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제갈유비] 창공의 전기(蒼空之傳記) 022 [샘플 完]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유비와 제갈량 / 조조와 사마의 / 손책과 주유가 각각 궁의 주인과 신선으로 나옵니다.
제갈유비 연성으로 시작했지만, 둘이 만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동양 AU 및 설정 날조가 항상 함께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 긴 샘플 겸 선연재가 끝났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회지로 수록됩니다
샘플을 어디서 끊어야 할지 감이 안잡혀서 길어졌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write. 환월
봉황궁이 분주해진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누군가는 불안한 기운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은 쉽게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신속하게. 왕윤은 주위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부르려다 이내 혼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봉황궁에 내려앉은 불행의 그림자는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봉황궁에 있는 그 누구도 불안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쉽게 짐작하지 못했다.
무언가 짐작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예전 같으면 태오 장군이 나서서 할 일까지 직접 손대기 시작했다. 그 중엔 출전하는 것도 끼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태오였다. 태오는 자신이 가도 충분하다며 왕윤을 말렸지만, 별로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왕윤은 이번 아홉 고개에 나타난 놈들을 정리하고 국경을 돌아보고 온다는 말을 남기고 궁을 떠났다. 태오는 무척 따라가고 싶은 눈치였지만, 어린 초선을 궁에 홀로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한걸음 물러서면서 겨우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숙. 신수를 데려가시죠.’
‘나도 없는데 초선이를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제가 있지 않습니까. 혹여 무슨 일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허허. 녀석 참.’
‘혹시 모르니 제 말대로 해 주세요.’
“…….”
“제 공연한 기우라면 다행이겠지만, 요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사실 사숙이 이렇게 직접 나가실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꼭 가셔야 한다면 여포를 데려가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 알았다. 내가 널 이길 수 있나. 대신 초선이가 칭얼거리거든 네가 좀 잘 돌봐줘야겠다.’
‘물론입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
“예전엔 스승님 옷자락을 잡고 울던 어린아이였는데.”
“…그게 언제적 일이랍니까.”
“그냥 오늘 갑자기 보니 어른이 다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는구나.”
갑자기 툭 던진 말이 너무 무거웠다. 이런 말을 안 들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굉장히 새삼스러웠다. 태오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는 아직 멀었다면서 이제 갓 솜털을 벗은 병아리 같다고 늘 말하던 왕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먼 길을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불안한 생각이 들어도 감히 군주가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무사히 돌아오길 빌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왕윤이 아홉 고개로 떠났다. 갑자기 주인이 떠난 궁은 휑하니 비어서 유난히 더 커 보였다.
왕윤이 떠난 이후 대놓고 모든 사람을 의심하면서 초선이 생활하는 곳 앞을 지키는 남자는 한 사람만 보고 있었다. 신경 쓰는 것은 사마의 뿐이었다. 하지만 초선이 행여 큰일이라도 당한다면 더 큰 일이 생길 것이 분명하기에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많은 병력을 저 곳에 투입하지 않아도 태오가 붙어있는 것만으로 수백의 효과를 낸다. 물론 늘 함께 놀던 여포가 왕윤을 따라가서 실망한 눈치였다.
사마의의 생각대로다, 태오는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날이 새고 다시 밤이 찾아오는 동안 늘 초선 옆에 붙어있었다. 눈치가 빠른 사마의는 그것이 자신에 대한 불안함과 의심에서 시작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도발하지 않는다. 애초에 태오 장군이 마음먹고 자신을 물고 늘어진다면 귀찮아질 것이 뻔했다. 아무리 궁의 신선이라고 하지만 태오는 그것보다 한걸음 가까운 친족과 같은 사이였다. 물론 차라리 피라도 섞인 편이 나을지 몰랐다. 아무 인연도 아닌 남자가 이렇게까지 가까울 일인 것일까. 애초에 왕윤과 초선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남자이니 차라리 저렇게 얌전히 있어 주는 것이 더 편하다. 사마의는 당장 응룡궁을 무너뜨리고 싶을 뿐이지, 내부 인재를 솎아낼 생각은 없었다.
