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100분/왕윤태오] 생일,혼자 남은 곳
+) NOTICE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2차 연성입니다.
본편 9~11화 및 완결 중요 네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울한 조조가 나옵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시간이 흐르는 것이 이렇게 달갑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티가 난다고 하는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었을 거란 생각을 하고 또 했다. 늘 혼자 행동하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었기에, 단체 행동을 해야 하는 경찰에 지원한 것을 놀란 눈으로 보던 가족의 눈을 아직도 기억했다. 몇 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둘거란 우려와 달리 태오는 여전히 잘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 태오는 어느새 조조가 되었고, 옛 이름을 찾지 않았다. 궁금해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물론 그 첫 번째 이유는 조조가 그리 사생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두 번째는 힘든 일을 겪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뜬금없이 이름을 바꾸고 돌아온 새파란 경찰을 보며 선배들은 서로 혀를 차며 걱정하기 바빴다. 물론 저 세상 물정 모르는 독불장군 같은 녀석이 경찰서를 휘젓고 다니며 저 좋을 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미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차라리 예전처럼 모두 선배 탓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편이 나았다. 조금 얌전해지길 바란 것이지 저렇게 텅 빈 것처럼 구는 쪽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조. 뭐하냐.”
“…일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건 알고 있지.”
“이번에 새로 수배내려온 전단지 확인 중입니다.”
“…….”
“뭐 더 시키실 일이라도.”
“아니. 아니다. 그거 끝내고 보고서 알아서 올려라?”
“예. 뭐, 언제나 그랬죠.”
“그래. 난 잠복 근무 있어서 나간다?”
“네. 다녀오세요.”
솔직히 이렇게 뜬구름 잡는 대화도 이젠 지겨워지곤 했다. 하지만 경찰서 선배들은 하나같이 말주변이 없어서 쉽게 속을 파고들지 못했다. 하는 것만 봐선 당장 조조를 붙잡아 앉혀두고 무슨 일이냐고 물을 것 같았지만, 차마 그러지도 못했다. 물론 조조가 당장 죽을 것처럼 구는 건 아니었다. 약간의 표정 변화가 있을 뿐 오래 부딪히지 않은 쪽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미했다. 그렇지만 그런 작은 변화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무시할 수 없어 일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도 말 못 했어?”
“자꾸 나한테 미루지 말고 너도 좀 해봐라. 저놈 얼굴 보고 그런 말이 나오나.”
“…….”
“선배 잘못되신 것도 안타깝고, 저 녀석도 아등바등 살아가려고 하는데…….”
“…….”
“어떻게 그 앞에다 대고 속마음을 꼬치꼬치 캐물어보겠냐.”
“하긴…나였어도 그랬을 거다.”
“차라리 예전에 하룻강아지처럼 혼자 돌아다니는 쪽이 나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는데.”
“차차 나아지겠지. 우리도 그랬으니까.”
“오늘은 어디 잠복이야. 이게 며칠째냐. 진짜.”
“어쩔 수 없지.”
범죄자 뒤를 쫓는 삶은 치열하기만 하다. 선배들은 막내의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잘 알았기에 보채지 않는다. 언젠가 저 상처에 딱지가 앉고, 천천히 나으면. 비록 흉터가 생길지라도 쳐다보는 것만으로 아프진 않게 된다. 경찰은 누구나 소중한 사람을 직간접적으로 잃어버린 적이 많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
조조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에 경찰서 안에서 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좀 더 쉬라는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지도 않았다. 멀쩡한 얼굴로 경찰서에 돌아왔을 때 다들 익숙하게 받아줬다. 경찰 그만두겠습니다. 그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했지만, 누구도 캐묻지 않았다.
‘어째서…….’
그때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보았다. 아니 놀랐다기보단 약간 질렸다는 표정일까. 미묘한 감정이 섞인 얼굴을 보던 선배들을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경찰 안 한다고 죄다 던지고 나갔지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서장은 그저 웃으며 녀석 이름으로 휴가계를 적어두라고 지시했다.
