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뉴트/민늍] 전력60분 : 꽃
신부이야기 AU 스핀오프
+) NOTICE
신부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중앙아시아+무언가 동양 판타지 aU입니다
민호는 도적단 두목 / 뉴트는 팔려가던 중
기본적인 의상에 대한 묘사는 촐님(@go00chol)의 그림을 보고 연성했습니다
촐님(@go00chol), 로케님(@goroke11)과 같이 풀던 썰을 기반으로 합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궁금함이나 문의는 댓글 방명록 트위터 등 편한 곳으로 부탁드립니다 >_<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 가는 거야. 말을 하고 떠나야지.”
“…….”
새벽부터 말 등에 바리바리 짐을 싣고 있는 민호 뒤로 긴 그림자가 늘어졌다. 그리곤 한참 동안 바쁘게 움직이는 뒷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제 딴엔 새벽부터 어딘가 나가려는 민호를 눈치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뉴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이런 민호에 익숙했다. 어차피 말려도 안 들을 것을 뻔히 안다. 그래서 몇 번 만류하다 곧 포기해버렸다.
사실 민호가 어디 가서 얻어맞거나 심하게 다쳐서 돌아온 위인도 아니었고, 마구 싸움을 걸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조용히 다녀오겠다. 우리 무리에겐 별일 없을 거다. 이런 말만 하면서 꼭 다녀와야 한다고 할 뿐 시원하게 한마디 알려주지 않는 두목을 보던 녀석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고개만 끄덕였다. 두목이야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뉴트는 좀 달랐다. 이곳에 와서 도적 무리랑 사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시시콜콜한 사연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아직 사이가 서먹한데 같이 한이불 덮고 자던 민호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자 왈칵 호기심이 흘러나왔다. 물론 민호가 보호자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저 녀석 며칠 없다고 신상에 큰일이 나진 않을 것 같았지만, 또 모르는 일이니 확실하게 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민호.”
“…응?”
말 등에 담요 하나를 단단하게 묶은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니 낯설었다. 보통 무리의 대장이라는 사람이 새벽같이 움직인다면 큰일이 있는 것이 아닐까. 뉴트는 대충 풍문으로 들은 생활상을 다시 곱씹었다. 게다가 무슨 큰일이 났나 싶어 옷 위에 천 하나만 걸치고 허겁지겁 뛰어나왔는데 꼴이 참 우습게 되었다. 뭐 이런 꼴 안 보고 뒤돌아 서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쌀쌀한 바람이 불자 뉴트는 조금 추운지 어깨에 걸치고 있던 천을 좀 더 당겨서 온몸을 푹 감쌌다.
“어디 가는 거냐고 물었잖아.”
“할 일이 좀 있어.”
“언제 올 건데?”
“…삼일쯤? 아냐. 나흘? 일주일…….”
“…….”
점점 기간이 길어졌다.
“달이 차기 전엔 돌아올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런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떠나는 거야.”
“항상 하던 일.”
“…일?”
“아니…그러니까.”
민호는 잠시 말이 헛나온 듯 괜히 기침만 했다. 뉴트의 눈이 또 샐쭉하게 길어졌다. 안 그래도 까만 눈을 찌푸리니 길게 속눈썹 그림자가 졌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뉴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민호의 표정은 알기 쉬웠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호는 계속 다른 방향을 보며 눈만 연신 감았다가 떴다.
“그러니까?”
“…친구를 만나러 가.”
“친구?”
이건 또 처음 듣는 소리였다. 도적 떼 두목한테 친구가 있다는 소리도 믿기 어려웠지만, 하필 친구를 이런 새벽부터 나가서 만난다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차라리 경비대랑 뒷거래한다고 하는 쪽을 믿겠어. 뉴트는 이제 대놓고 팔짱을 낀 채 민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 친구.”
“친구도 계신 양반이 여기서 왜 도적질을 하고 계시나 몰라.”
“세상사가 다 뜻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
“…….”
“네가 생각하는 그런 친구 아니야. 나도 그 녀석한테 빚진 게 있고, 그 녀석도 나한테 도움받은 일이 있어서 가끔 찾아가는 거니까.”
“…….”
뉴트의 고개가 한쪽으로 살짝 꺾였다. 그렇게 중요한 친구라. 예상외의 대답이었고, 새로운 모습이었다. 어쩜 그런 일이 있으면서 이렇게 내색도 안 하고 사는지. 참 알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물론 따지고 보면 뉴트는 외부인이고, 굴러들어온 돌이었다. 그래도 잘 지내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무리 사이에 끼기 힘들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내가 알아선 안 되는 거야?”
