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펄스] No Title
2014. 05 .10 Daily Crisis #2 에 돌발본으로 냈던 블루펄스 소설본입니다
다시 재판할 일이 없을 것 같고, 짧은 소설이라 공개합니다
블루펄스 ㅠㅡㅠ...
❚ S.S 001 | Blue Beetle x Impulse
어느 날 갑자기 군식구가 늘었다.
미래에서 왔다는 누군지도 모를 녀석이 집 안에 들어앉아 나가질 않았다. 나이트윙와 로빈, 그리고 비스트 보이가 본부에 있을 때 나타났다는 녀석은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라고 했다. 시끄럽고, 산만하고 작은 녀석은 빠르게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영 저스티스로 굴러들어온 임펄스가 치는 사고의 강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나이트윙의 미간에 하나둘 깊은 주름이 내려앉았다.
“저기…나이트윙? 내가 왜요?”
대뜸 눈앞에 들이밀어 진 낯선 갈색 물체를 두 손으로 쭉 밀어내며 뒷걸음질을 했다.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두 손을 잡고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흔드는 녀석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누가 제일 익숙하냐고 물어봤더니 블루비틀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에 데려왔다.”
“전 저 녀석 누군지 모르는데요.”
“…응?”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아는 거 아닌가요. 전 정말…….”
“아 저기 블루? 블루? 블루? 블루?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섭섭하지. 물론 날 모를 수도 있어. 지금부터 알면 되는 거 아닐까?”
“…….”
할 말을 잃었다.
어느새 엉겨 붙은 둘을 바라보던 나이트윙이 무선 통신기를 켰다. 물론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비록 통신기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런 사소한 사실은 역시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예? 뭐라고요? 알겠습니다. 나이트윙 아웃,”
여기서 한 번 태클을 걸었어야 했다.
하지만 눈앞에 바로 얼굴을 들이밀고 정신을 쏙 빼놓는 녀석 때문에 슬슬 멀어지는 나이트윙에게 말을 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나이트윙이 웃는 얼굴로 손을 들어 보일 때는 이미 늦어 도저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사라진 나이트윙은 간 곳이 없었고, 황량한 공터엔 시끄러운 갈색 생물체만 남아있었다. 조용한 장소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점점 빨라지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두 팔을 꽉 잡고 있는 손을 억지로 떼어내고 입을 막았다.
“입 좀 다물어봐. 시끄러워.”
“으어흐어.”
“말하지 말라고! 야, 간지러워!”
끊임없이 웅얼대는 입술이 가끔 손바닥에 붙어올 때마다 하이메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몇 번이나 손바닥으로 꾹꾹 눌렀지만, 도저히 입을 다물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가까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입에서 손이 떨어지자 약간 아쉬운 표정으로 하이메를 바라보던 임펄스가 쪼르르 옆에 와서 앉더니 또다시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시크릿 아이덴티티가 탄로 날까 봐 잔뜩 신경을 쏟고 있는데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녀석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어보였다.
“근데…어…이름이 뭐라고 했지?”
“응? 바트 앨런. 물론 저쪽에선 날 임펄스라고 부르기도 하더라고. 근데 둘 다 상관없어.”
“저기…시크릿 아이덴티티는?”
“그게 뭐가 중요해? 하. 정말 이 시대는 쓸데없는 걸 너무 신경 쓴다니까. 안 그래? 친구.”
언제부터 우리가 친구였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들을 만한 녀석도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이런 일방적인 상황에 먼저 항복한 쪽은 하이메였다. 벤치에 앉아 부산스럽게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임펄스는 조금만 바라봐도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래. 우리 통성명은 제대로 안했지만 친구라고 치고, 시크릿 아이덴티티 오픈했다고 치자.”
“응? 블루. 왜?”
“일단…일단 말이야. 너 혹시 다른 옷은 없냐?”
“왜?”
“그렇게 입고 다니면 튀잖아. 미래에선 뭐 그다지 상관없다 하더라도 여긴 아냐. 알았어?”
“…딱히 가져온 거 없는데?”
‘얘…어쩌면 좋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넙죽넙죽 대답하는 얼굴을 보니 갑자기 서러워졌다. 시간 여행자씩이나 되는 녀석이 이렇게 대책이 없을 수가. 한참 말을 고르던 하이메가 바트의 손을 덥석 잡고 일으켰다. 순순히 따라오는 녀석을 흘겨보며 한마디 했다.
“그럼 일단 우리 집으로 좀 가자.”
“왜?”
