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리츠마오] STARDUST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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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해석 노력중인 알못 주의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이 글은 김메이의 부탁 겸 선물로 작성중입니다
혹시나 책이 나와도 올린 분량 자체를 지우진 않습니다.
write. 환월
운명이라는 것은 언제나 알 수 없는 상태로 다가오곤 했다.
예를 들면 가장 힘들거나, 괴로울 때. 사람의 마음에 빈틈이 생겨 어느 정도 똬리를 틀고 들어앉을 만할 때. 항상 이럴 때 슬그머니 다가와 새까만 혀를 날름거리곤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런 운명의 혀를 만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곤 한다. 그러면 운명은 굳이 그 뒤를 힘들여 쫓지 않는다. 단어의 이름과 무게가 그렇듯 언젠간 꼭 만나게 될 일이었다. 그때는 혀가 아닌 눈을 볼 수 있겠지. 그다지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 운명이 어느 소년에게 스며들어 갔을 때, 놀라울 정도로 세상이 뒤바뀌고 말았다. 보통 알 수 없을 정도로 움직이던 것과 달리 소년의 세계는 한순간에 하늘과 땅이 바뀌어버렸다.
“…….”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면 변하는 세상이 그대로 들어왔다. 봄이 가면 갑자기 가을이 찾아왔다. 낙엽이 떨어지는가 싶으면 세찬 비가 내렸고, 비는 그대로 굳어서 얼음으로 변했다. 손끝에 뚝뚝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던 소년은 곧 창문을 닫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눈이 소복소복 쌓이다 그대로 얼어갔다. 단단한 커튼을 뚫고 찾아온 한기가 침대 밑에 뭉친 채 그대로 녹아갔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동안 소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을 찾지 못했다는 쪽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을 이성적으로 재단하기엔 지나치게 나이가 어렸다. 그저 눈앞에서 재생되는 영화 같은 상황을 보다 눈을 감으면 그만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면 평범한 아침이 돌아올 수도 있지 이런 생각을 했지만, 오히려 날이 지날수록 더 빠르게 변해갔다.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할 일을 겪고 있던 소년에게 찾아온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애초에 무슨 병에 걸려 이렇게 된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의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고, 형에게 질문을 던질 수도 없었다.
“…….”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조금만 참으면 곧 나아질 거로 생각했었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뒤였다. 안 그래도 해가 뜨는 그 순간부터 정신이 몽롱해지는데, 세상이 어지럽기까지 했다. 아. 한숨을 푹 쉬던 녀석이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제 어쩌면 좋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끙끙 앓기만 했다. 이래 봤자 하나도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도 믿기 어려운 사실을 남에게 말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좀 더 참아볼까. 아니면 그냥 인정해 버릴까. 또 밝아오는 새벽을 바라보다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껏 밝아진 하늘에서 흐르는 빛이 침대에 가득 내려앉았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꼼짝없이 학교에 늦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리츠!”
“…….”
“리! 츠!”
“…….”
저 멀리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절로 이불을 끌어당겼다. 나 없어. 없는 거야. 중얼중얼 목으로 대답을 넘겨버린 채 끙끙 앓았다. 밤엔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아침엔 한없이 나른했다. 잠시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몇 번이나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잦아들었다. 눈을 살짝 ㄸ는 가 싶더니 다시 이불을 돌돌 감았다. 꼭 이맘때가 되면 이렇게 몸이 푹푹 쳐지고 움직이기 싫어지곤 한다. 아프다고 하기보단 피곤하다고 하는 쪽이 맞을 것 같았다. 아침 해가 뜨는 그 순간부터 눈을 들어 올리기도 싫을 만큼 온몸이 나른해졌다.
“…으.”
간신히 입술을 열었다. 열이 나는 건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어봤지만, 알 수 없었다. 손도 이마도 똑같이 뜨거우니 뭘 알 수가 없었다. 몇 번 뒤척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이려던 몸이 이내 축 늘어졌다.
