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손책조조] 불편한 진실 002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손책조조 메인으로 왕윤 짝사랑하는 조조가 소량 나옵니다.
50화 이후에 다시 만난 둘에 대한 망상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레히삼 완결까지 보지 않으신 분들께선 네타 주의해주세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그런데…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일단 뛰어나오긴 했지만,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조조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고작해야 도원관에서 종종 마주치는 남자라는 점 정도일까. 그나마도 몇 번 만나지 못했다. 물론 저번처럼 우연히 마주칠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만난 사람 둘이 깊은 이야기를 할 리 없었다.
“큰일이네.”
초선이도 걱정이지만, 그 불도저 같은 경찰 양반도 걱정이었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것인지. 피도 눈물도 말라버렸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곤 늘 위태로워 보였다. 손책은 굳이 따지자면 그리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손책의 눈에도 조조는 늘 아슬아슬한 모습이었다.
“유비는 뭔가 알고 있을까.”
아이에겐 온갖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당장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머리를 굴려본다. 조조와 만났던 곳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결국 주저앉았다. 이렇게 하나하나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장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을 찾을 방법을 뭘까. 결론은 한가지뿐이었다.
손책은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다. 훈련할 때도 이렇게 빠르게 뛰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도원관에 간신히 도착해서 거친 숨을 몰아쉰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린다. 아니 두드리려 했다. 마지 기다린 것처럼 유비가 툭 튀어나왔다.
“…손책?”
“유비?”
“무슨…아 상향이한테 이야기 들었어.”
“그래? 그거 잘됐네.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지?”
“조조가 없어졌다며.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안 그래도 나도 뭔가 이상했어.”
“넌 왜?”
“초선이가 도장에 오질 않아서 말이야. 알잖아. 늘 조조 손 잡고 오는 거.”
“그렇군.”
“그래서. 바쁜가 하다가 문득 일이 생겼나 싶었는데, 괜히 나쁜 생각을 하는 거 같아서……. 마냥 기다렸지 뭐.”
“찾긴 찾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몰라서 말이야.”
“그건 나도 그런데.”
이 녀석은 늘 속이 편해도 너무 편하다. 도장을 운영하면서 보호자 긴급 연락처 정도는 받아놨을 법도 한데, 그런 것도 없는 모양이었다. 조조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유비와 같이 두 갈래로 찾는 방법이 제일 낫지 않을까 싶었다. 연락을 할 수 없으니 몸으로 때워야 했다. 이 넓은 곳을 언제 다 돌아다닐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이었다.
“유비. 나와 같이 조조를 찾아보자.”
“…….”
“유비!”
“…….”
“유비. 같이 찾아보자니까.”
“어? 어. 어. 그래.”
성의 없는 대답이 툭 흘러나왔다. 손책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생긴다. 유비는 저 멀리 어딘가를 보면서 계속 생각을 한다. 당장 어깨를 잡고 흔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손책은 계속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같은 자리를 세 번쯤 돌고 나서야 다시 유비 앞에 섰다. 보통은 이렇게 집중을 못 하는 녀석이 오늘은 참 속도 좋았다.
“유비? 나 간다?”
“…….”
“오늘 너도나도 다 이상하군.”
“잠깐…잠깐만.”
“응?”
“확실하진 않은데…잠시만. 응?”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군.”
“잠시만 손책!”
유비는 허겁지겁 도원관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더니 와장창 소리가 나고 조용해진다. 결국, 빈손으로 나온 유비는 뭔가 해답을 찾은 것 같았다. 여전히 정신없는 녀석이었다.
“…있다.”
“뭐?”
“그…확실하진 않지만, 조조가 사건에 휘말렸던 곳이 있어.”
“그게 어디지?”
“어디냐면…….”
유비는 우물쭈물 에둘러 말한다. 정확한 장소를 짚어주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범위를 줄일 순 있었다. 뭔가 더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더 뭐라 하지 않기로 했다. 이 대답도 없었다면 밤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고맙다. 유비!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어? 어. 어. 그래.”
“혹시 내일 도장에 초선이가 오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강동의 호랑이 손책이 꼭 조조를 찾아서 데려간다고도 말해다오!”
