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20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센티넬버스 au입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속으로 곪아가는 캡틴이랑 기억 조각을 찾는 버키가 나옵니다 취향탈 수 있어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스티브는 또 아쉬운 눈을 하고 떠났다. 가기 싫다는 소리는 하지 못하고 내내 눈빛으로 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버키는 애써 모른 척했다. 여기서 자신이 캡틴 아메리카를 잡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이나 눈을 마주치고, 그것도 모자라 아쉬운 듯 가까이 다가오는 스티브를 겨우겨우 밀어냈다. 다녀와. 다녀와서 말해. 짐짓 엄한 말투에 커다란 금빛 강아지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스티브 로저스라는 남자가 떼쟁이가 된 건지. 버키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다녀와서 이야기하면 되잖아.”
“…버키.”
“난 진짜 괜찮다니까.”
“…….”
“스티브. 스팁.”
“…….”
“캡틴 로저스?”
“그건 싫어.”
“안 가면 계속 이렇게 부를 거야.”
“…….”
“네가 나 때문에 할 일 안 하는 건 볼 수 없어.”
“…….”
버키가 이렇게 나오면 스티브는 이길 수 없다. 스티브가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척 무리에 끼어서 떠났다. 티찰라는 가지 않았다고 들은 것 같다. 왕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큰 회담이 있진 않다는 것과 같았다.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아마 몇몇 측근을 만나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정치는 잘 모르긴 하지만…말이지.”
버키는 정치나 사회 쪽 문제가 나오면 늘 말문이 막혔다. 고위급 인사만 골라서 암살을 반복해온 윈터솔져가 정치 쪽에 둔하다니 어쩐지 아니려니 한 말이었다. 하지만 버키는 윈터솔져로 활동할 때 늘 백치와 같았다. 강제로 기억을 지운 뒤 세뇌 코드를 읊는다. 그리고 타겟팅을 정해주면 알아서 목표를 해치운 다음 돌아온다. 하이드라에게 버키는 좋은 무기였을 뿐이었다. 의지가 없으니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죽인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깊게 물어볼 수 없었다.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건데 굳이 부담을 지워주기 싫었다. 버키는 곧 자신이 해야 할 일이나 잘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안 되는 일을 붙잡고 있어 봤자 힘만 들었다. 벌써 머리가 아픈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버키가 해야 할 일이었다. 한 번 지독하게 물고 늘어지던 환상은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쪽이 더 불안하긴 했지만, 머리는 어느 정도 안개가 걷힌 것처럼 맑았다.
“…….”
짧게 인상을 쓰던 버키는 자리에 앉아 첫 번째 보고서를 열어보았다. 빽빽하게 적힌 의학 용어는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쉬지 않고 보고서를 읽었다. 수많은 정보 중 아주 작은 단서라도 찾아야 한다는 마음에 자꾸 손이 헛나갔다. 안 그래도 한쪽만 남은 손으로 이것저것 뒤적여보는 건 힘들었다. 결국, 산처럼 쌓아둔 책더미를 팔꿈치로 툭 쳐버리고 말았다. 와르르 소리는 내며 쏟아진 책에선 먼지가 퐁퐁 피어올랐다.
센티넬은 세대를 잇기 어려운 존재였다. 가이드조차 찾기 힘들어 이젠 거의 사라진 종족이기에 학자들도 이쪽에 관한 보고서를 굳이 열어보지 않았다. 이런 것을 찾아 다 준 티찰라에게 새삼스레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와장창 쏟아버렸으니 문제였다. 소중한 자료를 조금이라도 구겨진 상태로 돌려주기 싫었는데, 꼭 이럴 때마다 어딘가 망가진 몸이 사고를 치곤 했다.
“…이런.”
버키는 허겁지겁 책을 주우려 하다. 먼지를 들이마시고 몇 번이나 기침을 해버렸다. 쿨럭. 쿨럭. 눈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매운 먼지에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책을 주워들었다. 한 번에 두 개. 혹은 한 개. 천천히 책상 위에 쌓아 올리던 버키는 새삼스럽게 자기의 상태에 헛웃음이 나왔다.
가끔은 의수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했었다. 물론 자신이 의수를 극구 거부한 것도 맞았다. 하지만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싶기도 했다. 물론 버키에게 왼팔이란 어차피 없었던 부분이었다. 그때. 그 옛날 기차에서 떨어질 때부터 이미 사라졌었다. 하지만 강제로 이식된 팔이라도 오랫동안 붙어있어서 그런지 꼭 원래 팔처럼 익숙했다. 물론 무기에 익숙해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이건 생활의 문제였다.
