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히삼/제갈유비] 창공의 전기(蒼空之傳記) 020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유비와 제갈량 / 조조와 사마의 / 손책과 주유가 각각 궁의 주인과 신선으로 나옵니다.
제갈유비 연성으로 시작했지만, 둘이 만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동양 AU 및 설정 날조가 항상 함께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제갈량.”
“…….”
“제갈랴앙.”
“…….”
“제…….”
“예. 왜 그러십니까. 주군.”
“어디 간 줄 알았네.”
“제가 여기 말고 다닐 곳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
“깨셨으면 일어나세요. 오늘부터는 조금씩 기운을 다스리는 법을 찾아볼 생각이니까요.”
“…….”
제갈량은 다시 냉랭한 표정으로 유비를 내려다본다. 어젯밤이 꼭 꿈같아서 유비는 마냥 눈만 깜박거렸다. 분명 어제는 안아도 주고 노래도 불러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꿈인 듯싶었다. 그럼 그렇지. 유비는 묘하게 이해가 빨랐다. 씩씩하게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이러나저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처박혀 있는 것은 유비 성격에 맞지 않았다. 잘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노력을 하는 편이 나았다.
“으악!”
“주군!”
“아…야.”
“세상에.”
“아직 몸이 안 익숙해서. 그러니까…….”
겨우 허리에나 올 것 같은 아이가 침대에서 와장창 굴러떨어진 채 바닥에 엎어져 있다. 무릎에 빨간 자국을 하나씩 단 채 울먹거리는 표정을 보니 어쩔 수 없이 입꼬리가 풀려버린다. 군주가 사용하는 침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어른에게 맞춰진 공간이었고, 유비는 아직 채 자리지 못했다.
“아파.”
“피는 안 나셨네요.”
“아프다니까.”
“네. 그래 보이십니다.”
“…….”
“일어나세요. 주군.”
“…….”
당연한 말인데 왜 이렇게 서러운지 알 수 없었다. 군주란 늘 다른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야 했고, 당당해야 한다. 게다가 그저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일로 쉽게 눈물을 보일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늘 세상이 이론적으로 돌아간다면 좋을 것 같았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주군이시군요.”
“…….”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제갈량이 손을 내민다. 작은 주군은 그 손을 보고 냉큼 팔을 벌린다. 아이는 어른이 안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똑똑한 신선은 제 손으로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이론은 머릿속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러니 이렇게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겠지. 물론 자연스럽다는 것이 꼭 아이를 편하게 해준다는 것은 아니었다.
“…헤.”
“그렇게 웃지 마세요.”
“제갈량이 안아주니까 좋다.”
“…….”
“정말이야.”
말이라도 못하면 한마디 할 텐데. 제갈량은 누구보다 엄하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유난히 주군에겐 약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물론 그런 모습을 아는 사람은 유비 뿐이었다. 게다가 유비가 아무리 제갈량이 상냥하다고 말을 해도 다들 믿지 않으니 평판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제가 너무 물러진 것 같군요.”
“늘 항상 같은 제갈량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맞아.”
“아니에요.”
“맞다니까.”
“…….”
“내 말이 맞지?”
“네. 주군.”
유비의 고집을 꺾을 방법은 딱히 없었다. 말싸움을 하면 논리로는 제갈량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다른 쪽으론 유비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땐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나았다. 주군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면 늘 먼저 입을 다물곤 한다. 그걸 제일 잘 알고 있었기에 제갈량은 그저 걷기만 했다. 아이 보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이런저런 일이 있고 나서야 신선이 왜 완벽하게 만들어진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는지 알 것 같았다.
“옥새가.”
“응?”
“옥새가 왜 신선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는지 알 것 같군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가장 편한 방법을 찾았다는 소리죠.”
“…….”
“그냥 혼잣말입니다.”