왕윤은 말을 꺼낸 날에 딱 맞춰서 환궁했다. 한걸음에 달려나간 태오는 군장을 하나하나 제 손으로 받아들면서 무사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랐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피곤한 기색은 역력했지만, 크게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물어보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으러 간다. 사마의에게 궁의 상황을 보고받기 위한 자리에서도 피곤함을 완전히 털진 못했다. 사마의는 준비해온 차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제가 응당 따라가야 할 일이었는데. 송구합니다. 큰일은 없으셨습니까.”
“사마의 자네도 고생이 많았네. 아, 그러고 보니 응룡 군주를 만났지.”
“…예?”
“이쪽에서 내가 혼자 처리할 생각으로 굳이 알리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애초에 우리가 관리해야 할 땅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 먼 길을 도와주러 왔다고 하지 않겠나. 정말 대단하지.”
“…….”
“물론 제갈량이 한소리 했다면서 웃더군. 그쪽 신선도 꽤나 골치를 썩이게 생겼어. 그래서 수월히 끝내고 돌아왔네.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하나보단 둘이 낫더라니.”
“…응룡 군주가 어째서.”
“늘 정의롭고 남 돕기 좋아하지 않나. 이번에도 그런가 보지.”
“…….”
“…태오에게도 저런 사람이 하나 있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느꼈네. 그 녀석 다 큰 것 같지만 속은 아직 어린애라서.”
“군주께서 무사히 돌아오신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응룡궁도 저 정도로 회복이 된 것을 보니 이제 우리 쪽에 과하게 부과되면 부담도 많이 줄어들 거야. 조만간 한번 더 만나기로 했으니. 이참에 세 군주가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봐도 좋겠지.”
“너무 사람을 좋게만 보진 마십시오. 그쪽도 나름대로 무슨 수를 내려고 할 테니 말입니다.”
“…아냐. 그 눈을 보면 알지.”
“…….”
왕윤의 말에 사마의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하긴 무사히 돌아왔으면 되는 일이었다. 궁을 떠나있었던 만큼 보고받을 것도 많았다. 그 이야기는 저녁 식사 전까지 이어졌다. 여독을 푸시라며 사마의가 만류했지만 들을 왕윤이 아니었다. 이럴 땐 꼭 군주의 조건 중 고집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유비가 어떻게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왕윤은 그것까진 사마의에게 말하지 않았다.
“…사마의.”
“예. 태오 장군.”
“사숙은 별일 없으신가.”
“이렇게 걱정하실 줄 알았다면 같이 들어갈 것을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
대놓고 태오를 놀리는 말투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태오는 오만한 신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마의는 그 이상 시비를 걸지 않았다. 다만 지나치려 하다 다시 말을 붙일 뿐이었다. 태오로서는 왕윤이 해줄 리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창구가 한정되어 있기에, 사마의의 말을 모두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힘이 있다면.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맞다.”
“뭐지?”
“주군께서 아홉 고개에서 응룡궁 군주를 만났다고 하시더군요,”
“유비?”
“예. 이젠 좀 살 만하신가 본지 굳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그곳에 나타나서 함께 아홉 고개 마수를 퇴치하셨다고 하셨습니다.”
“…….”
“두 분이 아홉 고개에서 독대하신 것 같은데, 자세한 일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니 저도 알 길이 없습니다.”
“뭐지.”
“저도 응룡궁의 의중을 모르겠습니다. 제갈량이 그런 곳에 주군을 보낼만한 성격이 아닌데…….”
“…….”
“아마 미리 이야기가 된 수가 아닐까 합니다.”
“…….”
“이젠 이쪽도 견제하려는 것이겠죠.”
태오의 표정이 구겨진다. 견제라니. 도통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다 무너져가던 응룡궁을 대신해 밤낮으로 움직이던 곳은 이쪽이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저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물론 사마의는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그저 진실을 아주 살짝 비틀어서 전했을 뿐이었다. 물론 이런 태도가 주변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은연중 그런 것을 바라는 사마의는 굳이 태오의 오해를 바로잡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왕윤은 더 바빠졌고, 유비와도 자주 만났다. 제갈량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유비는 둘이서 만나려고 일부러 신선을 놔두고 왔다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아마 서로 불편해할까 봐 그런 것이겠지만, 왕윤은 그저 웃고 말았다. 유비와 왕윤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 만큼 태오의 머릿속엔 오해가 쌓여갔다.
