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05
+) NOTICE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벜른 전력인 새끼손가락 파트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읽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전력 분량을 붙여넣습니다
센티넬버스 au입니다 예민하신 분은 피해주세요
속으로 곪아가는 캡틴이랑 기억 조각을 찾는 버키가 나옵니다 취향탈 수 있어요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서로 입술을 맞대고 있을 땐 몰랐다. 그저 감정이 벅차오르고 눈앞 상황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입술을 잡아먹었다. 하지만 막상 떨어지고 나니 민망하기만 했다. 너무 부끄러워서 서로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솟아오른 감정은 다스릴 수 있었지만, 애틋함은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러내렸다. 얼마 만에 얼굴을 보고 살을 맞대는 걸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간신히 진정했던 얼굴에서 또 열이 올랐다.
음. 흠. 흠. 괜히 헛기침하며 서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슬금슬금 돌아온 시선이 또 한 번 마주 닿았다. 어제보다 좀 더 따뜻해지고 촉촉한 시선이 느껴지자마자 이번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게 웃을 수 없으니 입꼬리만 비죽였다.
“버키.”
“왜?”
“…꿈만 같아.”
“이런 일로 그런 걸 느끼면 어떡해.”
“…….”
“넌 꿈속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잖아.”
“버키…그건.”
“나도 이런 건 알아.”
이러면서 고개를 숙인다. 살짝 웃는다. 많이 상한 얼굴이지만 스티브는 충분히 예전 버키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를 하는 것조차 부담이 될 것 같아 그냥 그렇게 지켜보기만 했다. 물론 예전처럼 눈치가 빠르고 다정다감한 녀석은 금방 알아차리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스티브는 그건 조금 다행이라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스스로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그렇게 버키 앞에 서 있었다.
“난…그게.”
“어쩐지 오늘은 머리가 좀 맑은 것 같아서. 꽤 많은 생각을 했어.”
“…….”
“내가 모르는 사이 많은 일이 있었나 봐. 그렇지?”
“…….”
정말 버키가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잠깐 나타나는 모습인지 도대체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버키와 버키를. 그리고 버키를 차별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스티브가 버키와 할 수 있는 대화는 과거의 일 뿐이었다. 현재의 일은 이야기하긴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많았고, 그 전 기억은 끔찍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쏠리는 구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중이지만 둘이 함께 있었던 시절. 그보다 더 어린 소년이 나오는 이야기. 스티브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낡고 낡은 기억은 버키에게 닿지 못해 그저 버둥거릴 뿐이었다.
“많은 일이 있었구나.”
“…….”
“네 표정을 보면 다 알겠어. 스티브.”
“…….”
“넌 언제나 그래.”
또렷하게 대화가 되는 걸 보니 정말 오늘은 상태가 좋은지도 몰랐다. 이렇게 똑똑한 발음으로 대화하며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루마니아에선 어땠지. 스티브의 눈가가 살살 떨렸다. 불안한 눈을 모자에 감추고 이리저리 도망칠 곳을 찾았다. 물어보는 대답은 모두 모른다고 할 뿐이었다. 이 정도면 됐어. 스티브는 많은 욕심을 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낼 수 없었다.
“얼굴 또 빨갛게 변했네.”
“아냐. 그런 거.”
“캡틴 아메리카도 이런 일은 아직 숙맥인가 봐?”
“버키!”
“농담이야.”
정말 버키가 돌아온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입술을 맞대고 뺨을 쓸어보고 싶었는데, 어쩐지 지금은 좀 부끄러워서 그만두기로 했다.
바짝 달아오른 감각은 제법 쓸 만했다.
버키가 진정하길 바란다는 이유 겸 조금 부족한 느낌에 여기저기 쪽쪽 거리고 나서도 좀처럼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둘은 알 수 없었다. 물론 다행이었다. 잔뜩 달아오른 얼굴도 식혀야 했고, 어색하지 않게 자리도 잡아야 했다. 흠. 흠흠. 스티브는 괜히 손가락으로 입술을 쓸어보다 마른세수를 하다 난리도 아니었다. 진중한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런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버키의 입술 끝에 미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똑같네.”
“…뭐가?”
“너 불안하면 항상 그러더라.”
“…….”
“뭔가 불안해? 나 때문인가.”
“아니야. 그럴 리가.”