“역시 제갈량은 똑똑하구나.”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제갈량은 말을 삼킨다. 아무리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해도 아이의 몸은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곱게 안아다가 아침을 같이 먹는다. 그리고 다시 손을 잡고 옷을 갈아입으러 간다. 그런 다음 약을 들고 들어가고, 도술로 기를 보하고. 할 일은 많기만 했다. 딱히 차도가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포기 할 수도 없었다.
유비의 등을 따라 빼곡하게 새겨진 글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갔다. 처음은 한 줄이었고 그다음은 두 줄이었다. 연약한 몸이 힘을 버티지 못할 때마다 제갈량은 기꺼이 그 부담을 나누어 받았다. 궁을 지키던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였다. 자신의 힘을 쭉쭉 빨아가는 응룡을 흐린 눈으로 바라본다.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부담조차 신선이 당연히 짊어져야 할 의무였다. 신선이 된 몸으로 주군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
제갈량은 늘 유비의 몸을 걱정했다.
게다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몸은 도통 자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주군의 혼이 잘못 정착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식으로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보낼 리 없었다. 군주의 힘은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몸을 수복해서 자신과 가장 잘 맞게 만든다. 당연한 일이었고, 이제껏 그러지 않은 군주는 없었다.
성장통이라고도 불릴 만큼 아프기도 하다. 며칠 동안 앓아눕는 일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평온해도 너무 평온했다. 물론 당장 이 몸을 부수고 뛰쳐나오려는 응룡의 힘을 누르는 것은 힘들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몸은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
“…….”
그렇게 제갈량의 걱정이 길어질 무렵이었다. 꼭 물이 끓는 것을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계속 지켜보면 도통 물이 끓지 않는다. 지금도 꼭 그랬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다릴 때는 단 한 번의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위험한 일이 많았다. 제갈량이 몇 번이나 놀라 달려오는 일도 잦았다. 그런 일이 한번. 두 번. 서서히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 눈을 떼면 화르르 끓어 넘치는 물과 같았다. 사실 유비의 몸은 때를 기다리면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제갈량이 아주 약간 지친 채 눈의 피로함을 풀고 있을 때, 유비가 급하게 자신을 불렀다. 애초에 유비에게 걸어둔 도술이 시끄럽게 경고를 울려댔기에 제갈량은 목소리보다 그것을 먼저 들었다.
안 좋은 생각이 온몸에 돋아났다. 이러면 안 되지만 지금까지 너무 답답한 일이 많았다. 애써 부정하며 급히 처소로 찾아간다. 주군. 제갈량입니다. 그리고 기다릴 새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서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신선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존재라고 하지만, 아쉽게도 어둠에서 쉽게 움직일 정도로 눈이 밝진 않았다. 제갈량은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눈을 깜박인다. 하필 창가로 희미하게 흘러들어오는 별빛조차 먹물에 녹아내린 것 같은 밤이었다.
“주군. 제갈량입니다.”
“…….”
“침상에 계신 것 알고 있습니다.”
“…어. 제갈량.”
“…….”
목소리가 약간 달라졌다. 아이 특유의 높고 맑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약간 낮고. 탄탄하고. 제갈량은 눈을 살짝 찌푸린다. 그 순간 구름에 푹 파묻혀있던 달이 조금씩 나타난다.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온 달빛이 침소 안에 가득 찬 어둠을 몰아낸다.
“제갈량. 왔어?”
“…….”
“그러니까.”
“…….”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제갈량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다.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행동을 하기도 전에 절로 몸이 먼저 움직인다. 꿈에도 그리던 모습이 있었다. 끝일 줄 모르고 헤어지던 그 얼굴. 그 모습.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꼭 같은 모습으로 다시 제갈량 앞에 나타났다.
“설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역시 제갈량은 그럴 줄 알았어.”
“…….”
“제갈량 왜 그래? 혹시 나 잘못된 거야?”
“…….”
“응? 왜 그래.”
“…….”
“제…갈량?”