하지만 감히 왕윤에게 다른 군주를 만나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벙어리가 냉가슴을 앓듯. 태오는 뜻 없는 오해로 내내 속을 앓았다.
**
“…….”
늘 바쁘던 왕윤의 행보가 어느 순간 뚝 멎었다.
몇몇은 드디어 만족하신 모양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실제로 왕윤은 무관 출신이기에 안에서 서류를 보는 것보다 바깥에서 움직이는 쪽을 더 좋아했다. 그렇다고 해서 궁의 살림을 제대로 꾸리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왕윤의 행보가 그렇게 특출난 것도 아니기에 별다른 일 없이 언제나 그런 날이 지나고 다시 새로운 해가 돋아났다.
“사마의를 불러라.”
“예, 군주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너 혼자 조용히 가서 신선을 불러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래. 어서.”
작은 시동이 급하게 뛰어간다. 왕윤은 한숨을 쉬면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마의는 꼭 이런 연락이 올 것처럼 책상에 앉아있었다. 급한 목소리가 들리자 약간 뜸을 들인 후 밖으로 나갔다. 급히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어린 시동이 고개를 푹 숙인다. 궁의 신선은 놀란 기색조차 없이 뒤를 따랐다.
“무슨 일이라고 말하진 않으셨는가.”
“예. 그저 사마의님을 모셔오라고.”
“…….”
“전 잘 모릅니다.”
“그래. 알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극비에 붙여진 일이라 왕윤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태오 장군조차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마의는 아이의 급한 걸음을 따라 자신도 조금 서둘렀다. 급하게 왕윤의 침실로 달려온 사마의는 놀라서 그 자리에 우뚝 설 수밖에 없었다. 침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왕윤은 어두운 밤기운에 푹 잠긴 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주군?”
“소리 내지 말고 들어와라. 사마의.”
“예.”
“…….”
“어찌 불조차 켜지 않으셨습니까. 아니지. 지금쯤이면 침소에 드셨어야 하는 것을…….”
“…….”
“주군?”
“사마의.”
“예.”
“지금부터 보는 모든 것을 입 밖으로 낼 시 아무리 봉황궁의 신선이라 하더라도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내 말 알아들었는가.”
“예. 주군.”
“…….”
“무슨 일이신지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도통 이런 일이 없던 터라 소신을 그저…….”
“…….”
“명을 받들겠습니다.”
왕윤은 대답하지 않는다. 신선은 그 의미가 무엇인가 쉽게 알아차린. 군주가 손짓하자 사마의가 가까이 다가온다. 사마의는 조심스럽게 촛대에 불을 붙인다. 일렁이는 불꽃이 간신히 어둠을 밀어낸다. 그러자 희미한 불빛 아래 이곳저곳에 나타난 검붉은 반점이 보인다. 이미 팔까지 보일 정도면 심각한 상황이었다. 사마의는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주군 이건.”
“짐새의 독이군.”
“…….”
“내가 왜 이걸 몰랐을까. 이 상태가 될 때까지.”
“…….”
“응?”
“그거야…….”
“사마의. 난 지금 자네에게 묻고 있지 않은가.”
“…….”
왕윤의 목소리는 점점 서릿발처럼 변한다.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소리를 치지 않았다. 타고난 군주의 권위는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도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사마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태도를 보아하니 오히려 어설프게 변명하는 것은 제 목을 죄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짐작이 가는군.”
“…….”
“안 그런가. 사마의.”
“무슨 말을 하시는지.”
“…….”
“이 신선은 모르겠습니다.”
“…….”
애초에 대답할 사람도, 그렇다고 질문을 할 사람도 없는 만남이었다. 그저 서로 짐작한 것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왕윤은 이제 나가보라는 듯 손짓을 한다. 사마의는 두말없이 그 명령을 따랐다. 나눈 대화는 얼마 없었지만, 둘 사이에 무슨 생각이 오갔는지는 확실해졌다.