버키는 아까 일을 염두에 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스티브는 이미 두 번 정도 더 꼬아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절로 심장이 욱신거렸다. 왜 이렇게 심장이 아픈지.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어떻게 저런 식으로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 돌릴 수 있을까. 물론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이젠 편히 쉬었으면 했다. 버키는 누구의 탓도 잘못도 아닌 상태에서 쉬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조용함도 잠시 아까부터 점점 가까워지던 발소리가 문득 멎었다. 그 순간 둘은 자연스럽게 문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티찰라는 두 쌍의 시선에 약간 놀란 눈치였다.
“둘 다 일어났는가.”
“폐하.”
“아, 앉아있게.”
벌떡 일어나려는 버키를 제지했다. 어차피 오해도 풀린 마당에 다친 사람에게 예의를 차리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현명한 왕은 자연스럽게 버키 앞에 자리를 잡았다. 침대에 어정쩡하게 걸터앉은 버키는 금방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이리저리 눈치를 봤다. 주위에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긴장하고 만다. 몸에 새겨진 버릇은 쉽게 털어버릴 수 없었다.
“아…….”
티찰라는 곧 버키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눈앞에 누군가 앉아있다는 것은 복종을 의미한다. 보통 그런 일이 있으면 버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앉아있어야 했다. 반항하면 많이 아팠다. 그나마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대장으로 의식하고 얌전하게 있으면 아주 조금 덜한 고통을 받을 수 있었다. 절로 인상이 찡그려지는 것을 본 티찰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폐하?”
“자네 친구가 누군가 앞에 서 있는 걸 많이 싫어하는 모양이군.”
“…….”
“난 상관없네.”
자연스럽게 옆으로 비켜선 왕이 팔짱을 낀 채 둘을 바라보았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둘은 속이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있어 주길 바라고 있었는데, 역시 불편한가 싶어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물론 그런 표정을 본 캡틴이 한마디 하려 했지만, 곧 버키의 말에 막혀버렸다.
“왜 비켜준겁니까.”
“왜냐니.”
“당신은 원하는 곳에 앉아있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별거 아니야. 그저 좀 더 진득한 대화를 하려면 다들 불편하지 않은 쪽이 좋지 않나.”
“…….”
“얼굴을 보니 내가 앞에 앉아있는 건 영 좋지 않은 선택이더군.”
“…….”
완전히 속을 들켜버린 버키는 눈만 깜박였다. 대화가 이리저리 꼬이기 시작하면 따라가기 어려웠다. 듬성듬성 구멍이 난 뇌는 금방 한계에 다다랐다. 금방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어버린 버키를 보던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섰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티찰라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버키의 어깨를 끌어안았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겨우 참고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불규칙적으로 흘러내리는 숨소리가 그대로 느껴졌다.
“별건 아니야. 게다가 위협도 아니지. 난 그대들을 도와주기로 한 거지 가두려 한 것은 아니니까.”
“…….”
“긴장 풀고 들어도 괜찮네. 캡틴.”
“알고 있습니다.”
“표정은 영 아닌걸.”
흠. 흠. 캡틴이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앞에 말은 농담이고, 지금부터 하는 말이 진짜일세.”
“무슨…….”
“캡틴 몸에 대한 결과가 나왔네.”
“아.”
“뭐 크게 잘못된 곳은 없어. 벌써 상처가 아물고 있는 걸 보니 문제없겠군. 센티넬 인자가 조금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긴 하지만, 자네는 자체적으로 수습이 된다고 하니 이쪽도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닐세.”
“감사합니다. 신세를 졌습니다.”
“아니야. 그런데 문제는 그쪽일세. 버키 반즈.”
“…….”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버키는 꼭 강아지처럼 고개를 들었다. 자연스럽게 티찰라의 눈에 시선을 맞추다가 이내 눈을 깜박이며 피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분명 학습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티찰라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일단 팔 같은 경우는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 하네. 의수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신경 쪽을 건들려야 한다면 꽤 복잡한 일이 될 걸세.”
“그럼…….”
“원한다면 우리 쪽에서 임시 의수를 제공하도록 하지. 그리고 그대로 지내면 불편할 테니 임시 의수를 사용하면서 시간을 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감사합니다.”
“폐하…….”
감사를 표하는 캡틴의 말 뒤에 버키의 한마디가 툭 따라붙었다. 둘의 눈길이 버키에게 닿았다. 버키는 그런 시선을 감수하는 것이 조금 힘든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곤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감사한 일이지만…의수는 필요 없습니다.”
“버키!”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제 몸에 또 무기를 달 수 없습니다.”
“…….”
“이대로도 살 만합니다. 전 괜찮아요.”
“하지만…….”
“거둬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버키의 말은 단어를 고르는 시간이 걸려 약간 어눌하고 느렸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버키가 입을 뗀 순간부터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분명 거절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선수를 칠 수 없었다. 이건 버키의 일이었고, 대신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신경이 억지로 끊어진 것도 있으니 오래 두면 좋지 않아.”