“아닙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지금 감정을 드러내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떨리는 손끝을 감출 수 없어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겨우 마음에서 내려놓을 수 있던 일이 다시 살아 올라온다.
“내가 또 잘못한 건가 싶어서.”
“그렇지 않습니다.”
“…….”
“입으실 옷을 먼저 준비하겠습니다.”
“…….”
“잠시만…….”
“으응.”
유비는 고개를 끄덕인다. 미묘하게 낮아진 목소리가 제갈량의 귀를 파고든다. 인간계로 가기 전에도 이랬다. 금방 돌아올 것처럼 말한다. 내 신선인 제갈량을 두고 어딜 갈 수 있을까. 이러고 웃었다. 제갈량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쉬운 여행이 이리도 오래 걸릴 일인가 싶었다.
제갈량은 궤를 열어서 옷을 꺼낸다. 유비가 아이의 몸으로 돌아온 이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곳이었다. 애초에 맞을만한 옷이 아니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금박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옷과 패물. 허리띠. 갑옷. 하나하나 손질해서 넣어둔 의복이었다. 언젠가 주군이 돌아오면 이렇게 하리라. 제갈량이 차마 마지막까지 미련을 놓지 못했던 소원이었다.
“…….”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제갈량은 하염없이 앉아서 옷을 바라본다. 부드러운 비단이 손에 감기면서 흘러내린다. 아직도 꿈만 같았다. 이런 꿈을 여러 번 꿨었다. 신선은 굳이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명상에 가까운 휴식을 취하긴 해야 했다. 제갈량은 궁을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지탱하고 있었기에 더했다.
그럴 때마다 가장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흐릿한 꿈에서 깨면 늘 자책하곤 했다. 아직도 정신이 곧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두려웠다. 이렇게 의복을 들고 다시 처소로 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나. 주군이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이라면 이 옷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제갈량은 똑똑하고 총명했지만, 이런 쪽에선 조금 늦었다. 제갈량. 먼 곳에서 새가 우는 것처럼 유비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걱정에 폭 싸여있던 몸이 움직인다.
“…….”
“왜 이렇게 늦어.”
“주군…….”
“울었어?”
“예? 제가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
제갈량은 유난히 말을 아낀다. 금방이라고 사라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다행히 이번은 꿈이 아닌 모양이었다. 주군을 다시 마주하니 이제야 안심이 된다. 굳어버린 줄 알았던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유비는 급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제갈량이 단호하게 막아섰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주군은 몸이 먼저 움직이곤 했다.
“괜찮아. 이제 멀쩡하다니까.”
“…….”
“이것봐.”
“…….”
손을 감싸면서 푸른 기운이 흘러나온다. 제갈량은 더는 입을 열 수 없었다. 군주의 힘이란 제대로 사용한다면 신선도 막을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한 발짝 물러섰다. 이제야 그렇게 기다리던 주군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건지. 아마. 또 한 번 사라질까 봐. 그것이 불안한 것이라 믿기로 했다. 가져온 옷을 침대 위에 올린 채 가만히 유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늘 옷매무새 마무리하는 것을 버거워하셨지 않습니까. 원래는 시비를 들여야 하지만.”
“…….”
“아직 궁이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괜히 부끄러워한다. 사실 이런 일을 돕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뭐 어려운 일이 있다고 도울 일을 거절하겠는가.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제갈량보다 유비가 더 어색해한다. 이유를 알아도 좋고 몰라도 상관없었다. 일단 저 상태로 주군을 그대로 놔둘 수 없었다. 제갈량은 어떤 식으로 말해야 잠시 고민을 한다. 유비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말해야 했다.
“등에…….”
“응?”
“등에 제가 걸어둔 도술을 확인해봐야 합니다.”
“…….”
“빨리 정리하시고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그야…그건 좋은데.”
“오호 대장군도 주군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일단 옷부터.”
