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100분/사마조조] 상실, 승자와 패자. 모든 게 끝, 일 거라고 생각했다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43화 부근에 대한 중요 네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량 이지만 왕윤을 찾는 조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편까지 보지 않으신 분들께선 네타 주의해주세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조조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늘 비슷한 표정이 보이던 얼굴에선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티가 났다.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자 방 안에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비한테 지다니. 조조로선 생각도 하지 못한 충격이었다. 운이 좋아서 영웅 패를 많이 얻은 거라 취급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
황금 패를 얻은 것도 운이 좋다고 한다면, 이젠 그 운이 유비 녀석의 실력이라고 취급해야 했다. 화를 삭이지 못하고 책상에 있는 서류를 뒤엎었다. 늘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던 공간에 점점 분노가 쌓여갔다. 그 뒤에 서 있는 사마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군.”
“…….”
대답이 없다. 조조의 귀엔 사마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조조를 불렀다. 주군을 도와 드림배틀의 승리를 이끄는 신선은 무엇이든 도움이 되어야 했다.
“이기는 방법을 가져왔습니다.”
“뭐지?”
“직접 가보셔야 합니다.”
“어디로…말인가.”
“장각의 은신처입니다.”
“장각?”
“예.”
뜻하지 않은 불청객 같은 이름이 나온다. 조조는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장각이라 하면 몇 번이나 자신의 갈 길을 귀찮게 한 놈이 아니었던가. 아니 애초에 그 녀석의 은신처를 알고 있다는 것부터 지적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디서 그 정보를 얻었지.”
“신선에겐 무슨 짓을 해서든 주군을 도와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
“싫으십니까? 드림 배틀에서 이기는 것을 원하시는 것 같아서 특별히 가져왔습니다만…….”
“…….”
“원치 않으시면 은신처를 통째로 봉인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
“그럼.”
“잠깐.”
“예.”
명백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조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마의는 곧게 서서 조조가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둘 사이에선 그리 낯설지 않은 광경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는다 해도 이것보다 좋으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 아닌가.”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
사마의는 조조를 어느 정도 조종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아무리 드림배틀의 도구로 만들어진 신선이라고 하지만, 태어난 이상 허무하게 소멸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가장 강한 사람을 골랐고, 천천히 자신이 생각한 대로 내몰고 있었다. 몇 번이나 체질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했고, 그때마다 조조는 별다른 의심 없이 사마의의 의견을 따랐다.
“저번에…….”
“예, 주군.”
“신선과 인간이 가까워지는 것이 좋다고 한 것도 일종의 훈련인가.”
“예?”
“신선은 드림배틀에 참가하는 인간의 잠재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강한 신선을 찾는 이유도 이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난 널 믿는다. 사마의.”
“감사합니다. 주군.”
“나갈 준비를 하지. 유비 녀석을 이길 수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한다.”
“예.”
조조를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자존심에 금이 가거나, 주변에 악이 설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가슴 속에 묻어둔 트라우마를 건드리면 그만이었다. 사마의는 웃는 얼굴로 주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드림 배들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공을 들인 인간은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처음부터 조조를 기다렸다. 저 정도의 야망을 품은 사람이 아니라면 성에 차지 않았다.
“가자. 사마의.”
“예, 주군.”
사마의는 충실한 신선이었다. 다른 신선과 다르게 주군에게 충성하고 한걸음 뒤에서 보좌하는 것이 신선의 의무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곤 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몇몇은 제대로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선계에서 가장 강한 신선인 데다 가장 먼저 눈을 뜬 축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신선보다 아는 것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신선들 통솔하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걸 알기에 조조는 사마의를 선택했고, 신선계에 관한 정보는 꽤 믿고 있었다.
“주군 잠시.”
“뭐지?”
“아닙니다.”
“가자.”
“예.”
신선은 어느 정도 인간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통찰력이 있다면 응당 할 수 있지만, 사마의는 그런 쪽에 좀 더 능숙했고, 이걸 이용해 다른 군주를 탈락시키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조조의 마음은 깊이 감춰져 있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한번 깊은 상처가 난 곳은 제대로 아물지 않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예전과 같이 복구되진 않는다.
‘…이 정도론 위험해.’
사마의가 원하는 군주는 아무런 흠이 없어야 했다. 조조가 처음 영웅 패를 받아들 때까진 완벽했다. 마치 오랫동안 레전드 히어로로 변신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강했다. 제갈량이 유비에게 붙으면서 판도가 바뀌긴 했지만, 그렇게 위험하진 않으리라 판단했다. 사마의가 걱정한 것은 조조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상실이었다. 물론 그 이유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자신이 덮어줄 수 없다는 사실도 이해하고 있었다. 신선이기에 인간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도대체…그 인간을 왜 그렇게.’