“알았어. 그럴게.”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손책이 훌쩍 떠난 곳에 유비는 내내 홀로 서 있었다. 손책이 했던 것처럼 몇 번 도원관을 걸었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쉬면서 주저앉았다. 이젠 형체가 없는 화단이 앞에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의 비밀을 홀로 떠안은 유비는 내내 끙끙거렸다.
“나 잘 한 거겠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항상 옆에서 한마디씩 얹는 사람은 이제 이곳에 없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오늘 같은 날이면 더 했다.
“제갈량. 그래도 다 말하진 않았어. 드림 배틀 전의 기억은 아무도 알아선 안 되는 거잖아.”
이럴 때면 속도 편하십니다. 이렇게 한마디 쏘아붙이리라 생각했는데. 쓸쓸하게 식어간 혼잣말을 형체도 없이 부서져 내렸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도원관을 꽉 채우고 있을지도 몰랐다.
“해가 지는 곳에 지옥이 있다. 태오…조조는 아마 거기 있을 거 같은데.”
제갈량에게 소원을 빈다. 드림 배틀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늘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들리지는 않지만 모두 듣고 있으리라 믿었다.
**
생각보다 꽤 먼 곳이었다.
손책은 이곳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도 알지 못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주변 소문에 둔해지기 마련이었다. 원래 무술과 가족만 생각하던 사람은 주변을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진작에 좀 알아볼걸.’
몇 번이나 후회했다. 하지만 시간을 돌릴 수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심장이 뛰었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움켜쥔 채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폐허가 된 공간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유비가 여길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이젠 궁금하지조차 않았다. 그저 여기에 찾는 남자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조조! 어디 있는가!”
“…….”
“있으면 대답하라!”
“…….”
손책의 목소리는 허공을 빙 돌아 다시 돌아왔다. 웅웅 울리는 목소리는 크기만 한데 대답을 해주는 이는 없었다.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된 이곳에 조조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조금만 더 둘러보고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경찰서라도 찾아갈 생각이었다.
“경찰을 잃어버렸다고 경찰서에 가다니. 누가 들으면 크게 웃겠군.”
자신도 웃긴지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라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잠시도 참을 수 없었다.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왔지만, 이렇게 당황스러운 적은 또 처음이었다. 부탁의 무게는 무겁고 사람의 목숨은 중하다.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짊어진 손책은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처럼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있을 거 같은데.”
대답하지 않는 것은 의식이 없다는 소리일 수도 있다. 손책은 소리에 의지하지 않으려 애썼다. 소리를 낼 만한 상태였다면 벌써 뭐라도 반응이 왔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렇게 죽은 듯 조용한 것은 그런 생각과 다른 사고가 났을 확률이 있다는 말과 같았다.
물론 사라진 당사자인 조조 녀석이 걱정되긴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걱정인 것은 작은 아이였다. 조조가 하늘인 것처럼 믿고 따르는 아이의 얼굴 똑바로 바라보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녀석을 찾아야 했다. 다 큰 어른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이렇게 여러 사람을 괴롭히는 건지. 늦바람으로 사춘기라도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시선은 계속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기척도 없었다. 이젠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그 순간 저 멀리 희미한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어둠에 반쯤 묻혀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만 한 크기였다. 아무리 무술에 능한 손책이라 해도 어둠은 이길 수 없었다. 눈을 찌푸리고 쳐다보았지만, 어둠과 동화된 덩어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잔뜩 경계한다.
“…….”
그리고 조금씩 앞으로 걸어갔다. 눈에 어둠이 서려 헛것을 볼 수도 있다. 그저 인적 없는 곳에 버려진 쓰레기일 수도 있고, 그림자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손책은 두 눈으로 그것의 정체를 알아보기로 했다. 한걸음. 다시 한걸음. 신중한 발걸음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거기 누구냐.”
“…….”
“대답하라.”
“…….”
“사람인가?”
“…….”
“나 참.”
원하는 대답이 들리지 않으니 절로 몸이 빨라진다. 빠르게 걸어오던 손책이 갑자기 우뚝 섰다. 그러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밝은 낮에 이 녀석을 찾았으면 조금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어둠 속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어이고. 한숨을 푹 쉬면서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사람인가. 아닌가.”
도대체 모르겠네. 꽤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도통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죽은 듯 누워있는 것을 보아하니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착각인가. 늘 당당하던 마음은 간 곳이 없었다. 코앞까지 다가와서야 간신히 인간의 형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
“…….”