**
“정말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미안해 제갈량. 하지만 지금까지 받은 은혜는 갚아야 하잖아.”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자꾸 벌컥벌컥 뛰어나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
“제가 제발 걱정 좀 덜하게 해주세요. 신선 말라죽길 바라시는 걸 아니실 테죠?”
“잘…돌아왔으면 됐지 뭐.”
당당한 모습과는 다르게 목소리는 자꾸 기어들어 간다. 하긴 제갈량이 펄펄 뛰는 것도 이해가 간다. 갑자기 어디서 기운을 읽었는지 왕윤님을 도우러 가야 한다는 소리를 했다. 신선은 반대했지만, 주군의 고집을 도통 꺾을 수 없었다. 기운을 계속 속으로 품고 있으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으니 적절하게 풀어주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니었다.
유비의 고집을 꺾지 못한 제갈량은 몇 번이나 부탁했다. 몸을 보하는 술을 몇 번이다 다시 걸었다. 하지만 혹시 모를 폭주에 대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왕윤의 힘에 기대기로 했다. 어차피 어느 정도 군주끼리 힘의 상쇄하면서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바. 혹여 유비가 그 자리에서 폭주한다면 충분히 왕윤이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유비가 떠나고 제갈량도 홀연히 궁을 비웠다. 군주와 신선이 동시에 자리를 비운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자리를 비웠던 신선은 유비가 돌아오기 며칠 전 모습을 드러냈다.
“과하게 힘을 쓰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거기서 어떻게 그래.”
“지금 힘을 버티지 못하고 피부가 갈라지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으십니까. 충분히 무리하고 계시는 것이 맞습니다.”
“…….”
“이쪽은 어쩔 수 없겠네요.”
“응?”
유비의 손에 천으로 치료를 하던 제갈량이 한숨을 푹 내쉰다. 머리에 내려앉은 녹색의 머리카락이 한숨을 읽는 컷처럼 흔들렸다. 주군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기만 한다. 이렇게 다친 것도 가슴이 떨어지는데, 왜 자꾸 험한 곳으로 가려고 하는지.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반대할 순 없었다. 군주가 가는 길이 곧 신선의 일생이었다.
“제가 제 명에 사려면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똑똑해야겠습니다.”
“제갈량은 지금도 똑똑한데…….”
“가만히 계세요. 상처가 덧날 수도 있으니까요.”
“…….”
손의 상처는 어쩔 수 없었다. 힘을 사용하면서 견디지 못한 것이 화근이니 이쪽은 신선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제갈량이 단정한 얼굴로 주군을 바라본다. 이럴 때마다 자꾸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유비는 괜히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서 손끝을 꼼지락거린다. 애초에 이다음 행동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더 부끄러웠다.
“…….”
“제갈량…….”
늘 그랬던 것처럼 눈가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제갈량은 꼭 얼굴에 난 상처를 먼저 수습하려고 한다. 눈가에 따뜻한 입술이 닿자 눈꺼풀이 저절로 파르르 떨린다. 처음엔 유비가 놀란 것 같으면 물러서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해지라고 하는 것처럼 천천히 진득하게 붙어왔다. 눈가에서 시작한 접촉이 콧대를 따라 입술로 이어진다.
“으응.”
“보채지 마세요.”
“…….”
“…유비 님.”
제갈량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심장이 쿵쿵 뛰다가 죽은 듯 조용해진다. 제갈량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새겨지기 시작한다. 신선은 피가 흐르지 않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수였다. 유비는 자신의 상처를 눈으로 보고 나서야 아주 약간 반성을 한다.
“이 정도면 되었습니다.”
“제갈량…….”
“화려하게 몸을 쓰셨군요. 응룡의 힘에 직접 닿은 부분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아냐. 괜찮아. 사실…….”
“예?”
“사실 이렇게까지 제갈량이 힘써주지 않아도 되는데…….”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겠죠.”
“…….”
제갈량은 늘 의미를 알 듯 말 듯 한 소리를 한다. 유비는 괜히 입술을 꾹꾹 누르면서 얼굴만 붉힌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서 지켜보는 제갈량은 나름 흥미로운 눈길을 보냈다. 제갈량의 말엔 수많은 감정이 함축되어있다. 하지만 유비는 그런 복잡한 감정을 하나하나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서 늘 한걸음 늦게 의미를 알아차리곤 했다.