‘서장님은 저 녀석한테 너무 무르십니다.’
‘그런가.’
‘네. 저런 녀석 계속 둬봤자 사고만 친다니까요.’
‘하지만 눈이 죽지 않았어. 언젠간 다시 경찰을 하러 돌아올 거야.’
‘…….’
‘난 그렇게 보이는데, 안 그런가.’
‘모르겠습니다.’
‘솔직해서 좋구먼.’
서장은 웃고 말았다. 왕윤을 잃은 슬픔은 누구에게나 고르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힘든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조조가 왜 이곳에 지원했는지 알고 있었다. 엄청난 성적으로 경찰대에 입학하고, 거기서도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는 소리는 예전부터 들었다. 그런 녀석이 다른 곳도 아니고 이런 작은 곳으로 오겠다고 직접 선택했다는 소문이 들리자 다들 이유를 궁금해하기 마련이었다.
그때 왕윤이 어땠지. 사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딱히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조조와 왕윤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긴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우습게도 조조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땐 태오였으니 태오라고 불러야 할까. 처음 출근해서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아직 학생티도 벗지 못한 녀석은 제법 씩씩하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왕윤 앞에서 한마디 했다. 그때 다들 알았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녀석이 그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다. 물론 그리 귀엽던 녀석은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 똑똑한 놈이 더하더라니. 자신감에 차서 홀로 행동하곤 했다. 그러고. 그렇게 끝난 기억은 찝찝함을 남긴다. 너무 큰 사건이 일어나 수습해야 할 의욕조차 사라졌다.
‘그래서 이 녀석을 그대로 놔두신단 말입니까? 서장님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왕윤도 아마 그러길 바라지.’
‘…….’
‘안 그런가.’
‘그야…그렇지만. 제가 보기엔 저 녀석 이곳에 다신 안 돌아올 표정이었습니다. 나중에 서장님이 책임져 주십시오.’
‘그러도록 하지.’
그렇게 한참 이름만 남아있었다. 꼭 경찰서에 묶인 지박령처럼 조조의 이름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녀석이 돌아왔다. 잘 돌아왔다고 반겨줬지만, 약간 망가진 녀석은 가끔 허공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쉬곤 했다.
*
누군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의심해보라고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쉬어보라는 조언도 하곤 한다. 그만큼 조조의 모습은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손대면 툭 하고 부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자존심과 뭔가의 응어리가 남아 바득바득 버티고 섰다. 저러다 한번 꺾이면 다시 못 일어난다고 다들 말했지만, 저 고집을 꺾을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었다.
“…….”
조조는 수배 전단을 계속 만지작거린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았으니 천천히 시작하자는 배려를 받아 혼자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멍하니 전단을 보고 있으면 글자가 점점 흐려진다. 난독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가끔 글자 읽기가 힘들어진다.
“…또.”
꼭 혼자 남은 곳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고칠 방법이 없었다. 남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끄럽지만, 병원에 설명할 방법조차 없었다. 그래서 혼자 견디고 감내해야 했다. 또 흐릿하게 번지는 글자를 손으로 짚어본다. 몇 번이나 눈을 깜박였지만, 초점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럴 땐 방법이 없었다. 조조는 눈을 감았다.
‘도대체…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이유라면 생활을 할 때도 같은 증상이 일어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귀신같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끔 난데없이 눈물이 왈칵 흐를 때도 있었다. 도대체 어디가 고장이 나면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아무리 가슴을 쥐어뜯고 괴로워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보이는군.”
한참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던 조조가 눈을 떴다. 흐릿하게 보이던 시야가 똑바로 초점이 잡히니 순간 현기증이 났다. 망가져도 단단히 망가진 것이겠지만, 이젠 고칠 의욕이 없었다. 할 일이 끝났으면 퇴근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남아있으면 두 배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기에, 오늘은 그 명령을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물론 퇴근 시간은 이미 한참 넘겼다. 조조는 혼자 남은 곳을 둘러보았다. 꼭 당장 뒤에서 선배가 나타날 것 같은데, 현실은 냉랭했다.