이해할 수 없지만, 주군이 슬퍼한다면 모른 척 함께 어울려준다. 주군과 가깝게 닿아야 계획을 성공시킬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난다. 사마의의 목표는 처음부터 하나였고, 그걸 이룰 수 있다면 주군이 어떤 사람이라도 상관없었다. 지금 조조를 버리지 않는 것은 그저 자신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타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번쯤 흔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
“장각의 은신처를 발견한 것을 왜 보고하지 않았지?”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런 쪽에 저희 전력을 내보일 수 없으니까요.”
“그렇군.”
“이쪽입니다.”
장각의 은신처는 조용했다. 벌써 이곳을 떠난 것인지. 아니면 함정일 수도 있었다. 조조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사마의는 익숙하게 자신의 주군은 안쪽으로 안내했다. 장각이 늘 앉아서 세상을 바라봤을 깊숙한 장소까지 들어가고 나서야 조조는 입을 열었다.
“뭐냐? 장각이 남긴 방법이라는 것이?”
“…….”
사마의는 말없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붉은빛이 생기면서 수상한 기운이 풍기는 물체가 천천히 나타났다. 모양은 낯설지만 익숙한 기운이 풍겼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던 조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리곤 사마의를 쳐다보았다.
“다크 펜타곤?”
“…….”
“이미 없앴다고 보고를 들은 것 같은데.”
“그러려고 했지만…….”
“말해 보아라.”
“황금패의 힘을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차마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이 힘만이 유비가 가진 황금패를 저지할 수 있습니다.”
“…….”
조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사마의는 그런 주군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제야 조조의 약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약점을 쥐고 있는 것은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여포패를 그 쪽에게 넘기지 않았을 텐데. 사마의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사마의. 이건 사악한 힘이다.”
“그렇습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걸 가져온 것이냐.”
“주군. 황금패에 휘둘리는 유비를 보지 않으셨습니까. 사악한 힘과 정의로운 힘이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망설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알량한 양심과 상실감으로 가득한 마음이 어쩜 저렇게 여린지. 사마의는 뻔뻔하게 들러 붙어있는 왕윤의 흔적을 찾았다. 아니 조조가 억지로 붙들고 있다고 표현하는 쪽이 나을지 몰랐다. 드림배 틀에서 이기기 위해 뭐든 하겠다던 사람이 이런 힘 하나에 망설이다니. 사마의가 주군으로 삼은 자는 이런 망설임 따윈 없어야 했다.
“그 힘은 원래 조조 님에게 왔어야 합니다. 자격이 없는 유비가 아니라.”
“…….”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죠. 악을 멸하기 위해선 당신의 손에도 피가 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신 것 같습니다.”
“무엄하다 사마의!”
“전 주군이 어떤 힘이라도 정의를 위해 사용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마의!”
하후돈이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사마의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 말 한마디가 조조를 얼마나 흔들 수 있는지 가늠하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잠깐…….”
“예, 주군.”
“악을 멸하기 위해서라면…….”
“전 주군을 믿습니다.”
“…….”
다크 팬타곤에 천천히 손을 가져간다. 음산한 기운이 손가락을 타고 팔을 기어 올라왔다. 조금만 가까이 가도 이렇게 힘이 넘치는 것을 보니 욕심이 났다. 유비가 황금 패를 조종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정의로운 힘이라도 소용없었다. 그렇다면 정의가 악이 되는 상황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일 것이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은 이 힘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좋다. 널 믿어보겠다.”
“예, 주군.”
“조조 님…….”
영웅패의 목소리는 조조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조조는 다크 펜타곤을 들고 나갔고, 사마의는 그 뒤를 따랐다. 불안한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장각의 은신처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
“헉…….”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다크 펜타곤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사…마의.”
“예, 주군.”
“난 괜찮으니…아무도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막아라.”
“알겠습니다. 다만.”
“…….”
“도움을 드릴 순 있을 것 같습니다.”
“…….”
소리조차 지를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이 온몸에 퍼졌다. 이렇게 힘이 들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에 고통이 더욱 심했다. 자신의 집으로 올라가지도 않고 이 어두운 곳에 처박혀서 끙끙거리는 주군을 보던 사마의가 약간 불쌍한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다. 애초에 모든 것이 예정된 순서였다. 하지만 지금 죽으면 곤란하니 일단 도움을 주기로 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
“주군.”
