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100분/제갈유비] 장난,크리스마스,뒷모습을 보며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대학 AU
근로장학생 유비(선배) 억지로 대학 끌려온 제갈량(후배) 이야기
저번 전력인 빼빼로 데이에서 이어집니다
http://dchwanwol.tistory.com/336?category=793588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크리스마스 트리요?”
“응. 그런 거 안 해?”
“…….”
“…미안.”
“아뇨. 그게 아니라.”
“…….”
잔뜩 신난 표정이 순식간에 시들어버린다. 그러면 당황하는 쪽은 오히려 제갈량이다. 그저 대답이 조금 늦었을 뿐인데, 유비는 제풀에 실망하고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낸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보니, 제갈량은 아주 가끔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잔뜩 들떠있는 사람을 한순간에 팍 죽여 버린 것 같아서 미안했다. 하지만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제갈량은 아직 자신이 없었다.
“선배. 그게 아니라…….”
“…응?”
“그런걸 해본 적이 없어서…….”
“…….”
“그러니까.”
“…….”
제갈량은 더듬더듬 한 두 마디 하다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긴 그 꼿꼿한 성격에 저런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유비는 언제나 제갈량이 대단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더 똑똑하니 보통 제갈량이 하는 말이 맞는다고 한다. 그런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가끔 부담스럽긴 했다.
“선배한테 화낸 거 아니랍니다.”
“…….”
“제가 몰라서 그러는 것을…….”
“정말? 몰라?”
“네.”
“…….”
“좀 이상하지만,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나는…제갈량이라면 뭐든 다 알고 있는 줄 알았어.”
유비의 한마디에 제갈량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유비가 가끔 한마디 툭 던질 때마다 받아주기 힘든 것도 바로 이 이유였다. 자기가 잘난 사람이라는 객관적인 판단을 마친 제갈량이었느니 저 정도는 한두 번 들어본 칭찬이 아니었다. 늘 당연하게 들어왔었고,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유비가 저렇게 반응하면 심장이 이상했다. 가장 깊숙한 곳부터 간질거리면서 흘러나오는 묘한 감정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쳤다. 표정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자꾸 훅훅 열이 달아올랐다. 그저 감탄하는 것인데 왜 몸은 유난히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애써 담담한 척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다. 그리고 유비를 바라보면 늘 곧은 눈빛이 보였다.
“그렇게 다 알고 있다면 제가 컴퓨터겠죠?”
“그렇구나.”
“딱히 그런 행사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요.”
“집에 그럼 아무것도 없어?”
“여기…말인가요?”
“응.”
“없습니다. 애초에 제집도 아닌걸요.”
“…….”
“분명 처음 들어올 때 말 해드렸습니다. 선배가 잊어버린 거예요.”
“…….”
같이 살자고 말을 꺼낸 쪽이 제갈량이고, 집주인도 그러하다. 유비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고 거절했을 때 제갈량이 뭐라고 했던가. 그렇게 멋있는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연구소 외 사람들과 친분을 맺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선배 그냥 나랑 같이 살아요.’
‘…응?’
‘우리 집 넓고 아무도 없으니까 선배 하나쯤 들어와도 상관없어요. 그냥 가족처럼 같이 밥 먹어주고 그러면 되는데.’
‘내가…너희 집에.’
‘싫어요?’
여기까진 맞는 말이었다. 그 뒤에 어차피 자기도 어느 정도 세 들어 사는 개념이니 상관없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연구소에서 애완동물을 키워도 된다고 했는데 강아지는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다. 강아지보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는 쪽이 낫다고 말했고, 유비는 내가 강아지 닮았냐며 웃었다. 그 말을 들은 제갈량이 조금 더 허둥거린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아니 싫다기보다. 가족?’
‘네. 그냥 같이 집에서 자고 일어나서 학교 가고. 밥 먹어주고. 그런 게 가족 아닌가요?’
‘그런가…사실 나도 잘 몰라.’
‘그럼 지금부터 가족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는 거로 하죠.’
그게 지금까지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반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새 집에 누군가 없으면 허전해진다. 유비는 가만있어도 남에게 긍정적인 기분을 주는 사람이었다. 속 사정을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처음엔 손님방에서 자던 사람이 어느새 제갈량과 같은 침대를 쓴다.
“가족…이라면 그런 것도 같이하는 거겠죠?”
“그럴걸? 사실 나도 도원 관에서나 해본 거라. 집에선 안 해봤어.”
“…….”
“그래도 도원 관은 내 집이나 마찬가진 걸. 혼자 사는 곳은 좁으니까 꿈도 못 꿨지만.”
“그럼…….”
“응?”
“그럼 같이 해봐요. 선배.”
“정말?”
“예, 정말요.”
“애들도 부를까?”
“…….”
