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손책조조] 불편한 진실 004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손책조조 메인으로 왕윤 짝사랑하는 조조가 소량 나옵니다.
50화 이후에 다시 만난 둘에 대한 망상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레히삼 완결까지 보지 않으신 분들께선 네타 주의해주세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면서…….”
“…….”
“자존심 하나는 팔팔하군. 조조.”
“…….”
“무술을 배웠어도 크게 될 녀석이야.”
“…….”
지금이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방금까진 아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택시가 멈춰 섰다. 조조가 쓰러지기 전 알려줬던 주소인 모양이었다. 어떻게 내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녀석이 마지막 정신을 붙잡고 주소를 불러준 뒤 던지는 것처럼 카드를 던지는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저 철통같은 아파트 안쪽으로 들어갈 방법이 문제였다. 어깨에 매달려 늘어진 녀석은 열이 펄펄 끓는 데다 정신도 없었다.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얼굴에 손책의 몸에 열이 옮겨붙었다. 이렇게 놔두다간 그대로 타서 없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빨리 들여다 눕히고 싶은데 그런 마음과 달리 절차가 복잡하기만 했다.
“…아니. 그러니까 싫으면 직접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 어떤가.”
“그게…….”
“지금 아픈 사람을 두고 흥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
“금방 나온다니까.”
“그럼…….”
이런 곳에 쉽게 들어갈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입구부터 막아선 경비원에서 하나하나 조조의 얼굴을 확인시켜 준다. 다행히 얼굴을 알고 있는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앞서 작은 소란만 있을 뿐 두 사람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줄줄 흘러내리는 몸을 몇 번이나 끌어올린다. 그렇게 곧고 단정해 보이던 녀석이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행동일 것이 분명했다.
“어디랬지. 이쯤인가.”
“…….”
“다 왔다. 조조.”
“…….”
“그냥 내가 쉬라고 할 때 좀 편히 있다 갔으면 서로 편할 텐데 말이지.”
이젠 다리도 질질 끌린다. 아마 손책만큼 체력이 좋지 않으면 벌써 바닥에 내려놨을 정도의 무게였다. 어떻게 문을 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야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문을 열 때부터 집안 공기가 심상치 않음을 진작 느꼈어야 했다.
“…….”
“…….”
살다 살다. 이렇게 삭막한 집은 또 처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곳에서 사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혼자 사는 상황이야 이상하지 않지만, 사람이 집에서 기거하는데 필요한 것이 하나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독히 넓었다.
“정말 여기서 사는 건 맞나.”
“…….”
“문이 열렸으니 맞겠지.”
“…….”
넓은 거실에 멍하니 서 있던 손책은 침실을 찾는다. 그런 중간중간 코끝에서 새집 냄새가 났다. 녀석은 답지 않게 추위를 많이 타는 것 같았다. 약하게 떠는 녀석을 침실에 가져다 놓았다. 쓰러지듯 침대 위로 구른 남자는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겨우 이불을 빼서 덮어준다. 따뜻하고 푹신한 이불이 온몸을 감싸자 조금씩 앓는 소리가 줄어들었다. 이불에서조차 새 것 같은 냄새가 났다.
“…….”
이런 곳에서 제정신으로 살고 있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손책은 이런 공간을 특히 불편해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편리한 것들이 빼곡히 차 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편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편해서 너무 불편했다. 넓은 침대 끝에 걸터앉은 채 한참 동안 조조의 얼굴을 바라본다. 도원관에서 만났을 댄 이 정도로 퀭한 얼굴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새 살이 내리고 까칠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깊게 내려앉는 고민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이런 집에 약이 있을 리 없고.”
사실 있다고 해도 손책이 이리저리 뒤지고 다닐 위인은 아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한번 나가면 들어올 수 없을 테니 뭔가 해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끙끙 앓는 놈을 두고 갈만한 성정이 되질 못 했다. 손책은 괜히 민망해진다.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하다가 밖으로 나가버린다. 거실을 빙빙 돌면서 우연히라도 눈에 구급상자가 보이길 빌었다.