소파에 담요 한 장을 덮고 웅크린 조조가 눈도 뜨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알량한 경찰의 정의가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쉽게 다크 펜타곤에 잠식되리라 생각했지만, 사마의의 예상보다 조조의 마음이 단단했다. 이미 상실감으로 뻥 뚫린 그것이 뭐 이리 대단할 일일까. 사마의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조조를 보고 있었다.
“잠시.”
“…….”
조조의 얼굴을 손으로 쓸면서 안심시켰다. 축축한 식은땀이 사마의의 손에 가득 묻어나왔다.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한 존재구나. 사마의는 꼭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처럼 조조를 안심시켰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살 수 있는 신선은 인간의 신체에 대해 무지했다.
“…….”
잔뜩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고 두 손으로 볼을 잡았다. 그리곤 입술을 천천히 겹치기 시작했다. 물론 놀란 쪽은 조조였지만, 거부하기엔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아파져 왔다. 으윽. 신음소리가 먹혀들어 갔다. 입술을 벌리고 혀로 치열을 쓸어본다. 그러다 살짝 입술을 뗀 채 안쓰러운 주군을 바라보았다.
“사마…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신선의 힘을 나누는 방법으론 이쪽이 가장 빠르기에.”
“…….”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사마의가 진득하게 입술을 물고 늘어질 때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억지로 벌린 입술을 벌리고 치열을 핥았다. 숨이 닳을 만큼 집요하게 파고들던 입술이 떨어지자 조조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꼭 잡아먹히는 기분이었다.
“…선배.”
“…….”
조조는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마의의 눈이 사납게 변했지만, 고통에 넋을 놓은 사람은 그런 것을 알아챌 수 없었다. 마지막 양심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이미 죽어버린 드림배틀 참가자라. 이쪽 고리를 끊어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아니. 지금은 드림 배틀이 아닌 순수한 질투심이었다. 사마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조조를 바라보았다.
“조금…편해지셨습니까.”
“……”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
“주군께서 그렇게 아끼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움직이지 마세요. 다크 펜타곤에 영향이 갑니다. 어차피 움직일 수도 없겠지만…….”
“…….”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고통이 묵직하게 올라왔지만, 꼭 마취한 것처럼 붕 뜬 기분이 들었다. 도술을 부리기 전에 좀 더 빨리 알아차려야 했는데. 조조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영웅 패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드림 배틀에는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합니다.”
“…….”
“그리고 저희 신선에게도 마찬가지죠. 저희는 생명을 걸고 주군을 보좌합니다. 그렇기에 강한 사람을 주군으로 삼아야만 그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주군에게 모습을 나타낸 것처럼 말입니다.”
“…….”
“그래서 왕윤에게 영웅패를 주었습니다.”
“사…마의. 너…….”
“그렇게 강한 여포패를 넘겨줬는데…이렇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선배를.”
“그 남자가 목숨을 잃은 것은 제 탓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드림배틀 탈락도 아니고 목숨을 바칠 줄이야. 드림배틀이 열리는동안 그런 케이스는 하나뿐이었습니다.”
“…….”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선배를 찾고, 선배의 유언을 어기면서까지 드림배틀에 참여한 이유가 무엇일까. 조조는 고통에 겨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어떻게든 움직이려 애썼다.
“인간의 생은 알 수가 없으니 신선에게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에게서 많은 확률을 봤지만, 주군만 못했습니다. 왕윤이 죽은 후 모든 게 끝 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
“결과적으론 그 일로 인해 주군을 모시게 되었습니다만, 따지자면 제가 그자에게 영웅 패를 준 것 또한 조조님을 위한 포석이라 생각합니다. 그자는 영웅 패를 일찍 얻었고, 주군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싸웠습니다.”
“…….”
“그래서 주군이 드림 배틀에 참가하시려 했을 때 놀랐답니다.”
“…….”
“거기선 전 또 다른 확률을 봤으니까요.”
“…….”
“다크 팬타곤을 흡수하는 동안 고통은 덜어드리겠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도 한번 앓고 다시면 완전히 잊어버리실 테니, 다크 펜타곤을 잘 사용하셔서 승리를 향해 나아가시길.”
“…….”
“신선 사마의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조조의 눈을 애써 마주치지 않았다. 마지막 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붙어있던 왕윤의 기억이 부스러지는 것을 보았다. 정의 대신 다크 펜타곤을 채운 조조는 사마의에게 더 의지할 것이고,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으리라. 미래가 보였기에 그저 사마의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