“누가 보면 바보라고 놀리겠네.”
괜히 이렇게 한마디씩 툭툭 던진다. 그러면 저기 흐릿하게 모여있는 어둠에서 늘 보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 모습이 꼭 늪에서 빠져나오는 괴물 같았다. 하이드라는 그런 녀석의 움직임을 보며 항상 칭찬했다.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미사여구를 더덕더덕 붙인 윈터솔져는 늘 조용히 그늘에서 그늘로 옮겨 다녔다. 그런 녀석은 그늘에 숨어 이빨을 감추고 있다가 항상 스티브가 없는 틈에 나타났다. 누구 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젠 익숙했다. 꿈이 아니고 현실이다. 이렇게 받아 들으면 좀 더 편했다. 버키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젠 네가 무섭지 않아.”
“정말?”
높낮이가 없는 말투에 소름이 돋았다. 난 저렇게 말했던가.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과거를 더듬는 건 스티브와 함께 있었던 잃어버린 유년기로도 충분했는데, 눈앞에 보이는 녀석은 자꾸 윈터솔져를 깨우려고 했다. 버키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도망쳐봤자. 넌 나고, 난 너야. 날 쫓아낼 수 있을 거 같아?”
“…어떻게든 노력해보려고 하는 거잖아.”
“그래? 지금 내가 그 새끼의 힘에 눌려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사실 그런 거 아니거든.”
“…….”
“그렇게 멍청하게 살 생각이면 그냥 나한테 넘겨.”
“뭘?”
“…뭐겠어.”
“…….”
“모르는 척 하지 마. 솔져.”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혼자서 중얼중얼 말을 하고 있던 버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윈터 솔져는 그새 입을 다문 채 방문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리고 새빨갛게 웃는다. 방문을 보며 손가락질을 한다. 버키의 귀에 자신의 웃음소리가 자꾸 들렸다.
다시 한 번 노크 소리가 들린다. 들어오라고 하고 나서야 조용히 문이 열렸다. 버키는 짧게 신음을 흘렸다. 밖에 이 소리가 들렸으면 얼마나 미친놈 같았을까. 이런 도발에 넘어간 자신이 나빴다. 아무리 말싸움을 해도 남이 보기엔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미친놈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티찰라가 직접 붙여준 고용인들은 입이 무거웠다. 이 정도로 이상한 일을 하는 남자를 봐도 쉽게 일을 발설하진 않을 것이 분명했다.
“반즈씨?”
“…네. 무슨 일이시죠?”
“오늘 건강 상태 체크를 하는 날이라서요.”
“아…벌써, 시간이.”
“혹시 불안하시다면 캐틴 로저스가 돌아오시는 날에 맞춰서 하셔도 괜찮습니다.”
“…….”
“괜찮습니다. 반즈씨. 저흰 두 분을 돕는 사람들이니까요.”
“…….”
다정한 말이었다. 실제로 자신을 얼마나 꼼꼼하게 도와주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캡틴 아메리카의 친우라는 사람이 정신병을 앓고 헛것을 보는 새끼라는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어떨까. 끔찍한 일이었다. 버키는 늘 자신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자신의 단점은 곧 캡틴 아메리카의 약점이 된다. 캡틴 아메리카 에게 있어서 버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다들 알고 있었다. 아니 알게 되었다. 다들 박물관에서 버키 반즈의 이름 정도는 모두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살아서 나타났을 때 캡틴이 움직일 것이란 예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아닙니다. 오늘은 괜찮을 것 같아요. 점심 먹고 가면 될까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위선자 새끼. 또 귓가에 날카로운 겨울 음성이 파고들었다. 하이드라의 망령은 호시탐탐 버키의 몸을 노렸다. 버키는 또 한 번 의수를 달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게 되었다. 지금도 이렇게 불안한 마음을 가눌 수 없는데, 몸이 멀쩡하면 더 큰 일이었다.
“그럼 식사하신 다음…….”
길게 이어지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작게 메모를 한 버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할 일을 마친 상냥한 사람이 방에서 나갔다. 방문이 닫히면 곧 다시 피바다가 번져갔다. 이런 상황에서 미치지 않은 것은 스티브 때문이 분명했다. 아마 그 녀석이 죽었다면 버키는 제정신을 차릴 무렵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검사라…….”