“선배.”
이젠 자취조차 찾기 힘들었다. 떠난 사람은 잊어야 한다고 말했기에. 이 곳에 남은 왕윤의 물건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리 많은 물건을 두고 다니지도 않았다. 왕윤과 초선이 살던 집은 조조가 직접 처분하는 것을 도왔다. 아직 어린아이는 선배 부모님이 맡아주시기로 했다. 그러던 중이니 다른 물건을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 왕윤이 없는 집은 너무 컸다.
차라리 뭐라도 하나 남겨둘 걸, 삼보검보다 다른 것을 남겼어야 했다. 물론 그 검이 부끄럽다거나, 가져온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조조의 성정이 그러하여 주변에 사진 한 장조차 남기지 않았던 것을 내내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진다. 감정도 말라붙어서 익숙해진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을 잊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의 삶이지만, 그러기 싫었다.
“…선배.”
이렇게 혼자 남겨지는 감각이 싫었다. 텅 빈 곳엔 늘 어둠이 생긴다. 어둠은 인간의 약한 부분을 먹어치우면서 자란다. 금방이라도 어둠 속에서 동탁이 나타날 것 같았다. 중요한 건 알아서 지켰어야지. 그 말이 귓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고 돌리는 것도 미안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 등이 환하게 켜져 있는데 시야가 점점 좁아진다. 순간 세상이 어둠에 잡아먹힌 것처럼 까맣게 변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당황해서 발을 옮긴다.
“아…….”
와장창 소리를 내며 서류가 떨어진다. 다시 밝아진 시야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렷해진다. 발끝에 살짝 밟힌 수배 전단을 들어 올린다. 서류가 구겨지지 않게 하나하나 정리한다. 그리고 다시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
그렇게 따지자면 집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사는 냄새라곤 하나도 나지 않는 공간은 그저 잠을 자기 위한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꾸밀 의욕도 없고, 필요한 것 외에 사고 싶은 것도 없었다. 가끔 초선이가 조조 아저씨네 놀러 가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삭막한 공간에 아이를 데려올 수 없어서 몇 번 거절하곤 했다. 늘 비어있는 집은 조조가 돌아오면 새까만 어둠에 잡아먹힌 모습이었다.
“…….”
익숙하게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켠다. 어둠이 저 멀리 물러나는 것을 보고서야 집 안으로 발을 들인다. 예전엔 이렇게 어둠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혼자 있는 것이 힘들어지고, 어둠이 있는 곳을 피하게 되었다.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자꾸 그곳을 헤집으려는 기억이 너무 많았다.
“날짜가 벌써…….”
손으로 날짜를 셈하던 조조가 이미 한참 지난 달력을 넘겼다. 저녁은 적당히 먹고 들어왔으니 오늘도 역시 부엌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물 한잔을 들고 자신의 책상으로 간다. 예전에 만들어둔 공간은 이미 들어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그곳이 왜 망가졌는지에 대한 의문도 품지 않았다. 그러 망가지고 깨진 곳을 죄다 쓸어 내버린 후 다시는 문을 열지 않으리란 다짐으로 자물쇠를 채웠다.
“이 집도 정리해야 하나.”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사는 장소는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정착하려는 마음으로 정한 곳이지만,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남자에겐 너무 크고 무거웠다. 방이 많아서 모두 불을 켤 수 없었고, 어둠이 내린 이후론 방문은 열지도 못하니 아무리 넓다 해도 쓸모가 없었다. 조조의 행동반경만큼 불이 밝았고, 날이 밝으면 꺼졌다.
“…….”
