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100분/제갈유비] 약속,기억의 편린,전해지지 못하는 마음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50화 이후에 다시 만난 둘에 대한 망상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레히삼 완결까지 보지 않으신 분들께선 네타 주의해주세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인간의 삶이 이리도 어려운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차라리 시간의 흐름을 몰랐다면 훨씬 버티기 쉬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선이란 드림배들의 도구. 주군을 모시고 우승을 위해 달려가는 존재. 그리고 모든 것을 바쳐 돕는 것이 명예. 별다른 것이 없었다. 먹지 않아도 괜찮고 잠을 자지 않아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굳이 먹는다면 맛있는 것을 먹는 편이 좋다. 신선의 하루는 늘 비슷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말이죠.”
옥새의 관리자는 요새 혼잣말이 늘었다. 아무도 없는 곳이지만 수많은 사람의 소원을 들을 수 있다. 원한다면 더 가까이 끌어당길 수도 있다. 비록 화면 안에서만 만날 수 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큰 꿈을 얻기보단 작은 꿈을 모아서 이 세계를 지탱하는 쪽을 택했다. 그것은 제갈량의 주군이었던 유비. 그리고 드림 배들의 우승자인 사람의 소원이었다.
“…주군. 정말 이걸로 괜찮으신가요.”
돌아오는 답이 있을 리 없다. 수많은 화면 중 익숙하게 하나를 골라 확대한다. 이젠 눈감고도 찾을 수 있었다. 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소원을 빌었다. 이젠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제갈량도 행복해야 해. 나 보고 있어? 꼭 누구와 비슷한 말을 한다. 유비의 소원을 듣는 그 순간이 제갈량에겐 가장 기쁜 시간이었다.
“정말 변하시지 않는군요.”
제갈량은 유비의 한결같음을 좋아했다. 조조가 산이라면 유비는 바다라고 했던가. 그만큼 아무 의심 없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인간을 깊이 믿어본 적이 없었다. 드림 배틀의 도구인 신선으로 태어나 모든 것을 회피했다.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싫어했기에 단 한 번도 먼저 나선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인간은 한결같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무리 유비라도 이 정도면 변할 것이라 믿었고, 그렇게 된다면 영영 혼자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유비는 아니었다. 며칠. 아니 몇 년째일 수도 있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한 것이라 나이를 먹는데, 그때 가지고 있었던 약속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제갈량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지식이 다가 아님을 깨달았다.
“…주군.”
이름을 불러도 닿지 않는다. 둘이 무슨 약속을 했던가. 드림 배틀 우승은 그저 표면적인 것이다. 주군과 신선이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고, 신선이 만들어질 때부터 각인된 명령과 비슷했다. 약속이란 것은 덧없어서 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당신이란 사람은…….”
제갈량은 유비를 닮아간다. 늘 모든 것을 허무하게 바라보던 신선은 어느새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드림 배틀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무한한 생을 살 수 있었던 몸은 자연스럽게 인간계와 동화된다. 시간을 느낄 수 있으니 외로움이 생겼고, 그리움이 솟아났으며, 가끔 미치도록 보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 선계과 인간계는 분리되어있기에 인간은 마음대로 올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더는 드림 배틀이 없는 이 세계엔 선계는 더는 나타나선 안 되는 장소와도 같았다. 제갈량은 옥새 관리자를 덤덤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혼자 지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젠 정말 얼굴을 보고 말할 시기가 되었다.
“이젠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한 번 정도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사실 유비에게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이 많았다. 물론 유비의 소원이 드림배틀을 없애달라는 것이라지만. 그에 따른 모든 위험성은 유비와 제갈량이 지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천히 준비했다. 장각의 모든 데이터를 찾아보고, 수정해 나름대로 대책을 만들기로 했다. 쉽진 않았고, 선계가 만들어질 때부터 정해진 길을 완전히 바꿀 순 없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구멍 하나만 만들면 충분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은 충분히 돌려보았지만 직접 운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럼 가볼까.”
처음 인간계로 내려오길 정했던 것처럼. 제갈량은 조용히 옥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자신 외엔 아무도 남지 않은 선계를 바라보았다. 이곳이 이렇게 쓸쓸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인간계에 내려갔다 다시 돌아와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
“제갈량?”
“주군 편히 지내셨습니까.”
“어떻게…….”