“…….”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집에 누워있으니 마음이 편해지는지 조금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바라보다 슬쩍 손을 댔다. 축축한 땀이 손끝에 닿는다. 열은 조금씩 내리는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 뜨겁긴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더는 머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일어나 물을 찾을까 싶어 부엌으로 간다. 딱 하나 있는 컵에 물을 담아서 옆 탁자에 놔준다. 정신을 차리면 뭐라도 하겠지. 그래도 다 큰 성인인데 그런 건 알아서 하리라 믿었다. 피차 잘 모르는 사이에 오래 머무는 것도 이상했다. 마지막으로 한번 넘겨본 후 침실 문을 닫아준다. 그러고 나니 거실에선 조그만 소리 한 점 들리지 않았다.
**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잠든 조조는 희미한 불빛을 따라 하염없이 걷는 꿈을 꾸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이지만 발걸음을 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끔 이런저런 얼굴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꿈길이 너무 낯설었다. 다시 뒤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안개가 꼭 장벽처럼 얽혀들었다. 조조는 내내 걸으면서 모르는 이름을 말한다. 아니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순간 잘못 밟은 곳에 땅이 푹 꺼지며 몸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허억!!”
조조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간신히 침대 끝에 걸쳐있던 몸은 중심을 잃고 그대로 와장창 무너졌다. 온몸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입을 벌렸지만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한동안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
여기가 어딘지조차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징징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간신히 일어난다. 손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서 자꾸 푹푹 꺾인다. 어느새 익숙한 침대가 눈에 보인다. 어. 조조는 이게 꿈인가 싶었다. 몇 번이나 눈을 깜박거리면서 초점을 잡는다. 굶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파서 그런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는 남자는 생각을 하는데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뭘 했지.”
뭔가 생각을 하려면 쪼개질 것 같은 이 고통을 눌러야 할 것 같았다. 늘 먹던 진통제를 둔 곳을 뒤진다. 손끝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자꾸 헛손질한다. 간신히 약을 꺼내고 나니 물을 찾을 생각에 아득해졌다. 그냥 삼켜버릴까. 목이 바짝 마른 주제에 헛된 생각이었다.
“…….”
이건. 생각지도 않은 물컵을 발견했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난 사람이 물을 떠놓고 자러 갔을 리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누군가 자신을 데리고 들어왔다는 소리와도 같은데, 정작 그게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더는 참을 수 없는 두통이 몰려와서 빈속에 약을 꿀꺽꿀꺽 삼켜버린다. 분명 속이 쓰릴 테지만 지금 당장 아픈 것이 더 급했다.
“…….”
이불이 잔뜩 구겨진 침대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꼭 중간중간 필름이 뜯긴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초선이한테 간 건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곳에 혼자서 걸어간 것도 생각이 났다.
“모르겠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입맛도 없고 속은 아프고. 열은 안 떨어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낯설지 않은 얼굴을 떠올린다. 아. 그제야 잃어버린 기억을 찾을 수 있었다. 흐릿한 마지막 기억 속에 보인 사람은 손책이었다. 하지만 영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사람이 속이 없으면 몇 번 보지도 않고 친하지도 않은 남자를 덥석 덥석 도와주려고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긴 그래야 저 정도로 속 편히 무술 연습이나 하고 다니는가 싶었다.
“집에까지 들어왔었나.”
무술가는 원래 흔적을 남기지 않는가 싶었다. 분명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기억은 없는데 집에 사람이 드나든 흔적 또한 없었다. 인기척조차 남아 있지 않은 집은 여전히 새것 같았다. 이래서 이 집에 그리 연연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저 쉴 만한 곳이 필요했었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것이 없었고, 넓은 집을 채울만한 물건에 연연하지 않았다.
아마 가장 많은 돈을 쓴 곳은 초선이의 장난감 목록일 것이 분명했다. 자신은 뭔가를 사도 그리 기쁘지 않으니 차라리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그리고. 아. 이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파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이 조조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전화가 온다. 징징 울리는 핸드폰을 귀에 걸친 채 늘어진다.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쿡 찌르지만, 또박또박 대답할 기력이 없었다.
“괜찮냐?”
“무슨 소립니까.”
“뭐긴.”
“…….”
“그럴 줄 알았다. 하여튼 새파란 것이 말이야.”
“그 이야기 하실 거면…제가 복귀해서…….”
“아니다. 그냥 하루 이틀 푹 쉬고 나와. 목소리부터 다 죽어가는 녀석이 무슨 일을 한다고.”