‘그냥 졸린 건가 봐.’
이렇게 생각하는 쪽이 편했다. 무기력하게 늘어진 몸을 강제로 일으키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침대에 눌어붙은 채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잘 알고 있었다. 학교라던가. 등교. 온갖 머리 아픈 단어가 둥둥 떠올랐다.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 리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무 익숙한 순간이라 놀랄 것도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숨는 것처럼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학교 가야지.”
“…….”
“리츠. 학교 안 갈 거야? 지각한다?”
“…….”
“안 자는 것 다 알아.”
“…….”
“리. 츠.”
한 마디 한 마디 끊어서 이름을 부르던 녀석이 침대 끝에 주저앉았다. 쿨렁. 꼭 그만큼 무게가 침대에 더해졌다. 가만히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졌다.
“정말 자는 거야?”
“…….”
“아픈 건 아니고?”
“…모르겠어.”
“역시 안 자고 있었구나.”
“방금 깬 거야.”
“정말?”
“정말.”
실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바쁘다며 채근하던 사람은 어디 가버린 건지. 유난히 축 처져있는 친구를 바라보던 마오가 걱정스러운 듯 손을 올렸다.
“이리 좀 와봐.”
“응?”
“열이 나는 거 아냐?”
“…그런 거 아냐.”
괜히 한마디 더 던진다. 하지만 마오의 손을 막을 수 없었다. 정말 열이 나는 걸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했다.
“뜨거운데.”
“마-군. 손은 시원하네.”
“이렇게 아프면 이야기라도 하지 그랬어.”
“아냐. 이제 좀 정신이 드는 거 같은데.”
“뭐?”
“좀 괜찮아진 것 같아.”
“얼굴은 전혀 아닌데.”
“괜찮아.”
“…….”
차라리 눈에 졸음이 가득 담겨있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러면 업고 가면 될 텐데. 오늘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이마는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을 정도로 펄펄 끓는데, 손은 차가웠다.
“리츠. 나 봐봐.”
“…….”
아냐. 나 이제 괜찮아. 리츠는 진심이었다. 마오의 손이 닿는 곳마다 펄펄 끓는 열이 스르르 가라앉았다. 왜 그럴까. 물론 그런 생각을 하기엔 마오의 손이 너무 시원했다. 시원하다 못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미친 듯 널뛰던 하늘도 가라앉았다.
“…조용해졌다.”
“응?”
“조용해진 것 같아. 나 이제 괜찮아.”
“아니야. 너 오늘 정말 아픈 거 같아.”
“…….”
마오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츠의 눈은 저 멀리 창문을 넘어선 하늘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용암이 끓는 것처럼 울렁거리던 하늘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얼마 만에 보는 깨끗한 하늘인지 알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말라죽을 것 같았는데.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도대체 날 언제 포기해 줄 거야?”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
“…지금이라도 출발하지 않으면 같이 지각해 버릴걸.”
“…….”
“지각 싫어하잖아.”
“…….”
“내 말이 맞지?”
사실 그나마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건 눈앞에 있는 이 녀석 때문이 확실했다. 언제부터였지. 흐릿하게 떠오르는 어린 날의 기억은 더 선명해지지는 못 할망정 점점 조각조각 부스러져갔다. 왜 이렇게 기억이 들쭉날쭉한지 알 수 없었다.
“다시 물어볼래.”
“…….”
“…학교 안 가?”
“뱀파이어는 인간 학교 같은 거 안가.”
“또 그런다.”
“정말이야.”
“…….”
한껏 웃으면서 침대에 늘어졌다. 사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침대에 있는 편이 훨씬 나았다. 머리가 어지럽지도 않고, 눈이 부셔서 걸음을 멈추지 않아도 된다. 해가 너무 강하면 커튼을 내려버리면 그만이었고, 그것도 모자라면 이불을 뒤집어쓰면 캄캄한 어둠이 찾아왔다. 그럼 언제까지나 밤일뿐이었다. 그러면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면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만 들리곤 했다.