유비는 다 좋은데 가끔 이렇게 초점이 나가는 의견을 내곤 했다. 제갈량이 약간 불만을 품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제갈량은 유비와 둘이 있고 싶은데, 유비는 주위에 사람 많은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하긴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금방 타는 체질이니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굳이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진 않았다.
“응? 제…갈량.”
“…….”
“아냐. 미안…….”
“선배는 정말 제 마음을 흔드는데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신 것 같네요.”
“응?”
눈을 깜박이면서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던 남자가 금방 제갈량을 쳐다본다. 키만 불쑥 큰 남자가 하는 짓이 어린애 같다고 늘 생각했지만, 싫진 않았다. 제갈량은 자신의 마음속에 이렇게 수많은 감정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냥 넘길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끙끙 앓는 쪽은 언제나 하나뿐이었다.
“기껏 제 첫 경험을 함께 하자고 하시면서, 다른 사람을 부른다니요.”
“…….”
“전 선배랑 둘이 하고 싶은데.”
“…….”
“네?”
“…미안.”
“전 선배에게 사과를 들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제가 약간 질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한 것일 뿐이죠.”
“응?”
“저번 빼빼로도 그렇고, 선배는 정말…….”
“그게…….”
“제가 그때도 말하지 않았나요. 인내심이 먼저 닳아버린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맞다고.”
“…세상 이치라고 했지?”
“네. 지금도 그렇네요.”
“…….”
유비의 손을 잡고 쭉 끌어당긴다. 단단하고 마른 몸이 속절없이 끌려온다. 푹신한 니트에 코를 박은 후에야 허둥지둥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제갈량이 좀 더 빨랐다. 유비가 제갈량보다 힘이 세지만, 이럴 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버둥거리기만 했다.
“전 정말 한시라도 눈을 떼면 선배가 사라질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내가 어딜 가?”
“…그냥 그런 마음이 들어요.”
“에이. 내가 갈 데가 어딨다고.”
“…….”
“제갈량이 너무 착해서 그래.”
“…정말 처음 듣는 소리군요.”
“정말?”
“예.”
제갈량은 유비의 착하다는 말의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자신을 착하다는 단어로 정의한다면, 다른 사람은 어떤가. 정말 알 수 없는 단어였다. 그저 장난이라고 생각하기엔 유비의 말은 늘 진실성이 있었다. 묵직한 말을 늘 받아주기 어려운 것을 보면 확실했다.
“정말이야.”
“장난치시는 건 아니고요?”
“장난이라니. 보통 제갈량이 하는 말이면 다 맞고 옳은 방향이니까 그러는 거지.”
“거기서 착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네요.”
“제갈량이 꽉 막혀서 그런 것도 있을걸.”
“이건 장난이라고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
유비의 목소리가 조금 살아난 것을 보니 걱정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누가 집주인이고, 세 들어 사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하긴 원인을 찾으라면 제갈량이겠지만 말이다. 자꾸 제갈량한테 기분을 묻는 통에 어린애처럼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고 나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언제 갈까?”
“…예?”
“아무것도 없다며, 사야할 것이 많으니까.”
“그렇네요. 준비해본 적이 없어서…….”
“같이 갈래?”
“…….”
“응?”
“네…그러죠.”
“정말? 제갈량이랑 같이 나가는 거 처음이야.”
“…….”
제갈량은 그런 말을 하고도 믿기지 않았다. 사람 많은 곳은 귀찮아서 싫어하던 인간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괜히 실실 웃으면서 제갈량 주위를 맴돌던 유비는 어느새 부엌으로 사라진다. 커피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제갈량도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
“선배. 어느 정도 더 있어야 합니까?”
“응? 아직 덜 샀는데.”
“…….”
“왜? 바쁜 일 있어?”
“아뇨. 이런 곳별로 안 좋아해서…….”
“말을 하지. 그냥 나 혼자 와도 되는데.”
“그래도…아닙니다. 괜찮아요.”
제갈량 얼굴이 유난히 하얗게 질렸다. 잠도 누가 옆에 있으면 못 잔다면서 예민하게 굴던 녀석이니 이렇게 복잡한 장소는 최악이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니 사람은 더 많았다. 비틀거리는 제갈량의 손을 잡은 유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제갈량은 몇 번이나 괜찮다고 했지만, 얼굴엔 다 티가 나는 모양이었다.
“괜히 나오자고 했나 봐.”
“아뇨. 괜찮습니다. 다음엔 뭘 사야 한다고 했죠?”
“…….”
“정말 괜찮아?”
“네. 그렇게 어린아이 보듯 안 해도 된답니다. 선배.”
“제갈량도 약한 부분이 있긴 하구나.”
“…….”
“난 언제나 완벽할 줄 알았지.”
“이런 거로 제 인간적인 면을 찾는다니 고마운 일이네요.”
“에이. 농담이야.”