“제발 토 달지 말고 얌전히 좀 따라와.”
“하지만 블루? 그러니까 우린…….”
“아냐. 그냥 제발 좀 따라와. 우리 친구지? 부탁한다.”
“…….”
웅얼웅얼하는 소리가 여전히 뒤통수에 따라붙었지만, 하이메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이 녀석을 집 안으로 데려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했다. 크림색과 붉은색이 섞인 옷은 가만히 있어도 존재감을 나타냈다. 도저히 길로 나갈 수 없었던 하이메는 결국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입고 있던 후드 점퍼를 벗어 바트의 머리 위에서부터 푹 덮어씌웠다. 시야를 가린 옷을 멍하니 쳐다보던 바트가 손으로 주섬주섬 후드를 집어 들었다. 고개를 기울이며 용도를 묻자 하이메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제발 이거 좀 입고, 조용히 얌전히 따라와. 알았어?”
“알았어.”
“제발 그 약속이 이십 분 쯤 가길 빌어볼게.”
“응? 지금 뭐라고 했어. 친구?”
“아냐.”
납치하는 것도 아닌데, 도통 바트가 정신을 집중하지 않아 억지로 밀고 끌었다. 누가 보더라도 굉장히 수상한 모습으로 걷는 두 사람은 하염없이 거리를 걸었다. 집 앞으로 오기까지 바트는 단 한 번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 간신히 자신의 방에 바트를 밀어 넣은 하이메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진 채 한참 일어서지 못했다. 쫄쫄이에 후드를 입은 괴상한 모습의 친구는 그 옆에 냉큼 올라앉아 하이메를 쳐다보았다.
***
한참 침대에 늘어져 있던 하이메가 돌아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사람 하나 집으로 끌고 들어왔을 뿐인데, 밤새 작전에 투입된 것보다 더한 피로가 몰려왔다.
‘임펄스를 제거해라 하이메 레이예스.’
지금까지 얌전히 있던 스캐럽이 시끄럽게 훈수를 구기 시작하자 머리는 점점 더 복잡해졌다.
‘임펄스가 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그를 제거해라.’
“아…좀 가만히 있어.”
“응? 뭐가?”
잠깐 바트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밖으로 소리를 툭 내뱉던 하이메가 시선에 잡히는 얼굴을 보고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가만히 있으라고?”
“어…그래. 어…응.”
대답을 얼버무렸다. 바트는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여전히 등 뒤에선 스캐럽이 당장 무장을 할 것처럼 굴었지만, 꾹꾹 눌렀다. 여기서 소란이 일었다간 정말 끝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 말이 뭐였냐면…….”
“응!”
“계속 그러고 다닐 수 없잖아?”
“왜? 난 이게 편한데?”
“아니 편하다고 하지만…….”
하이메가 또 머리를 감싸 쥐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바로 앞에서 반짝거리는 눈을 쳐다보다 결국 말로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뭐? 뭐야? 블루? 저기 블루? 블루? 친구? 과거는 이렇게 개방적인 시대였어? 잠깐만!”
“아 좀 제발. 조용히 하고!”
“저기 친구? 블루? 잠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다짜고짜 유니폼부터 벗기려는 하이메의 손을 덥석 잡은 바트가 눈을 크게 뜨며 수다스럽게 입을 열었다. 스캐럽처럼 한 번에 벗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좀처럼 벗겨지지 않는 유니폼을 찢을 듯 잡아당겼다.
“잠깐 내가 벗을게! 내가 벗으면 되잖아 응? 안 그래? 그렇지? 블루? 우리 처음 만났다며.”
“나랑 친하다고 한 게 누군데. 그래 그럼 옷 벗고 있어봐.”
“…….”
“도망가지 말고.”
“…….”
유니폼을 잡아당기던 손을 툭 놓은 하이메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잠시 살펴보다 이내 벽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임펄스를 제거해라. 하이메 레이예스.’
‘아 좀 가만히 있어봐. 쟨 위험한 게 아니고 그저 부산하고 정신 사나운 거라고.’
‘내 말을 들어라. 하이메 레이예스.’
‘아니라고!!’
‘넌 분명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지금 이 상황은 좋지 않다.’
‘제발 너도 좀 가만히 있어봐.’
머리 안팎으로 울리는 소리는 서로 섞여서 하이메를 공격했다. 벽장 안을 뒤지던 손길이 점점 거칠어졌다. 원하는 물건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서랍을 열고 모든 물건을 꺼내보았다. 이 서랍이 아닌 듯 물건을 대충 쑤셔 넣고 쾅 닫았다.