통나무처럼 쓰러져 있는 사람은 정신을 차릴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손책의 머릿속에 익숙한 얼굴이 떠오른다. 찾는 사람과 어쩐지 비슷해 보이는 키. 비슷한 체격. 비슷한 옷차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조조?”
“…….”
“아니, 조조. 이게 무슨 일인가.”
“…….”
“세상에. 도대체 이런 곳에 왜…….”
“…….”
“숨은 쉬는 건가. 조조. 이것 봐.”
“…….”
“이거…원 참.”
손책은 온종일 쌓인 걱정 위에 고민거리가 다시 얹힌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런 낯선 곳에 왜 이 남자가 쓰러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무술에 능통한 사람이라지만 성인 남자를 훌쩍 들기엔 무리였다. 의식조차 없는 남자를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어색한 자세로 조조의 몸을 가슴에 기대게 한다. 하지만 힘이 하나도 없는 몸은 품에서 자꾸 미끄러지기만 했다.
“이거…난감하군.”
“…….”
“조조? 이봐. 내가 의사가 아니니 뭘 확인을 할 수도 없고.”
하지만 이대로 둘 순 없었다. 의사는 아니지만, 호흡이나 맥 정도는 짚을 수 있었다. 무술의 기본인 혈도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도움이 되긴 처음이었다. 손책은 품 안에서 반쯤 흘러내린 몸을 추스르며 다시 한번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젠 그냥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숨이 막히지 않게 어깨에 고개를 기대게 하고 비스듬하게 호흡을 잡아주었다. 얼마나 쓰러져 있었는지 바짝 마른 입술에선 제대로 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음은 급한데, 품에 안긴 사람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쪽 팔로 몸을 감싸 안아서 지탱한다. 다른 손을 귀밑에 대고 맥을 짚는다. 싸늘한 체온이 순식간에 손가락에 옮아붙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손책은 아찔함에 눈을 감아버렸다. 심장이 뛰는 것 같긴 한데,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목 주변에서 맥을 짚어보다 결국 코밑에 손가락을 가져대 댔다. 간신히 마른 숨이 손가락에 느껴졌다. 사람 체온이 닿으니 조금이지만 몸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급한 상황은 넘긴 것이니 괜찮았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남자가 아닌가.”
“…….”
“궁금한 것이 많지만, 일단 사람 먼저 살려놓고 볼 일이군.”
“…….”
“의식은 없으나 호흡은 스스로 할 수 있으면 되었다. 몸이 굳은 것은 추워서 그럴 테고.”
“…….”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난 도통 모르겠어.”
“…….”
호흡을 확인하면서도 끊임없이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체온이 떨어진 것이 출혈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어 여기저기 더듬어 보았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을 잊을 만큼 당황했던 남자는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도 멀었다면서 자신을 책망했다.
급히 확인했지만, 다행히도 급소를 찔리거나 베인 흔적은 없었다. 다친 곳도 없고, 주변에 억지로 끌려온 흔적 또한 없었다. 물론 협박을 당해 이곳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만, 그렇다면 이렇게 곱게 누워있진 않았을 것 같았다. 경찰을 이렇게 둘 수 있을까. 손책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 같았다. 반항을 막기 위해 손이나 발을 묶는 것도 없었고, 정말 갑자기 쓰러진 사람 마냥 축 처진 모습이었다.
“일단 돌아가자.”
“…….”
“일어나면 할 일이 많겠어.”
조조를 발견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의식 없는 성인 남자를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손책 혼자서도 움직이기 힘든 거리를 둘이서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조조를 짊어진 채 발을 구른다. 여기를 벗어날 정도의 힘은 있지만, 강동관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언제 또 상태가 나빠질지 모르는 녀석을 이렇게 밖에 둘 수 없었다.
게다가 초선에게 조조를 무사히 데려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손책은 자신이 여기까지 움직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일까. 아니면 얼굴도 몇 번 보지 않은 데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던 녀석에 대한 미운 정일까. 그건 강동관에 돌아가서 천천히 곱씹어보기로 했다.
“어쩔 수 없지.”