이미 잔뜩 짐이 쌓인 카트를 밀면서 유비는 굳이 제갈량의 손을 잡았다. 그러다 결국 한번 충동 사고를 낼 뻔 한다. 제갈량은 그제야 정신이 든 모양인지 훌쩍 걸어서 유비 곁에 섰다. 유비가 계속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기에 애써 멀쩡한 척을 하기로 했다. 그러면 금방 유비는 해야 할 일에 신경을 쓰곤 한다. 사람이 이렇게 읽히기 쉬워서 좋은 일이 없을 텐데. 제갈량은 항상 유비의 성정이 걱정이었다.
“미안해. 제갈량.”
“괜찮다니까요. 이런 것도 익숙해야 하는 일인데…….”
“괜히 내가 고집부린 거 같아서…….”
“선배랑 같이 다니니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정말?”
“네. 정말요.”
“…그러면 다행이고.”
유비가 웃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제갈량은 한 박자 늦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장을 어떻게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제갈량은 세간 살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보통 유비가 모든 것을 고른다. 그리고 제갈량에게 선택하라 하면 둘 중 하나를 집어 드는 것이 전부였다. 집에 채워진 살림살이가 유비 취향인지, 제갈량 취향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지만 서로 만족하니 상관없는 것 같았다.
잔뜩 들고 있는 짐에 배달 올 것까지 합하면 꽤 많은 것을 샀다. 트리도 필요하고, 장식도 사야 했다. 간 김에 며칠 먹을 식량도 사고. 제갈량은 매일 유비가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아서 조금 미안해했다. 서로 미안해하다가 웃어버린다. 그렇게 짐을 잔뜩 들고 걷던 유비가 발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시죠?”
“제갈량. 우리 케이크도 살까?”
“…예?”
“이건 내가 사는 선물.”
“…….”
“처음 챙겨보는 크리스마스라며. 케이크도 있는 쪽이 좋지 않으려나.”
“…그렇네요. 뭐.”
“그렇지? 잠깐 들렀다가 가자.”
“…….”
유비가 신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으니 얌전히 하자는 대로 움직인다. 문이 닫히기 직전 제갈량은 발걸음을 멈췄다. 소리 없이 닫히는 문은 몇 번 흔들리면서 종소리가 난다. 그와 동시에 둘 사이엔 얇은 벽이 생겼다. 뒷모습을 바라본다. 유비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데, 마음속에 자꾸 묘한 감정이 생겨서 큰일이었다.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 조금 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제갈량은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이젠 익숙해진 유비의 존재가 깊이 들어올수록 이 생활을 청산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뭐해.
유비가 창밖을 돌아보면서 손짓을 한다. 그 얼굴을 바라보니 절로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아직 남은 시각은 꽤 많았다. 처음 연구소를 나올 땐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 없다고 투덜거렸지만, 지금은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까웠다. 유비는 늘 제갈량이 대단하다는 말을 했지만, 오히려 하나하나 휘둘리고 있는 쪽은 제갈량일지도 몰랐다.
“밖에서 뭐했어?”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요.”
“난 문을 못 여는 줄 알았지.”
“설마 그러겠습니까.”
“어떤 게 좋아?”
“차이점을 잘 모르는데요.”
“그냥 마음에 드는 거로 고르면 되잖아.”
“…….”
제갈량은 잠자코 케이크를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두 가지를 번갈아 집어본다. 그리곤 미묘하게 변하는 유비의 표정을 관찰한다. 물론 유비는 편식하거나 가리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더 좋아하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자신은 둘 중 아무거나 집어도 상관이 없으니 말이다.
“오른쪽으로 하죠.”
“정말?”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아니…그냥.”
“선배?”
“나도 그쪽이 좀 더 마음에 들었어.”
제갈량이 유비의 머릿속을 읽은 것이 확실하지만, 당사자는 모르는 눈치니 다 잘된 일이었다. 예쁜 상자에 포장한 케이크까지 받아들고 나니 정말 실감이 난다. 제갈량이 짐을 나눠 들겠다는 것을 끝끝내 거절한 유비는 제갈량 두 손에 케이크 상자를 안겨준다.
“이것만 들어주면 돼.”
“하지만…….”
“그게 제일 중요하고 망가지면 안 되는 거니까.”
“…….”
“어서 집에 가자. 눈 올 거 같아.”
“정말…그렇네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
유비가 씩씩하게 걷기 시작한다. 제갈량은 그 뒷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저렇게 곧은 사람이 있었다니. 연구소에선 알 수 없던 일이었다. 그래도 이곳에 와서 좋은 일이 하나 있으니, 적어도 시간을 헛되게 보낸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제갈량. 어서 와!”
“네. 알겠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어서 들어가자.”
“…….”
역시 제갈량은 어떻게 해도 유비를 이길 수 없었다. 먼저 반한 사람이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깨지지 않는 명제였다. 먼저 반한 것이 죄라면 제갈량은 기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런 날이 계속되었으면. 크리스마스에 단 한 번도 빌어본 적 없던 소원을 조용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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