“그저 주군이 편하셨으면 합니다.”
“그래도. 그러면 네가 힘들잖아.”
“절 뭐로 보시나요. 전 선계 최고의 신선입니다. 이정도야 금방 낫겠죠.”
“…미안.”
“아닙니다. 제가 농담이 심했습니다. 굳이 주군께 사과를 받으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
제갈량이 유비 앞에서만 이렇게 말이 많아진다는 것을 이젠 알아차릴 때도 되었다. 하지만 유비는 이런 쪽으로 약간 느렸고, 제갈량은 지나치게 빨랐다. 삐걱거리면서도 어떻게 굴러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긴 했다. 제갈량의 얼굴에 이리저리 상처가 수북하게 얹혔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유비는 손으로 제갈량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면 신선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그 손길을 얌전히 받았다.
“신선은…힘든 거구나.”
“아닙니다.”
“그래도 제갈량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저도 유비 님이 계셔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
그 순간 제갈량의 입술에 뭔가 툭 닿았다가 떨어진다. 제갈량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기도 전에 화드득 물러선 얼굴은 또 잔뜩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제갈량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굴면서도 이런 쪽으론 면역이 없었다.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애써 무시한다.
“매일 고생하니까…….”
“…….”
“제갈량도 매일 하잖아. 뭐…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응?”
“조금…놀라니까 다음부턴 말씀을 좀…….”
“제갈량 얼굴 그렇게 된 거 처음 본다.”
“…….”
이젠 더는 같은 이유로 유비를 놀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화의 주제를 바꿔보기로 했다. 제갈량은 소매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낸다. 그러더니 침상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유비는 갑자기 제갈량이 내민 선물에 눈만 깜박거렸다.
“인간계에 놔두고 온 마초를 찾아왔습니다.”
“마초!”
“주군께서 출타하신 김에 다녀온 것이니 멋대로 궁을 비웠다고 혼내진 마시지요.”
“어떻게…알았어? 마초가 있는 곳.”
“주군에 대해 제가 모르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적당히 짐작했을 뿐입니다.”
“…….”
“인간계에서 각성하지 못하고 계실 때 머무시던 곳에 있더군요. 다행히 아직 깨어나지 못해서 아무 일 없이 들고 올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거기다 두고 올 생각을 하시다니. 정말…….”
“…….”
“정말 신의 한 수를 두신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잊어버리신 것인지 알고 싶네요. 지금 여쭈어봐도 완벽한 대답은 되지 않겠지만요.”
천천히 살아나는 마초를 보는 유비의 표정이 한층 밝아진다. 하긴 유비도 많은 일을 겪어서 마초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갈량은 이러나저러나 유비가 웃는 편이 좋았다. 늘 행복하게 웃어야 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싶진 않았다.
“오늘은 약을 드셔야 합니다.”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전 할 일이 있어서 먼저.”
“…….”
“손이 회복되는 동안은 힘을 쓰진 마세요. 지금이야 버텼지만, 어떻게 죌지 모르니까요. 차라리 그 시간에 무술 연습을 하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저녁에 같이 밥 먹을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녀와. 제갈량!”
금방 기분이 좋아진 채 제갈량을 배웅한다. 사실 제갈량은 딱히 유비와 떨어지고 싶진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의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제갈량은 확실한 것을 좋아하고 흐릿한 미래를 원치 않는다. 그러기에 유비와 함께 있을 때 흔들리는 감정이 두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두려워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신선과 군주는 태어난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혼란한 머리를 정리하며 오늘은 밀린 문서를 정리하기로 한다.
첫사랑을 앓는 신선은 예전보다 조금 들떠있었다. 이런 감정을 옥새가 만들지 않았을 텐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제갈량은 가볍게 웃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온몸에 들어앉은 상처가 쓰리고 아팠다. 그래도 유비가 앓아눕는 것보단 이쪽이 훨씬 나았다. 물론 신선이 꼭 이런 식으로 주군의 상처를 옮겨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유비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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