“그건 운명이겠죠.”
“…….”
“자네 생각은 어떤가. 캡틴.”
티찰라가 캡틴을 바라보았다. 스티브 로저스, 아니 캡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 마음이 중요하겠습니까.”
“그런가.”
“버키에게 무엇인가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알겠네.”
“감사합니다.”
“대신.”
“예.”
“적어도 잘려진 단면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마무리는 하도록 하게. 그렇게 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이건 양보 못 하네.”
순순히 물러선 왕은 마지막까지 걱정하는 말투였다. 버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마다 잘려진 부분이 욱신거렸다. 잘려진 의수에 촉각이 남아있을 리 없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환상통은 꼭 자신의 결정에 반대라도 하는 것 같았다. 욱신거리는 흉터가 무기가 주제넘게 생각을 하려 한다며 꾸짖었다. 이명이 또 들리기 시작했다.
“그럼 의수 일은 그렇게 끝내기로 하지.”
“또 남은 것이 있습니까?”
“그때 자고 있어서 간단한 검사밖에 못 하지 않았나. 확실하게 해둬야지.”
“…….”
버키는 말이 없었다. 왕은 침착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강요할 생각은 없었고, 시간은 촉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앉아있는 남자는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겨우겨우 떨어진 입에선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못합니다.”
“어째서?”
“얌전히 있을 자신이 없으니까요.”
“…….”
“정말입니다.”
어깨를 짚은 스티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긴 버키가 머리에 기계를 씌운다든가, 아니면 얌전히 기계에 들어가는 종류의 검사를 버틸 리 없었다. 날붙이가 머리에 닿는 것을 참지 못했다. 심각한 트라우마와 고통은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괴롭혔다. 왕은 그런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불안해 보이는 사내를 그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알아야겠지 않은가.”
“누군가 무고하게 다칠 수 있습니다.”
“…….”
“망가진 것은 확실한데, 굳이 그 원인을 찾아야 할까요.”
그 말에 왕과 캡틴은 괴로운 듯 눈을 감았다. 그런 둘은 보며 버키는 쓰게 웃었다. 항상 담담하게 말한다고 하는데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곤 했다. 결국, 피검사만 하기로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버키는 눈앞에서 주삿바늘을 보는 것만으로 흥분했다. 크게 뜬 눈동자는 초점 없이 흔들리고, 온몸에 새겨진 고통이 근육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낯선 의료진이 둘러싸고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부들부들 떠는 버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왕을 바라보았다.
“제가 하겠습니다.”
“캡틴? 다시 한 번 말해주겠나?”
“낯선 사람이 있으니 진정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검사용 혈액을 뽑는 것은 제가 할 테니 잠시 자리를 비켜주셨으면 합니다.”
“캡틴이 그런 것도 할 줄 알았던가.”
“예전엔 익숙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겠군.”
왕이 가늘게 웃었다. 긍정의 표시였다. 왕의 손짓 한 번에 의료진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무리가 갈라졌다. 다시 둘만 남았을 때 스티브가 버키를 와락 껴안았다. 잔뜩 충혈된 눈으로 거친 숨을 내뱉던 버키는 또 한쪽만 남은 팔로 더듬더듬 스티브의 등을 안았다.
“쉬, 이제 괜찮아. 버키.”
“…….”
“괜찮으니까. 조금만 참아.”
“…응.”
“못 보겠으면 눈 감아도 괜찮고, 내 어깨 물어뜯어도 돼.”
“그런 거 안 해.”
“그럼 힘 좀 풀어봐.”
뻣뻣하게 굳은 팔을 만지작거리던 스티브가 조금 장난스럽게 말했다. 단단한 손끝이 긴장을 풀라는 것처럼 팔뚝을 문질렀다. 이상한 일이었다. 스티브의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마다 화한 느낌이 들었다. 버키는 잠시 보이지 않는 궤적을 쫓기 위해 눈을 찌푸렸다. 아. 따끔한 기분에 팔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스티브가 만류했다. 안 돼. 버키. 나도 알아. 이 정도 아픔은 아픔 축에도 들지 못하는데, 왜 이렇게 아픈지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다.
'마블 > └ 스팁버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07 (0) | 2016.06.27 |
---|---|
[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06 (2) | 2016.06.26 |
[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04 (0) | 2016.06.24 |
[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03 (0) | 2016.06.23 |
[스팁버키/스벜] Into orbit: EXPLORER 002 (0) | 2016.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