“도대체 어디다 둔거야.”
두 번째 서랍에선 자질구레한 잡동사니가 쏟아져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리를 좀 해둘걸.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는 것들을 억지로 서랍에 다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서랍에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잠깐 굽혔던 허리를 펴는데, 뒤에서 그 사이를 못 참고 침대에서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체중에 눌려 이불이 구겨지는 소리에 눈매를 잔뜩 찡그린 하이메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어디 가지 말고 그 위에 있어.”
“들렸어?”
“이 좁은 곳에서 그게 안 들리면 어쩌자는 거야. 얌전히 있어.”
“옷 다 벗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괜히 귀가 달아올랐다. 맨살에 스치는 이불소리가 너무 적나라하게 들리는 바람에 어이없게 헛웃음을 삼켰다. 이불을 둘렀는지 침대에선 연신 천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그 소리를 없애기 위해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헛기침을 마지막으로 두 번 정도 더하고 나서 다시 허리를 숙인 채 무엇인가 찾기 시작했다.
‘…심심한데.’
이불을 머리끝까지 둘러쓰고 뒹굴던 바트는 벽장 안에 들어있는 모든 짐을 들어낼 것처럼 움직이는 하이메의 등을 바라보았다. 목에서 쭉 시선을 타고 내려오면 중간쯤에 스캐럽이 있겠지. 블루비틀. 잠깐 생각한 단어 하나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잠시 얼굴에서 장난기가 가신 바트가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며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아니 도대체…아 찾았다.”
가장 안쪽까지 뒤지던 하이메가 드디어 원하는 걸 발견했는지 작게 탄성을 질렀다. 손에 무엇인가 들고 침대 앞으로 척척 걸어왔다. 차마 얼굴을 보긴 그랬는지 어색하게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트의 얼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거 입어.”
“이게 뭔데?”
“뭐긴 뭐야. 평상복 아냐. 물론 새것은 아니긴 한데…….”
눈앞에 들이댄 것은 옷이었다. 까무잡잡한 손에 들린 옷을 한참 바라보던 바트는 쉽게 그것을 받아들지 않았다.
“깨끗하게 빨아서 둔 거야. 의심하지 말고 입어줄래?”
“아니 그게 아니고. 난 이런 거 없어도 괜찮은데.”
사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했다. 바트는 딱히 영저스티스 본부에서 나가서 할 만한 일이 없었다. 혹시나 할 일이 있다면 유니폼을 입고 나갈 것이기에 딱히 이곳에 있는 동안 평상복을 입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자신에게 옷을 건네는 하이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왜? 난 거기서 안 나갈 거고, 하, 어차피 투입될 땐 유니폼을 입잖아. 별로 그런 거 필요 없다고. 설마 나 옷 갈아입히려고 여기로 부른 거야? 오 블루. 난 정말…….”
“그냥 좀 입어라!”
“응?”
“그러다 잠입 미션이라도 받으면 내가 히어로다 하고 그 옷 그대로 입고 갈 거야?”
“그야…….”
“그러니까 일단 주는 대로 입으라고. 시간의 여행자 씨.”
볼을 꾹꾹 누르는 손길에 못 이겨 옷을 받아들었다.
“음…근데 블루. 네 뜻은 잘 알겠어. 근데 질문이 있는데 말이야. 이거 디자인이 좀 어린애 거 같은데.”
“…….”
“맞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진 하이메가 낮게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귀 끝이 좀 붉어지는 것을 본 바트가 좀 더 짓궂게 물어왔다. 결국, 손가락 사이에서 죽을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게…내 옷은 안 맞을 거 같아서 그렇지 않아? 내가 더 크잖아. 그래서 옛날에 입었던 좀 작은 옷에서 찾았거든?”
“정말? 이거 블루가 입던 옷이야? ”
“그래!”
“오…디자인이 좀…….”
“그대로 그것마저 뺏고 창문으로 내쫓기 전에 얌전히 받아 입어. 바지는 모르겠다. 맞을 거 같긴 한데.”
“안 맞으면?”
“그러면 다음에 옷이라도 사러 가자.”
“오 블루. 이제 진짜 친구가 된 거야? 하긴 내가 널 끝까지 지켜 줄 거라고 했지? 나만 믿으라고 친구!”
“그래 믿을 테니까 옷 좀 입어줄래?”