눈에서 또 눈물이 흘러나온다. 의지가 아니었다. 감정 따윈 메마른지 오래라고 생각했다. 조조는 손바닥으로 눈을 꾹 누른다. 하지만 온몸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손바닥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손가락으로 급히 닦아내는 것도 모자라 책상에 뚝뚝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라리 이렇게 울어서 죄책감이 사라지면 석 달 열흘도 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다고 마음에 얹은 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슴을 아무리 쥐어뜯어도 답을 알 수 없었다.
“선배.”
도대체 왜 이럴까요. 조조의 얼굴이 무너진다. 왈칵 솟은 눈물을 뜨거운데, 마음은 점점 식어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찬물을 적신 수건을 눈에 올리고 침대에 누웠다. 후끈한 열이 점차 식어간다. 이렇게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오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이젠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선배가 보이고. 그날이 보이고. 힘들어서 참을 수가 없어요. 드문드문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상처가 가득했다. 아무리 괜찮은 척을 해도 속까지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눈물이 후회라면 웃을 수 있는 것은 언젤까. 조조는 늘 되물었다.
“태오야.”
“…….”
“태오야.”
“…….”
“왜 그러고 있어.”
“…….”
“네가 이러면 내가 가슴이 아프다.”
대답하지 않는다. 조조는 자신이 이성적이라 생각했다. 이건 분명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했다. 자신의 손으로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손으로 집을 처분했다. 그런데 어떻게 선배가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걸까.
“태오야.”
“…아닌 거 알아요.”
“…….”
“내 죄책감이 선배를 자꾸 귀찮게 하는 걸 알고 있어요.”
“…….”
“그러니까 이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찰나의 만남이 힘들다는 것은 조조가 더 잘 알았다. 이렇게 허상을 끌어안고 슬퍼해봤자 남은 것이 없다. 오히려 더 슬프기만 하다. 하지만 유비는 그런 기억이 있어야 과거를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라 딱 잘라 말했지만, 사실 조조는 그렇게 곧게 이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이 없었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 할 수 없었다. 기억으로 사람들의 관계가 지탱될 때가 있다면,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이러는 것은 옳지 않았다.
“태오야.”
“…….”
“괜찮으냐.”
“…안 괜찮아요.”
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있다. 눈을 뜨면 바로 앞에 왕윤이 서서 자신을 바라볼 것 같았다. 손으로 머리를 쓸어주고, 사내 녀석이 왜 이렇게 힘이 없냐면서 한마디 타박도 해줄 것이 분명했다. 왕윤은 늘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원해서 눈을 뜨면 아무것도 없을 거란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러면 후회는 두 배가 된다.
“…….”
“안 괜찮은데…선배도 그렇잖아요.”
“태오야…….”
“저 이제 태오 아니고 조조입니다. 선배님.”
“그래도 넌 언제나 나한테 어린 태오지.”
“…….”
허상이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일어나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왕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주먹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입술을 꾹 깨물어도 울음이 비집고 흘러나온다. 늘 평온한 목소리 그대로 찾아와 자꾸 흔들어댄다.
“태오야.”
“…….”
하지만 가까이 다가왔던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뭔가 말하려고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뚝뚝 끊기는 목소리가 점점 흐릿해진다. 그러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선배. 안돼요! 잠시만요. 급하게 일어난 조조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누가 껐는지 방 안이 캄캄했다. 언제 잠이 들었던 걸까. 흐릿하게 새벽달이 보인다. 조조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진짜.”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꿈이라면 깨지라도 말 것을.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 봤자 현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조조가 문득 달력을 바라본다.
“…….”
이 텅 빈 곳에 왕윤이 남긴 것이 하나 있었다.
싫다는 녀석에게 굳이 달력을 선물하고 생일을 물어본다. 같이 있어 주실 것도 아니면서……. 답지 않게 툴툴거리는 어린 경찰을 바라보던 왕윤은 흔쾌히 이야기했다. 조조는 달력에 적힌 왕윤의 글씨를 손으로 쓸어보다 그대로 주저앉아서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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