제갈량은 자연스럽게 옷을 든다. 가장 안쪽에 입는 옷부터 하나하나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유비는 이미 상의보다 짧아진 옷을 바라본다. 용케 찢어지진 않았지만, 도저히 이 상태로 세상모르고 잠을 잤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낑낑거리며 옷을 벗는 내내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풀이 죽는다. 생각보다 얌전하게 옷을 받아 입는 주군을 바라보는 제갈량의 표정도 묘했다.
“…잠시만.”
“…….”
“다행히 도술이 깨진 것은 아닙니다만……. 한 번 더 보강할 필요는 있겠군요.”
“아직도?”
“조금이라도 주군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면 해두는 편이 낫겠죠.”
“지금 몸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보약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이 도술로 인해 좀 더 효율적으로 힘을 운용할 수 있으니까요.”
“…응.”
“이번엔 몸이 제대로 힘을 흡수하는 모양입니다.”
“왜?”
아. 유비는 그제야 몸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힘을 흡수한다고 해도 근본은 인간의 몸이었다. 그러니 둑에서 물이 새는 것처럼 영 부실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을 막기 위해 응룡의 힘이 자체적으로 몸을 수리하는 중이었다. 군데군데 비늘이 돋아난다. 단단하고 매끈한 녹색 비늘은 꼭 갑옷처럼 몸을 보호한다.
“이건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아.”
“그럴 수도 있죠.”
“이렇게라도 몸을 지탱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주군이 다시 돌아오신 것이 가장 다행인 일입니다.”
“…….”
“그런 표정을 하시면 전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이 신선 제갈량. 정말 주군을 기다렸습니다.”
“…….”
“거짓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아니. 그럴 리가! 그냥…….”
“…….”
“미안해서…….”
다시 말하지만, 주군은 참 미안할 일이 많았다. 저 정도 지위가 되는 이라면 어지간한 것에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잘못된 것은 아랫사람의 몫. 군주란 위에서 군림하면 되는 존재였다. 물론 그러지 못하니 유비님답다고 해야 할까. 성군이 되려면 모든 일에 이런 식으로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걸까. 제갈량을 포함한 모든 신선은 성군의 조건에 대해 배운 적은 있지만, 실전에서 만난 적은 없었기에 그저 이론상으로 구분한다.
“이 옷도 정말 오랜만이네.”
“…주군.”
“어. 어어. 왜 그래.”
“…….”
“제갈량?”
제갈량은 유비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곤 한참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유비는 유비대로 당황한다. 소매를 움직일 때마다 장신구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신선 제갈량. 주군을 뵙습니다.”
“…….”
“정말 돌아오셨군요.”
“나…있지.”
“…….”
“제갈량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해야 할 말도 많고. 듣고 싶은 것도 있고.”
“천천히 모두 듣고 말하겠습니다.”
“응!”
“차를 준비해야 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제갈량은 훌쩍 걸어 나간다. 유비는 이제야 익숙한 자신의 공간을 돌아본다. 어린 몸으로 생활하기엔 지나치게 커 보이던 곳은 사실 제 몸으로 돌아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새삼 이렇게 궁이 큰 곳인가 했다. 긴 옷을 이끌려 바깥으로 나오자 환한 햇살이 그대로 발밑에 떨어진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던 공간이었다. 천천히 돌아오는 과거의 기억이 시선과 얽혀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아.”
잠깐 두통이 밀려온다. 도대체 무슨 기억이 각인처럼 남아서 이렇게 몸이 아픈지. 유비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바람을 느낀다. 소맷자락이 펄럭이자 신수들이 그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래도 아예 힘을 제어하지 못하던 어린아이 몸보다는 훨씬 나았는지, 신수도 움직임이 활발했다.
“주군.”
“…응!”
“차가 준비되었습니다.”
“알았어. 갈게!”
휙 돌아선다. 길게 늘어지는 옷자락이 따뜻하게 쏟아지는 햇살을 붙잡았다. 해야 할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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