“저도 경찰입니다. 괜찮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억지로 몸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그런 조조보다 좀 더 먼저 들어온 선배는 이런 상황쯤 모두 짐작한다는 말투로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아서라. 너 그렇게 쓰러진 게 벌써 두 번째다. 안 그래?”
“…….”
“알아서 휴가계 올려놨다.”
“…….”
“다들 알고 있으니까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 이틀 동안 하고 싶은 거하고. 올해 치 마음 추스르고 그런 다음 나와. 알았냐?”
“…….”
“알았냐고. 인마.”
“네. 알겠습니다.”
그래. 쉬어라. 응. 끊는다. 상투적인 목소리 속엔 은은하게 걱정이 배어있었다. 다들 조조가 경찰을 그만둘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죽은 듯 누워있던 남자는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복귀했다. 몇몇은 무섭다 하고 몇몇은 걱정을 했다. 연계된 병원을 주선해주려 했지만 딱 잘라 거절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오고 나니 조조의 몸은 사방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
이때쯤 몰아치는 아픔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평소에 몸 관리를 철저히 하고, 신경을 쓴다고 예방할 수 있는 종류도 아니었다. 꼭 심장에 새겨진 것처럼. 이맘때가 되면 미친놈처럼 움직이고. 정신이 없고. 그냥 몸이 아팠다. 몸이 아프면 그 날 부근이 된 것이라 알아차릴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기억이 있는 것처럼 언제나 고통이 함께 찾아왔다. 그래서 익숙해졌으리라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오늘은 도원관에 초선이를 데리러 가야 할 것 같았다. 할 일 생각을 하자 조금 배가 고파졌다. 먹을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주방까지 걸어나가는 것도 한참이었다. 이리저리 뒤적거리니 시리얼이 툭 굴러 나온다. 우유에 시리얼을 와르르 털어 넣고 자리에 앉는다.
“…….”
꼭 앞에 뭔가 있었던 거 같은데. 혼자 있는 공간이 당연한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조조는 일부러 시리얼을 꽉꽉 씹어 넘긴다. 사람이 잔 생각이 많아지면 실수를 한다. 다시는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
“세상에.”
“…….”
“벌써 일어난 거냐?”
“…뭐야.”
“참 세상 걱정이 많은 사람인 거 같아.”
“용무가 없으면 이만 실례하지.”
“아니. 나도 그쪽으로 가는 중인데?”
“…….”
“도원관 가는 거지?”
“…….”
“같이 가.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대답도 듣기 전에 옆에 붙어 선다. 그렇다고 도원관으로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조는 영 표정을 풀지 못한 채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로 한다. 왜 이렇게 저놈과 얽혀대는지. 조조는 절로 미간을 찌푸린다. 도원관은 왜 이렇게 오늘따라 멀게 느껴지는지.
“…….”
“…….”
찝찝한 마음은 그대로 표정에 나타난다. 손책은 그걸 알고 있는 거 같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조조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몸은 괜찮고?”
“그건…….”
“그래도 내가 널 부축해서 집에 올려놨는데 너무한 거 아닌가?”
“나를?”
“그래. 내가 그렇게 강동관에서 쉬다 가라니까 멀쩡한 척은 혼자 다 하고 말이지.”
“…….”
“그러더니 길가에서 당장 쓰러질 거 같이 앉아있더군.”
“그랬던가.”
“뭐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네. 근데 경찰이 체력이 그게 뭐냐.”
“내 체력은 내가 알아서 해.”
“나중에 강동관에도 와라. 내가 진정한 무술을 가르쳐 줄 테니까.”
“…….”
저놈의 무술 소리는 언제나 듣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혼자 걷는 것보단 조금 나았다. 물론 저렇게 시퍼런 도복을 입고 다니는 녀석이랑 같이 걷자니 뭔가 지나가는 시선이 툭툭 꽂히는 것 같았지만, 그저 착각이길 빌었다. 저놈은 속도 없이 좋아한다. 누가 유비 친구 아니랄까 봐 싶었다. 꼭 태양 같은 녀석인데 유비와는 좀 다른 느낌으로 따뜻했다.
“그러니까 응? 밥 잘 챙겨 먹고. 쨔샤.”