킬킬 웃으면서 옷을 받아 입은 바트가 조금 큰 바짓단을 걷고 나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면서 괜찮은지 살펴보다 다시 하이메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옷을 낯선 사람이 입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뭔가 묘한 감각이 스물스물 기어올랐다. 두 가지 색이 다른 회색이 들어있는 티셔츠의 소매 끝을 문지르던 바트가 재차 재촉했다.
“괜찮아?”
“으…응?”
“괜찮냐고.”
“그래…뭐…봐 줄만은 하네.”
“바지는 좀 큰데. 벗겨질 거 같기도 하고.”
허리를 쭉 당기니 티셔츠와 바지 사이에 속살이 보였다. 의도치 않게 남의 속살을 정면에서 봐버린 사춘기 청소년은 짧은 비명과 함께 다시 손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말았다. 하이메가 침대에 거의 쓰러질 것처럼 누워서 간신히 말을 이었다. 사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이메 레이예스. 심박동 수가 증가하고 있다. 원인은 임펄스다. 당장 그를 없애라.’
‘제발 조용히 좀 해.’
‘하이메 레이예스. 임펄스는 위험하다. 당장 없애.’
‘좀.’
‘임펄스는 위험해.’
“아…….”
“그래서 어쩔 거냐고!”
하이메가 열심히 스캐럽과 대화를 하는 사이 앞에 서 있던 바트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까부터 계속 혼자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불러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뭐냐고! 바트가 지르는 소리에 퍼뜩 둘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하이메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럼 당장 바지부터 사러 가자.”
“응?”
“…어?”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하이메가 눈을 마주치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임펄스가 나타난 이후로 뭔가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고 있었다. 단단히 말려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스캐럽은 못마땅한 듯 연신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하이메는 약속을 지켜야 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얻어 입은 것 같은 차림의 바트를 끌고 나갔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바지를 벗기고 새것을 사 입히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임펄스 언제 그런 옷을 샀어?”
“응? 이게.”
“아 저기 임펄스 잠깐 이야기 좀.”
“어, 블루! 이거 그러니까…읍!!!”
“잠깐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 녀석 좀 빌려 가도 될까?”
과자를 까먹으면서 입을 열려고 하는 임펄스를 급히 막아섰다. 두 손으로 단단하게 입을 막은 블루비틀이 웃으면서 저 구석으로 임펄스를 질질 끌고 갔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 의도적이라 여자애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모든 영 저스티스 멤버들은 잠깐 그 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별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곧 주의를 딴 곳으로 돌렸다.
저 한구석까지 임펄스를 끌고 가다 그것도 모자라 밖으로 나온 블루비틀이 연신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터덜터덜 끌려 나온 임펄스가 손에 들고 있던 초콜릿 쿠키를 마저 입안에 집어넣었다. 손가락에 붙은 과자 가루를 털어내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하이메가 입을 열었다.
“내가…뭐라고 했지?”
“뭐? 아, 말하지 말라고. 아직 말 안 했어.”
“내가 막아서 안 한 거잖아! 그 시기에 막지 않았으면 내 옷이라고 주절주절 다 이야기했을 거 아냐.”
“근데 그게 뭐가 어때서?”
“…….”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이상하게 벌린 채 굳어버린 입을 바라보던 임펄스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냥 빌려준 거 아니야? 뭘 그렇게 신경 써?”
“…….”
“응? 블루? 친구? 또 정신이 나갔네. 역시 스캐럽이 문제가 되는 거 아냐? 내 말 들려? 블루? 블루? 응? 블루!!”
시뻘겋게 변한 얼굴 앞에 손을 붕붕 움직이던 임펄스가 한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순간 온몸에 열이 확 올라왔다. 임펄스에게 잡히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하이메가 급하게 블루비틀로 변해 저 멀리 날아갔다. 따라가 볼까 생각을 했지만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거 같아 그만두었다.
“…이상하네.”
이미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하이메를 바라보던 바트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돌아섰다.
꽤 멀리 날아온 하이메는 그대로 숲 속에 추락하듯 떨어졌다. 단단한 장갑에 가려진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엉망이었다. 부장을 해제하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러게 내가 그걸 왜 신경 쓰고 있지.’
친구 사이에 옷 빌려주는 게 뭐가 그렇게 특별한 일이라고 부득불 입을 막으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괜히 신경이 쓰이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신경을 쓰고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숲을 빙빙 돌았다. 바트도 딱히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쳤구나. 하이메. 아주 미쳤어.’
‘그게 다 임펄스 때문이다.’
‘아니라고.’
몇 번이나 볼을 찰싹찰싹 때리고 얼굴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다시 바트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색하게 다시 물러내서 말을 붙였다. 여전히 같은 옷을 입은 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는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욱신거렸다.