“전 선계 최고니까요.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답니다.”
“정말…돌아온 거야?”
“돌아온 거라기보다는…잠시 소풍을 왔다고 하는 편이 낫겠죠.”
“…….”
“잠시 머물다 떠날 이라 반갑지 않으신가요. 주군.”
“…….”
“전 아직도.”
제갈량은 잠시 말을 끊었다. 이 말을 몇 번이나 해도 심장에 그대로 고인 것처럼 아팠다. 가족이란 개념은 무엇일까. 친구는 또 무엇인가. 군신 관계로 만나 그렇게 관계가 발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제갈량은 충분히 이성적이었다. 하지만 총명한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쉽게 낼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물어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예전엔 없는 일이었다.
“아직도? 뭐가?”
“아직도 주군의 가족인가요.”
“…….”
“이게 여쭤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당연하지. 제갈량은 바보야!”
“…….”
꼿꼿하게 서 있는 제갈량은 와락 껴안아 버린 유비는 큰 소리로 대답한다. 그 끝엔 울음이 섞여 있다는 것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주군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갈량도 나름대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라 했다. 허무한 삶에서 벗어나 꿈을 가진 존재란 이런 것일까. 제갈량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곤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왔으면 밥먹고가.”
“신선은 그런 거 먹지 않아도 괜찮은 걸요.”
“그냥 먹자. 소시지 구워줄게. 응?”
“…….”
“어디 가지 말고 여기 계속 있다가 돌아가. 알았지?”
“알겠습니다. 제가 인간계에 어디 갈 곳이 있다고 이리도 불안해 하시나요.”
“그냥…….”
“주군은 늘 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소원 비는 건 많이 들었지? 제갈량 심심할까봐 내가 매일매일 소원을 빌었는 걸.”
“네. 항상 듣고 있었습니다.”
“다행이다.”
“주군과의 약속이었으니까요.”
“그럼. 들어가자. 공손찬은 오늘 학교 가서 없고, 사부님은 여행 중이라 아무도 없어.”
“혼자 계셨습니까.”
“그렇지 뭐.”
제갈량의 손을 꽉 잡고 당긴다. 제갈량은 그런 주군의 손에 못이기는 척 발걸음을 옮긴다. 약속이라 하지만 그 것에 개인적 욕심이 스며들었다면 과연 그걸 약속이라 부를 수 있을까. 머리론 이성적 판단을 하려 애쓰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자. 먹어.”
“…….”
“혹시 올까 싶어서 내가 매일매일 사둔단 말이야.”
“정말 주군은…….”
“어서 먹어봐. 응?”
“…….”
부담스러울 정도로 동동거리는 유비를 가만히 바라본다. 시선이 서로 닿자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신선에게 인간이 스며들면 이렇게 되는 걸까. 제갈량은 살짝 웃으면서 포크를 들었다. 유비는 제갈량이 먹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자리에 앉는다. 남에게 밥먹이는 것을 즐기는 성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맛있습니다.”
“정말?”
“예. 주군이 늘 해주시던 것과 똑같습니다.”
“다행이다. 많이 먹어. 응?”
“주군도 드시지요.”
“난 괜찮은데…….”
“드시지 않으면 저도 먹지 않겠습니다. 주군께서 드시지 않는데 신선이 밥을 먹을 순 없죠.”
“아냐. 먹을게. 먹을 거야.”
유비는 다루기가 쉽다. 살짝 말하면 그대로 행동했다. 물론 자잘한 행동은 파악되지만 드림 배틀을 없애달라는 소원을 발하리란 예상은 하지 못했다. 이상한 곳에서 톡톡 튀는 사람이었다. 가만히 밥을 먹는다. 안먹겠다고 하던 것과는 달리 허겁지겁 밥을 먹는 유비를 곁눈질로 바라본다. 빤히 바라보면 저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다 먹은 그릇을 치우고 나서야 조금 여유가 생겼다. 제갈량은 늘 앉던 소파를 찾았다. 일년쯤 지났나. 시간을 헤아릴 수 없으니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제갈량. 어떻게 온 거야. 말 좀 해봐.”
“그야. 옥새가 무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완성했기 때문이죠.”
“정말?”
“그럼요.”
“대단해. 그럼 종종 놀러올 수 있겠네?”
“네. 주군이 계시다면 언제라도.”
“맞다.”