“…응?”
“내가 알면 안 되는 이야기냐고.”
“아니…그러니까.”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나도 이제 여기서 같이 사는 사람인데 너무 속이지만 말아줘.”
“그게…….”
“잘 다녀오고 무사히 돌아오도록 해.”
“…….”
뉴트가 먼저 말을 끊자 민호는 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말주변이 없고, 한마디 하는 것도 진중한 사람이라 답답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인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그럼 계속 천막을 써도 되는 거야?”
“물론…물론이지.”
“내가 바쁜 사람을 너무 잡았나. 다녀와. 난 들어갈게.”
푸르스름한 달을 가리는 것 하나 없는 공간엔 부슬부슬 달빛이 내렸다. 뉴트는 바삭바삭 소리가 날 정도로 곱게 부서지는 달빛을 온몸에 맞으며 서 있었다. 화려한 천 사이로 보이는 옷자락이, 그 옷을 잡고 있는 손에서 이어진 얇은 손목까지 하얗게 빛났다. 뭐랄까. 어둠을 먹고 자라는 꽃 같다고 할까. 아니면 밤에만 피는 달맞이꽃 같다고 해야 할까. 짧은 식견으로 표현할 수 없는 모습에 민호는 순간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뉴트를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웠다.
“…왜 안가?”
“아…냐. 가야지. 다녀온다.”
검은 말 위로 훌쩍 올라탄 민호는 괜히 또 기침했다. 그리곤 한 번 더 돌아볼 것처럼 순간 멈췄다. 넓은 어깨 바로 위를 넘겨보던 뉴트는 아주 조금 기대를 했다. 민호가 돌아보지 않을까. 한마디라도 더 해주고 떠나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실망한 뉴트 뒤로 긴 그림자가 늘어졌다. 물론 민호가 돌아보지 못한 것은 갑자기 달아오른 얼굴 때문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뉴트만 보면 심장이 뛰고, 술을 마신 것처럼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조금만 가까이 가면 이런 모습을 들킬까 싶어 다가가지 못했다. 애써 바쁜 척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삐를 다부지게 잡은 민호의 손등엔 바짝 힘줄이 서 있었다.
“야속한 녀석.”
들어주는 이 없는 밤하늘에 서늘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같이 잠 좀 자고, 밥을 먹는다고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게도, 작은 욕심을 냈다. 그리고 그 욕심이 점점 자랄수록 기분은 널을 뛰었다.
“…돌아오면 뭔가 바뀌어 있을까.”
뉴트의 눈매가 곱게 접혔다. 내일 아침부터 움직이려면 조금이라도 더 자야 했다. 민호가 떠난 것은 떠난 것이고, 뉴트가 할 일은 남아있었다.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품은 채 뉴트는 아무도 없는 천막으로 돌아갔다.
**
“넌 또 표정이 왜 그래?”
“…아냐.”
“뭐가 아냐. 피곤해?”
“그런 거 아냐.”
“이상하네. 과일 좀 먹을래? 가져오라고 할까?”
“괜찮아.”
“역시 이상해.”
다 죽어가는 친구를 보던 토마스는 손으로 턱을 괸 채 연신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뭐라도 먹을 것을 더 가져오겠다면서 조용히 자리를 떴다. 민호의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밤새 달리고 또 달려서 도착한 곳은 엄청난 부잣집이었다. 물론 대문으로 당당히 들어가지 않는다. 민호는 말을 여관에 부탁했다. 혹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한껏 눌러쓴 천이 답답하게 시선을 가렸다. 값을 먼저 치르라는 소리에 돈을 툭툭 던져주곤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넓은 저택을 돌아가면 꼭 한 사람이 넘을 만큼 낮은 담이 있었다. 물론 보통 사람은 넘기 힘든 높이였다. 익숙하게 벽에 있는 작은 틈을 밟고 담장을 넘은 민호는 조용히 정원으로 숨어들었다. 밤이 되면 춥고 해가 뜨면 더운 도적 근거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부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넓은 땅은 잘 개간해서 수로를 만들었다. 그 넓은 수로엔 깨끗한 물이 흘렀다. 수로 주변엔 화려한 꽃과 나무가 잔뜩 심겨있었다. 방금 물을 준 것인지 물방울을 머금은 꽃이 탐스럽게 웃고 있었다.
“여긴 와도 와도 적응이 안 된다니까.”
“…민호?”
“…….”
“민호? 왔어?”