“…….”
“알았지? 건강한 게 최고야.”
“그래. 많이 건강해 보이네.”
“내가?”
“그래. 누구 하나 부럽지 않게 말이지.”
“…….”
갑작스레 입을 다문다. 조조는 뭔가 이상한 기분을 눈치채긴 했지만, 옆에서 떠들던 녀석이 조용해지니 한결 머리가 맑아졌다. 사실 손책이 어디서 대화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끓어오르고 식는 것이 참 빠른 녀석이라 생각했다. 대화가 끊기니 발걸음 소리가 잘 들린다. 용케 소리가 엇나가지 않은 채 열심히 걷는 둘은 더는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세상에.”
“응?”
“무슨 일이야? 둘이 같이 왔잖아…요.”
눈이 둥그렇게 된 채 도장 밖으로 나온 유비가 어색하게 말을 건넨다. 하긴 한쪽은 친구였고, 다른 쪽은 보호자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 어색한 말을 듣던 손책은 크게 웃으면서 유비의 등을 퍽퍽 친다. 죽는소리가 들리면서 유비의 허리가 푹 꺾였다. 한참 그렇게 서로 인사를 하더니 동시에 조조를 바라본다. 정말 닮은꼴 하나도 없는 녀석 둘이 비슷한 짓을 한다.
“오는 길에 만났을 뿐이다. 별거 아냐.”
“그래?”
“그래. 초선이는 혹시 왔나.”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른데…다들 밥 먹었어?”
“뭐?”
“아이참. 밥 굶고 다니면 몸에 안 좋아. 어차피 나도 먹으려 했거든? 같이 먹자. 응?”
“그…러니까 난.”
“그래 좋다. 내가 이 밥에 반해서 자꾸 여기 오는 거 아니냐. 조조도 같이 먹이자!”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손책!”
“물론이지!”
아, 저 바보들. 조조는 신나서 들어가는 둘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찼다. 어쩌다 이런 바보 놀음에 끼어들게 되었을까. 하나하나 걸러보자니 짚이는 게 너무 많았다. 여기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 들어가긴 하지만, 절대 이 녀석들과 어울리진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몸은 질질 끌려들어 간다. 그러더니 어느새 식탁 앞에 앉게 되었다. 유비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내 이것저것 꺼내서 요리를 시작했고, 손책은 바로 앞에 앉은 채 조조를 바라보았다. 당장 꺼져. 눈으로 욕을 했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맛있어??”
“…….”
“입에 안 맞아?”
“…….”
꼭 하는 짓은 강아지 같아서 끊임없이 말을 건다. 옆에서 너무 부산스러워서 사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조조는 까끌까끌한 입안에서 겉도는 밥을 간신히 삼킨다. 손책은 늘 좋다고 말하니 별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정말 잘 먹고 튼튼한 녀석이라서 저리도 몸에 열이 많은가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젓가락이 잠시 멈추자 유비의 칭얼거림이 더 심해진다.
“손책이 이 밥을 먹으려고 그렇게 도원 관에 들락거린다 하더군.”
“응. 맞아. 그래서 괜찮아?”
“나쁘진 않아.”
“그럼 맛있다는 거네.”
“…….”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밥을 먹으니 들어가긴 한다. 유비는 한참 만에 젓가락을 들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밥 먹이는 것을 즐기는지 알 수 없었다.
“잘 먹어. 많이.”
“그래. 뭐. 알았다.”
“다들 잘 먹어야지.”
“…우리가 그렇게 친했었나.”
“응? 뭐 도원 관에 오면 다 친구니까.”
도대체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조조는 그냥 입 다물고 먹는 데 집중하기로 한다. 원체 가리는 음식도 많았고 밥을 먹는 행위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늘 대충 배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입 짧은 남자가 젓가락을 놓지 않는 것은 꽤 신기한 일이었다.
“네가 해주는 밥이 좋아서 내가 여길 들락거린다니까.”
“잘 먹어주면 나야 좋지.”
“어때. 너도 괜찮았지?”
“…….”
“이 녀석도 은근 낯을 가린다니까.”
“날 언제 봤다고…….”