이럴 때 도와달라고 가족이 있는 것이 아닌가. 손책은 아닌 밤중에 기사를 찾았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강동관은 발칵 뒤집혔다. 답답하고 귀찮다며 강동관의 모든 것을 거부하던 남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제법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무사히 조조를 뒷좌석에 구겨 넣을 수 있었다.
“세상에.”
“…뭐가?”
“아니 한참 전에 나가서 안 들어오기에 걱정을 했더니…….”
“…….”
“사람을 주워 온 거야? 아니지. 설마 때린 거야?”
“상향아. 이 오빠가 그렇게 무술을 맘대로 쓰는 사람은 아니다.”
“아니 그러면 이건 뭔데.”
“이야기하면 좀 길다.”
“정말. 내가 못 살아!”
이 정도 잔소리는 각오한 일이었다. 나중에 다 이야기하겠다는 약속을 족히 다섯 번을 하고 나서야 조조를 안쪽으로 옮길 수 있었다. 여전히 의식이 없는 녀석을 질질 끌고 간다. 손책의 동생은 눈치가 빠르지만 일단 저 무술 바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여기다 눕히면 되는가?”
“네.”
“참…내가 이런 걸 해봤어야.”
“조심. 조심하세요. 손책님.”
“괜찮아. 이 정도로 죽지 않을 녀석이다.”
“그래도…….”
깨끗한 침대에 먼지투성이 남자가 털썩 쓰러진다. 뒤따라온 의사가 급히 자리를 잡는다. 아직도 체온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처음 발견했을 때보단 호흡을 편하게 하는 걸 보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다음에 해줄 일이 뭐더라. 제대로 된 의학지식이 없으니 큰일이 날까 조심스러웠다. 일단 목까지 단단하게 잠근 단추를 몇 개 풀어낸다. 안쪽에도 별다른 상처가 없는 것을 보니 오히려 지병이 있지 않겠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 녀석도 나랑 비슷한 건가.”
손책은 괜한 감상에 잠겼다. 그러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불편한 옷도 풀어주고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이불도 덮어줬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 뿐이었다.
“손책님.”
“어? 어.”
“상향 아가씨가 보내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혹시 손책님이 또 발작하신 것인가 싶어 오는 내내 걱정했습니다.”
“아냐. 난 건강하다고.”
“그럼. 절 무슨 일로…….”
“그게…….”
어쩐지 부끄러워진다. 이런 일로 부끄러워할 사람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몸을 따라주지 않았다.
“여기 이 사람 좀 봐봐.”
“예? 누구.”
“어…친구. 그래 친우라고 해두자.”
“그러십니까.”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말이야.”
더 깊은 이야기를 물어보기 전에 자리를 비켜주었다. 손책의 지병을 담당하던 의사는 바로 그 뜻을 알아차렸다. 찬찬히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진료를 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시곗바늘이 좀처럼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초조함을 꾹꾹 누르던 손책이 더는 참을 수 없는지 발을 몇 번 구른다.
“저…….”
“큰 부상은 없습니다.”
“그런가.”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저체온 증상인데…친구분은 어디서 계셨기에 이렇게 체온이 떨어진 건지.”
“그럴 일이 있네.”
“늘 한결같으시군요.”
“…….”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손책을 봐온 주치의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가방에 의료도구를 챙기고 몇 가지 약을 내려놓았다.
“따뜻한 곳에서 푹 쉬면 별다른 이상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진통제와 감기약 정도는 두고 가겠습니다.”
“…….”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친구분을 병원으로 모시고 오시는 것이 좋겠군요.”
“알았네. 늘 고마워.”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피로와 저체온 증상 때문에 나타난 증상이라고 했다. 하루 푹 자면 회복이 될 것 같으니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겠지만, 조조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운 원인이 궁금했다. 손책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다 다시 돌아왔다. 밤을 한 번이라도 더 새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소리를 잊은 것은 아니었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남자구나. 조조.”
“…….”
“하긴 뭐라도 좋다. 남자가 가끔 이런 일도 있는 거지.”
“…….”
이리도 가볍게 넘어가는 것이 좋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었다. 손책은 결국 소파에 기댄 채 잠을 청한다. 깜빡 졸고 일어날 때마다 침대를 넘겨본다.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잠들어있는 녀석을 보고 나서야 다시 눈을 감았다.
아마 아침이 밝으면 할 말이 많은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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