“말씀하세요. 주군.”
“내가 자꾸 꿈을 꾸는데…….”
“꿈이요?”
“응. 꼭 드림 배틀을 하기 전 꾸던 것처럼 계속 같은 꿈이 반복돼.”
“그건. 일종의 기억의 편린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편린?”
꼭 한 번씩 되묻는 주군이 이젠 귀여워 보인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또 있었나. 제갈량은 유비에 대한 마음을 다잡았지만 때때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유비는 그런 쪽으로 조금 무뎌서 그런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주군의 기억 중 작은 부분이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
“꿈 내용을 들어봐야 할 것 같지만.”
“그게…제갈량이 날 보고 있고.”
“…….”
“난 끝없이 길을 걷고 있어. 그러다 어느새 강이 보이고 그 곳을 걸어 들어갔다 나오면 또 같은 곳이 시작돼. 제갈량은 항상 날 바라보고 있지만 다가오진 못해.”
“…….”
“뭘까.”
“언제부터 그 꿈을 꾸셨습니까.”
“드림배틀이 끝나고 몇 달 뒤부터?”
“…….”
“왜? 안 좋은 거야?”
“…….”
“제갈량. 말해봐. 무슨 일이야. 혹시 또 세상이 위험해지는 건 아니지?”
“…….”
“나 때문에 세상이 위험해지는 건 싫어. 그러면 제갈량도 위험해지잖아.”
“주군.”
“응?”
제갈량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곤 처음 군신 관계를 맺을 때처럼 유비 앞에 서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유비의 눈이 등잔만 해졌지만 제갈량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신선 제갈량. 주군께 드리지 못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응?”
“처음엔 저도 알지 못했으나, 옥새 관리자로 지내면서 최근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옥새를 비울 수 없어 주군에게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무슨…일이야.”
“이렇게 꿈으로 나타나기 전에 알려드려야 했는데…….”
“무슨 일 있는 거지?”
“…….”
무슨 일이야. 응. 말해봐. 놀라지 않을게. 유비는 제갈량을 재촉했다. 하지만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 아직 가득한데, 그것조차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젠 정말 혼자가 되지 않을까. 제갈량은 그 죽음과도 같은 공허함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드림 배틀에서 우승한 군주의 신선은 옥새의 관리자가 됩니다.”
“그건 알고 있어.”
“옥새는 삼백 년마다 한 번씩 드림배틀도 많은 사람을 참가시켜 꿈을 모으죠. 하지만 지금은 드림배틀이 없어졌고, 최후의 관리자인 전 영원히 그곳을 떠날 수 없답니다.”
“…내가 잘못한 거야?”
“아뇨. 주군의 뜻은 신선인 제 마음과 같습니다. 제가 감히 주군에게.”
“그럼?”
“제가 존재하기 위해선 주군도 계셔야 하기에.”
“…….”
“주군은 몇 번이고 이곳으로 돌아와 다른 생을 살면서 절 지탱해주실 겁니다.”
“내가 죽고…다시 태어난다는 거야?”
“그렇겠죠. 하지만 그 장소와 시기는 제가 짐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
“주군이 어떤 얼굴로 태어나시든 전 주군을 찾아갈 겁니다.”
“…….”
“그때도 절 가족이라고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
유비의 대답은 너무 당연했다. 제갈량은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유비를 바라보았다.
“내가 제갈량을 잊을 리 없잖아. 하지만…내가 기억하는 게 늦을 수 있으니, 꼭 찾아와서 말 해줘야 해?”
“네. 주군.”
이젠 흐르지 않을 것 같던 눈물이 흐른다. 유비의 운명은 스스로 만든 것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제갈량은 철저한 타인이었다. 인간의 생과 삶에 신선이 개입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을 가슴 치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래도…당장 오지 않으면 슬플 거 같으니까.”
“…….”
“자주 놀러 와야 해?”
“네.”
“기억의 조각이 한 생에 한 조각씩 남아있으면, 언젠간 난 제갈량을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렇지?”
제갈량은 이런 소원을 빈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유비는 제갈량을 끌어안고 쭉 끌어당겼다. 유비의 품에서 신선을 한참 동안 소리 없이 울었다. 이렇게 미래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픈데, 어떻게 주군을 보낼 수 있을까. 차라리 같이 인간으로 태어나면 좋을 텐데. 신선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갈량은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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