버키는 마른 입술을 슥 쓸었다. 사실 별로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더 하기 싫은 마음이 생기는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면 분명 스티브에게 이야기가 들어갈 테고, 그 녀석은 또 걱정을 사안은 채 옆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일 사이에서 버키는 내내 머리를 싸맸다.
“일단 보고서 좀 더 보고…….”
버키의 시선이 보고서에 닿았다. 보고서는 대체로 센티넬의 관점에서 그들을 파헤치고 있었다. 하지만 드물게 가이드나 가이드와 함께 지냈던 센티넬에 관한 보고서도 있었다. 버키가 찾고 있는 것은 그런 종류의 정보였다. 물론 가이드와 센티넬은 쌍방 관계기 때문에 스티브와 버키 같은 상황은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가이드의 존재조차 몰랐던 버키에겐 꽤 새로운 정보였다. 좀 더 읽어봐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덤덤한 말투로 적혀있는 것과 내용은 노골적이었다. 가이드와 센티넬이 무슨 행동을 하고 어떻게 서로를 보듬는지 적나라하게 나와 있는 페이지를 읽던 버키는 결국 보고서를 닫아버렸다. 물론 과학과 정보를 위해 만들어진 보고서라 하지만, 민망해서 참을 수 없었다. 후끈 달아오른 뺨을 시키며 괜히 방 안을 서성였다.
“이제 좀 알겠어?”
“…….”
“그 새끼가 널 속인 거야.”
“…….”
“다리 위의 그 남자. 태양 같은 스티브 로저스.”
“…….”
“고고하신 캡틴 아메리카가 말이야.”
“스티브는 날 속이지 않았어.”
“그럼 왜 널 찍어 눌렀겠어.”
“…….”
“속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널 그런 식으로 대했을까? 온몸에 센티넬이 물어뜯은 흔적을 만들면서까지?”
“…….”
“안 그래?”
악마의 속삭임보다 차가운 것이 볼에 닿았다. 이미 주위를 둘러싼 망령은 계속 웃기만 한다.
“널 통해서 그냥 욕심을 채운거야.”
“…….”
“센티넬은 같은 센티넬을 찍어 누르면서 흥분하지.”
“…….”
“넌 그냥 그 정도일 뿐이야.”
“듣고 싶지 않아.”
“날 막을 수 없잖아?”
“…….”
“그럼 그냥 들어. 들어놓으면 나중에 고맙다고 할 거야.”
“절대 안 그래.”
“정말?”
하이드라의 망령은 또 한 번 피를 토하며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더는 쳐다볼 수 없었다. 버키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 환상은 껍질만 뒤집어쓴 악마인 것 같았다. 아무리 기억이 지져져서 제대로 된 기억이 없다지만, 적어도 저렇게 행동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저 녀석을 떼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평생 이러고 살 거면 그냥 들어가서 잠이나 자.”
“…….”
“그러면 이런 피바다 안 봐도 되고 말이지.”
“내가 그냥 다 알아서 해줄게.”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었다. 버키는 가는 신음을 내뱉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어지러웠다.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런 생각만 하면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져서 끙끙 앓기만 했다.
“스티브가 왜 변하는 거지.”
버키는 스티브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꾸 한 곳에 집착하고, 쉽게 화를 낸다. 그리고 그 화를 참지 못하면 누군가를 아래에 깔아야 정신이 돌아왔다. 지금 그 집착의 당사자는 버키였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도 버키는 세계의 모든 눈이 찾고 있는 존재였다.
“정보가 부족해.”
좀 더 알아야 해. 버키는 자신이 찾아야 하는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작정 책만 읽어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일단 가이드 쪽 보고서만 읽고 페어로 일했던 군인에 관한 보고서만 읽기로 했다. 어차피 망가진 뇌론 어려운 과학 용어와 의학 지식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버키는 좀 더 쉽지만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
몇 번이나 말하는진 모르겠지만, 정말 샘플이 거의 다 왔습니다.
사실 샘플이라기 보단 선연재에 가깝겠네요.
버키의 냉동이 점점 가까워져서 약간 힘들긴 하지만, 그 중간에 생길 일들을 잘 채워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인포는 주말이 가기 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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