“…….”
물론 리츠의 친구란 녀석은 그런 꼴을 못 봐 했다. 그럴 때마다 괜히 되지도 않는 심술을 부렸다. 네 인생이냐. 이건 내 인생이다. 이런 소리부터 아예 입을 다물고 돌아 누워보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그 누구라도 포기할 법했다. 리츠도 그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몇 번이나 귀찮다고 말하곤 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절대 제 발로 걷지 않겠다는 친구를 쭉 끌어당겼다. 리츠. 정신 좀 차려봐. 곰 인형처럼 품 안에 푹 안겨든 친구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이 정도로 움직일 위인이 아니었다.
“리츠. 안자는 거 알아.”
“…….”
“학교 늦는다니까.”
“…….”
이쯤 되면 노골적인 심술이었다. 그냥 날 나 두고 먼저 학교 가. 지각하잖아. 마치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입속에서 웅얼웅얼 혼잣말했다. 그러면 마오의 눈썹이 쭉 올라갔다. 몇 번이나 손을 끌어당겼지만, 절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거 참.”
“…….”
“어쩐다.”
물론 리츠는 마오가 난감해하는 걸 모두 듣고 있었다. 애써 웃음을 참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물론 이렇게 밀고 당기던 와중에 깜박 잠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다 정신 차렸을 땐 눈앞엔 익숙한 머리카락이 보였다. 벌써 단풍이 들었다 보네. 이상한 일이야. 눈앞에 가을이 찾아왔잖아.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이상한 소리를 하던 녀석이 다시 고개를 푹 묻었다.
“…….”
“…….”
“…응?”
뭔가 이상했다.
“깼어?”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지금 학교 가는 중이잖아.”
“…….”
아까 단풍이라고 생각했던 건 마오의 머리카락이었구나. 리츠는 잠에 푹 빠진 채 눈만 느리게 깜박였다. 이런 식으로 데리고 나올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정도 했으면 그냥 내버려 두지. 이 말을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꿀꺽 삼켰다.
“…이상하네.”
“뭐가? 학교 다 와 가니까, 졸지 마.”
“너랑 같이 있으니까, 이상한 게 안 보이는 거 같아.”
“…그게 또 무슨 소리야. 너 요즘 이상한 소리가 부쩍 는 거 알고 있지? 응? 알고 있어?”
“뱀파이어는 인간이 볼 수 없는 걸 볼 수 있거든.”
“…또 그런 소리.”
이젠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었던 소리였다. 마오는 리츠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등에 업힌 녀석은 늘 그랬다. 처음에 어떻게 만났더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일 때 만난 녀석은 늘 똑같은 눈으로 같은 소리를 했다. 항상 그랬다. 리츠의 말은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때라고 한 번에 납득할 리 없었다.
‘뱀파이어는 무슨.’
하여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렸을 때야 믿을 만했지만,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지고 나니 괜한 투정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은. 솔직히 정말 그런가 보다 하는 상태까지 왔다. 이상할 정도로 해가 떠 있을 땐 정신을 못 차린다. 게다가 지금처럼 이상한 소리를 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괜히 마음이 답답했다.
차라리 마오에게도 리츠가 보는 모든 것이 보이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마오의 눈엔 착실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만 보일 뿐이었다. 소꿉친구가 말하는 단풍도, 다섯 번째 계절도 보이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이해하기보단 그대로 받아들여 주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급한 건 등교지.”
“…….”
“지각하지 않게 말이야.”
축 늘어진 채 다시 잠을 청하는 친구를 슬쩍 바라본 마오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절대 걸어갈 것 같지 않았다. 괜히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리츠가 하는 말이 자꾸 가슴에 쌓이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보통 때면 가볍게 넘겼을 단어였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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