배가 부르고 힘이 생기니 또 으르렁거린다. 눈앞에 뭔가 보이기 시작하니 한결 나았다. 두통도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았고, 속이 쓰린 것도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깨끗하게 비운 밥그릇만 계속 쳐다본다. 손책은 그런 조조의 정수리를 넘겨보고 있었다. 늘 싱글벙글한 웃음을 지닌 채 말이다.
“자, 후식으로 꿀 커피 대령이오.”
“꿀 커피?”
“시럽 넣어서 먹으면 맛있어.”
“난 단 거 안 좋아해.”
“먹으면 맛있다니까. 손책 넌 먹을 거지?”
“당연하지.”
시럽이 끝도 없이 들어간다. 조조의 눈이 조금 커졌다.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시럽의 단 냄새가 커피와 섞여서 묘한 향기가 된다. 싱글거리며 식탁에 앉은 녀석은 뜨겁지도 않은지 커피를 마신다. 너무 달 것 같아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마시지 않으면 괜찮으냐는 말을 다른 표현으로 다섯 번쯤 물어볼 테니 예의상 입만 대보기로 한다.
“…달아.”
“그 맛으로 먹는 건데.”
“내가…이걸 먹었던 적이 있나?”
“응?”
“아니야. 그냥. 음.”
조조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유비는 알 듯 말 듯 한 눈으로 커피를 마저 마신다. 손책은 도원관에서 먹어봤겠지. 하고 한마디로 정리했고 조조는 곧 그것에 수긍했다. 잦아든 줄 알았던 두통이 머리 깊은 속에서 찌르르 울렸다. 그 아픔에 절로 눈을 찌푸린다. 하지만 다행히도 날카롭게 지나간 고통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손책과 유비만 보면 이랬다.
“그러고 보니 고맙다고 안 하냐?”
“내가 뭘.”
“찾아줬지. 구해줬지. 치료해줬지. 집에 데려다 줬지.”
“…….”
“너 나 아니었으면 거기 며칠 더 누워있었을 거다.”
“그럴 리가.”
“맞아. 유비 고마워 덕분에 저 녀석을 찾았지 뭐야.”
“어? 으응. 잘됐네.”
“넌 어떻게 알았지?”
“뭐가?”
“그 장소.”
“그냥 넘겨짚었을 뿐이야. 운이 좋았던 거지.”
“대단한데?”
저 속없는 녀석. 조조는 더 캐묻고 싶었지만, 자신의 일이 끄집어내질 수도 있기에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달기만 한 커피를 간신히 비우고 나서도 초선은 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이른 모양인 듯 했다. 아니면 오늘은 쉬겠다고 떼를 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 애들 와서 그만 나가봐야해. 천천히 있다가?”
“그래. 고맙다 유비!”
“나중에 또 밥먹으러와. 그땐 고기반찬 해줄게!”
집주인이 떠나고 또 둘만 어색하게 남는다. 조조는 계속 헛기침을 하며 밖을 내다보고, 손책은 그런 조조를 바라보았다. 이럴 때 초선이 오면 이 어색한 자리를 피할 수 있어서 좋을 텐데. 오늘따라 아이가 늦었다. 아니 아직 도원관에 도착할 시간이 아닐지도 몰랐다.
“무슨 일이 있는진 모르지만.”
“…….”
“그래도 건강은 챙겨가면서 움직여라. 경찰이…그게 뭐냐.”
“스스로나 걱정해. 난 괜찮아.”
“안 괜찮아 보여서 하는 말이야.”
“…….”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고.”
“고맙다.”
“…뭐?”
“이 말 듣고 싶어 했잖아. 어쨌든 고마워.”
“허…참. 흠.”
손책 얼굴이 훅 달아오른다. 저 녀석도 저런 표정을 할 수 있으나. 조조는 곁눈질로 얼굴을 관찰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그런데 영 믿기지 않네. 조조 아닌 거 아냐?”
“싫으면 받지 말던가.”
의미 없는 투닥거림은 꼭 데자뷰처럼 흩어진다. 둘 다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표현할 수 없어 그저 이상하단 말로 넘겨버렸다. 조조는 초선이 돌아올 때 까지 자리에 앉아있었고, 손책은 어디선가 구해온 약을 쥐어준 채 강동관으로 돌아갔다.
이젠 더 만날 일이 없겠지. 이런 생각을 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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