인기척이 들리자 재빠르게 그늘 뒤로 몸을 숨긴 민호는 조심스럽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박. 사박. 떨어진 잎을 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장 민호가 숨어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민호의 얼굴이 일순간 확 풀어졌다.
“토마스.”
“어차피 여긴 아무도 안 온다니까.”
“그래도 멀뚱히 서 있다가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
“들어가자. 이쯤 되면 올 거로 생각했어.”
“그래.”
한눈에 봐도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옷을 입은 녀석은 스스럼없이 민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민호는 그새 웃고 있었다. 당장 민호를 별채로 들여다 앉힌 토마스는 과자를 가져온다 차를 내온다 하며 부산을 떨었다. 물론 아침부터 준비해둔 것을 들고 내오는 것에 불과했지만,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을 해주고 싶어 했다. 민호는 자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와 다과를 바라보다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문득 심각해졌다. 민호의 표정을 알아챈 토마스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민호에게 몇 번씩이나 도적질 정리하고 이곳에 들어와 살라고 하던 녀석이었다. 이번에도 대충 경비대와 마찰이 생긴 것이 아닐까 넘겨짚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응? 내가 뭐.”
“표정이 당장 죽을 것 같은데? 인상도 잔뜩 쓰고. 나한테 말해봐.”
“뭘…….”
“혹시 알아. 괜찮은 해결 방법이 있을지.”
“…….”
“어서. 친구 좋다는 게 뭐야.”
토마스는 생글생글 웃으며 민호를 바라보았다. 허물없는 녀석은 가금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았다. 민호는 그런 눈빛을 두 번이나 보고나니 버틸 자신이 없었다. 뉴트는 간신히 도망치듯 피했지만, 눈앞에 앉아있는 토마스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혹시…그…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치자.”
“…….”
토마스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저 목석 같은 녀석한테서 저런 소리가 나오다니. 민호의 부하들은 이 사실을 알까. 너무 신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응. 응. 말해봐.”
“뭘…해줘야 좋아할까?”
“겨우 그거야?”
“그게 아니야. 이것저것 사다 줘 봤는데…또 남한테 빼앗아 온 거 아니냐. 난 필요 없다 하면서 다시 돌려주란 말만 하잖아.”
그야. 네가 도적이니까. 토마스는 혀끝에 굴러 나오는 말을 꿀꺽 삼켰다. 이런 말 했다가 민호가 다시는 여기에 안 올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서 더 이야기해 보라는 녀석의 재촉에 민호는 다 포기한 듯 하고 싶었던 말을 줄줄 늘어놓았다.
“…….”
“그러니까. 뭐…어쩌지.”
“어쩌긴…네 진심만 말해도 그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난 항상 진심이야.”
“…….”
토마스도 그렇게 남녀 관계에 밝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위로 많은 누나와 형이 있었고, 자연스레 보고자란 것이 있었다. 하지만 토마스와 민호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럼…음.”
“…….”
“꽃이라도 가져다주면?”
“꽃?”
“우리 정원에서 괜찮은 거 꺾어가. 설마 꽃을 빼앗아왔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 아냐.”
“…….”
“이번에 핀 꽃이 크고 예쁘더라.”
토마스는 가끔 이렇게 때려 맞출 때가 있었다.
**
“그러니까…이게 뭐라고?”
“…….”
민호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들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선물인 것은 확실했지만, 방법이 나빴다. 아무리 싱싱하고 예쁜 꽃이라도 며칠 동안 꺾은 채 가져 오면 시들기 마련이었다. 밤을 새워 돌아온 민호 손에는 다 죽어가는 꽃이 들려있었다. 이걸 내다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지라고 내밀기도 못해서 안절부절못하며 천막 주위를 뱅뱅 돌면 민호는 결국 인기척에 잠이 깬 뉴트한테 붙들려 안으로 들어왔다.
“…그게.”
“선물이야?”
“…….”
뉴트가 웃었다. 민호는 또 숨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예쁘네.”
아무 말 없이 다 시든 꽃을 받아간 뉴트는 이미 끝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꽃잎을 손가락으로 살살 쓸어내렸다. 그러더니 팔찌로 만들어뒀던 색실을 풀어내 꽃을 한데 묶었다. 이미 시들기 시작한 것을 살릴 순 없지만 예쁘게 말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고마워.”
“…뭐?”
“선물 고맙다고.”
그 한마디에 천막 안으로 서늘한 달빛이 스며들었다. 소리 없이 타오르던 램프에서 순식간에 불꽃이 사라졌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천막 안엔 여전히 두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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