.”
“시간이 많이 지났네.”
“많이 좀 먹어요. 그래야 빨리 낫지.”
“이젠 내 걱정도 하는 건가.”
“언제는 안 했나요.”
“그것도 그래.”
그레이브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정갈하게 준비된 아침 식사는 느긋하게 진행되었다. 뉴트는 연거푸 홍차만 들이키다 그레이브스가 떠주는 스크램블 에그를 받아들었다. 어쩐지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었지만, 싫진 않았다. 아무리 떼를 써도 그레이브스와는 넘을 수 없는 나이의 벽이 있었다. 그레이브스는 늘 위험한 곳을 골라 다니는 뉴트를 걱정햇다. 그래서 눈앞에 보일 때 조금이라도 많이 먹이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끝없이 이어진 식사는 뉴트가 먼저 손사래를 치고 나서야 끝났다.
“더는 못 먹어요.”
“…….”
“퍼시는 거의 먹지도 않으면서.”
“아…….”
“나만 먹여서 되는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잘 먹어야 하는 쪽은 국장님이라고 생각합니다만.”
“…….”
“맞죠?”
그레이브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먹는데 딱히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이라 그새 더 살이 내린 것 같았다. 뉴트가 빤히 쳐다보자 결국 억지로나마 접시를 비워냈다. 뉴트는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서로 귀찮게 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이런 아침도 나쁘지 않아.”
“제발 이렇게 아침을 먹고 다녔으면 하네요.”
“혼자는 영 별로라.”
“…….”
“혼잣말이네.”
“그래도 몸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얼마나 걱정했는데.”
“자네가 도착하기 바로 전까지는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
“눈을 뜬 직후부터 궁금한 것도 많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도 아는데 이렇게 앉아있으니 조급해지기만 하지 뭔가.”
“…….”
“지금도 그렇고. 하루가 이렇게 길다는 건 처음 알았어.”
“퍼시가 지금까지 너무 쉴 새 없이 일해서 그런 거죠.”
“그런가.”
“…….”
“내가 너무 빡빡하게 살았나 싶네.”
“그런 말을 해도 바뀌지 않을 것도 난 잘 알고 있고 말이죠.”
“…….”
툭 튀어나온 본심을 숨기지 못했다. 그레이브스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뉴트는 괜히 민망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릴 때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이젠 인정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이런 뉴트를 계속 받아주는 쪽도 절대 바뀔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어설프게 얽힌 둘은 자꾸 내외한다.
“자네한테 분명 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
“시작하지.”
“그게 무슨 말이죠?”
“마쿠자가 자네를 괜히 데려왔을까.”
“…….”
“아닌가?”
“뭐…맞긴 하지만. 일단 퍼시가 의식이 없을 거라 했거든요. 그 이후는 딱히 들은 것이 없는데.”
물론 들어도 못 들었다고 할 작정이었다. 그레이브스는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이런 상황에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사람은 자기 일이 되어서도 늘 객관적이기만 했다. 오히려 옆에 있는 뉴트가 더 흥분했다.
“그럼 티나가 오겠군.”
“난 퍼시의 몸이 빨리 낫게 하려고요.”
“다른 건?”
“그건 미국의 마쿠자가 알아서 하겠죠.”
“…….”
뉴트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레이브스는 가만히 뉴트의 시선을 따라갔다. 늘 한 발짝 어긋한 시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이럴 때조차 다음 행동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수상한 약은 마시지 않겠다고 할 새도 없었다. 그레이브스의 손을 덥석 잡고 쭉 끌어당겼다.
“가요. 퍼시.”
“내가 몸이…….”
“그러니까 같이 움직여요. 어서.”
“…….”
“어서요. 드디어 이 집에서 뭘 해야 할 지 정했으니까.”
그레이브스는 뉴트의 고집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안 되는 것은 엄하게 자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비틀거리고 일어선 남자가 자연스럽게 한쪽 손에 지팡이를 쥐었다. 길고 긴 아침 식사가 끝나자 해가 훌쩍 저택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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