“저…혹시 위에 옷도 사러 가지 않을래?”
“왜? 난 이게 좋은데. 편하고.”
“그게…….”
“이 옷 급하게 써야 해? 뭐 그러면 할 수 없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또 바보 같은 소리를 한 하이메가 그대로 무너졌다. 얼굴을 들지 못하는 하이메의 어깨를 팡팡 치며 웃던 바트가 옆에 같이 주저앉았다. 그리곤 들고 있던 과자봉지를 내밀었다.
“너 이거 좋아하지?”
“먹을 기분 아니야.”
“근데 내가 이 옷 입는 거 별로인가? 왜 자꾸 그렇게 신경을 써? 응? 혹시 불편한 거야? 응? 블루 말 좀 해보라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흐응.”
“그러니까. 그게…….”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입에 나오는 대로 바트한테 내뱉은 하이메는 또 한 번 자신의 입을 탓했다.
그 날 이후 바트가 하이메와 좀 더 붙어 다니게 된 것은 케이브에 퍼진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
“하이메, 이거 더 없어?”
“작작 좀 먹어라. 과자 다 털고 갈 거야?”
“하지만 너무 적은데.”
봉지를 탈탈 털어보고, 안쪽을 확인한 바트가 입가에 묻은 과자 가루를 혀로 슥 핥았다. 짭짭한 소금기가 혀에 가득 묻어나왔다. 조금 모자란 듯 입맛을 다시면서 주위를 살펴보다가 남은 과자를 발견했다.
“하나 남았네. 이거 마저 먹는다?”
“그래. 먹어라. 먹어.”
“그럼 사양하지 않고,”
탁자 위에 하나 남은 과자 상자에 손을 뻗으려 몸을 돌리자 이불 사이로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귀찮고 불편하단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지를 벗어 던지고 티셔츠만 걸친 바트는 침대를 점거한 채 뒹굴고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던 하이메가 기함을 하며 이불을 푹 눌러 덮었다.
“아니 바지를 입던가!”
“귀찮잖아.”
정말 말도 안 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이유였다.
‘아니 난 네가 더 귀찮은데…….’
마음의 소리를 속으로 꾹 집어삼켰다. 사실 하이메가 바트에게 뭐라고 하기엔 좀 뭐한 차림이었다. 상의를 벗고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하이메를 바라보던 바트가 킬킬 웃으면서 돌아누웠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스캐럽이 당장이라도 튀어나려고 했다.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말랑말랑 해질 무렵 하이메는 어디에 눈을 둬야 할까 계속 고민 중 이었다.
그 순간 과자봉지 뜯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에 들고 있는 과자 상자를 어느새 해체하던 바트가 하이메를 보면서 씩 웃었다. 덕분에 말랑할 뻔했던 분위기는 깨졌지만, 썩 나쁘진 않았다.
“그래. 많이 먹어라.”
“어도 머으래?”
“뭐?”
“너도 먹을 거냐고.”
입안 가득 든 과자를 꿀꺽 삼킨 바트가 입을 열었다. 과자는 이미 반도 넘게 빈 상태였다. 플래시들은 원래 이렇게 많이 먹던가. 그 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던 하이메가 허탈하게 웃었다. 쉴 새 없이 먹을 것이 입으로 들어가긴 하는데 도통 살이라곤 붙어있지 않는 이 녀석의 소화체계가 조금 신기해지기 시작했다.
이 과자 맛있다는 소리가 덤으로 귀에 들렸다. 다시 한 번 선심 쓰듯 물어보는 목소리에 홀린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끄덕인 하이메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
“어느다며.”
“어…으…읍! 어!!”
“어늑다며!!”
그대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입에 반쯤 물고 있던 과자를 푹 집어넣었다. 그리고 과자를 씹을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굳어있는 하이메를 보고 있던 바트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 순간 입술과 입술이 스치고. 심장이 세게 뛰기 시작했다.
“헤헤…나쁘지 않은데.”
“…….”
뭐라 말도 못하고 허우적대는 하이메의 입술에 한 번 더 쪽 소리가 날 정도로 뽀뽀하고 깔깔거리며 돌아누웠다. 물론 하이메는 보지 못했지만, 바트의 얼굴도 만만치 않게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이메의 입술에서 과자 맛이 났다.
슬그머니 입술을 만져보던 바트가 숨죽이고 웃기 시작했다. 여전히 정신이 나간 하이메는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스캐럽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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