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토니피터] New York SKYLINE 002
+) NOTICE
인피니티 워 이후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온 둘에 관한 이야기
일부 인피니티워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과보호하는 토니와 히어로 1인분 하고싶은 피터가 나옵니다
적당한 망상과 설정 붕괴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ㅇㅅㅇ)9
write. 환월
“그럼 다음에 또 뵙죠.”
“그 토니 스타크가 요새는 많이 바쁘신가 보네.”
“저야 늘 바쁘지 않습니까.”
피식 웃고 만다. 편히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말엔 서늘한 비수가 가득했다. 필요에 의해 모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기에 한마디도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런 곳에서 허허실실한 농담 속에 들어있는 진심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토니 스타크는 발을 빼야 할 곳을 잘 알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먼저 자리를 뜬다. 이 정도면 되겠지. 뭐든 적당한 편이 좋았다.
“…….”
건물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았다.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 충분히 약점을 잡힐 수 있다. 그렇게 건물에서 내려온다. 아래층으로 이동한다. 또 한참을 걸어가야 타고 온 자동차가 있었다. 프라이데이. 가볍게 부른다. 그러자 차 문이 열린다. 그렇게까지 하고 나서야 간신히 안전한 곳에 앉을 수 있었다. 후우.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단단하게 목을 죈 넥타이를 적당히 풀면서 깊게 넣어둔 핸드폰을 꺼낸다. 전원을 꺼둔 채 방치되어있던 핸드폰은 차갑기만 했다. 하긴 이런 것 들고 다니지 않아도 토니 스타크가 원한다면 뭐든 연락을 할 수 있다. 프라이데이를 만들었고, 자비스를 만들었다. 아이언맨을 만든 천재. 그 무슨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핸드폰을 하나 들고 있는 것은 누군가를 위한 마지막 아날로그적인 면모였다. 전원이 켜지는 짧은 순간 토니 스타크는 많은 생각을 했다. 작은 거미가 얼마나 많은 연락을 했을까. 아니면 아직도 다 컸다고 주장하는 그 말 때문에 꾹 참았을까. 이렇게 웃을 일이 생기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
물론 그 웃음이 점차 사라진 것은 끊임없이 갱신되는 문자 때문이었다. 처음엔 늘 오던 만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밑으로 내려도 끝나지 않는 스크롤 바를 보면서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이런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누가 토니 스타크의 핸드폰을 해킹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녀석이.”
하지만 문자에 꼭꼭 박힌 피터 파커란 이름은 이것이 해커의 공격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럴 때 마나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며 아팠다. 흔히 있는 두통이라고 하지만, 피터와 엮이면 조금 달라진다. 토니는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고서 어린애처럼 군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하던 토니 스타크는. 지금.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핸드폰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아.”
이제야 간신히 진동이 멎는다. 작은 거미는 말이 많다. 꼭 말을 하지 않으면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굴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한다고, 거미는 땅에 붙어있어야 한다고. 그랬던 말을 꼭 이렇게 돌려받곤 한다. 그러면 그 녀석이 어땠더라. 작은 머리통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리고 가볍고. 재빠르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동안에도 입을 쉬지 않았다. 토니 앞에서 그랬으니, 떨어져 있어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핸드폰 사용법도 성격을 따라간다.
“그런데 말이지.”
“…….”
“도대체 저 녀석한테 내 번호 알려준 사람 누구야.”
“…….”
“응? 프라이데이. 왜 그러는데.”
기계에 감정이 있다면 바로 이런 식일 것이다. 프라이데이는 잠깐 뜸을 들이다 다시 말을 이어간다. 토니는 나름 심각했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 철두철미한 성격이 이렇게 물렁물렁해지는 것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단단하던 토니 스타크의 성격도 이렇게 물러진다. 그 매개체가 작은 거미라는 사실은 토니 빼고 모든 이들이 안다. 그러나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는 이유는 서로 민망해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프라이데이는 그런 인간 사이의 일을 생각할 만큼 깊은 사고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정교한 기계라고 해도 인간의 복잡한 생각을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보스가 직접 적어주셨습니다.”
“…….”
토니는 갑자기 말이 없어진다. 프라이데이는 그 침묵을 잘못이라고 인식한 모양이었다. 바로 맞는 답을 구하기 위해 그 날의 메모리를 이리저리 헤집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토니가 말려야 했다. 그러나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쩔 수 없다. 이럴 땐 그저 시간이 약이었다.
“죄송합니다. 보스.”
“응? 무슨 일이지?”
“저장된 메모리를 확인했습니다. 보스가 직접 적어주신 것은 아니고, 파커 군이 요청했군요. 이후 보스가 번호를 알려주신 모양입니다.”
“…프라이데이.”
“네, 보스.”
“아니야.”
“좀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신가요?”
“아니. 아니야. 굳이 그때 기억을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괜찮아.”
“알겠습니다.”
“…….”
프라이데이가 가져온 그 날의 기억은 제법 생소했다. 이젠 모두 잊어버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불현듯 떠오른 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선명해진다. 피터 파커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자신의 눈을 쳐다보았는지. 아닌지. 하나하나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입꼬리가 씰룩 움직인다.
“내가 미쳤군.”
자조적인 말이었다. 차라리 과학에 미쳤다고 평가받던 적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땐 이런 식으로 정신을 빼놓고 다니는 사내라는 말은 듣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 피터 파커. 스파이더먄. 작은 거미. 어린애. 여러 가지 단어로 불리는 그 녀석을 생각하면 가끔 심장이 간질거린다. 이런 감정은 이미 다 타버린 줄 알았는데 용케 심장 한구석에 살아있었다.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뜬금없이 날씨 걱정을 한다. 그 녀석은 방학이 되면 업스테이트로 놀러 온다. 아니 놀러 온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 같아서 다른 단어로 정정한다. 그 녀석은 어엿한 히어로였다. 물론 눈엔 차지 않는다. 그 녀석을 데뷔시키려고 기자를 불러 모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절했고, 새로 만든 슈트도 받지 않았다. 물론 예전에 쓰던 건은 선물로 안겨줬다. 이곳에 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늘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래도 아직 학생인 거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이니 멋대로 빠지라고 할 수도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되었다면 토니 스타크는 저 작은 아이의 보호자에게 멱살을 잡혔을지도 모른다.
“거미는 습기랑 비에 약하지.”
딱히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토니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괜히 피터가 업스테이트에 올 시기의 날씨를 예상해 본다. 날씨가 맑으면 거미도 신이 나겠지. 아주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다. 그러면 혹시 다치지 않도록 낙하산이라도 달아줘야 하나. 몇 년 전 토니에게 이런 꼴을 보여주면 있을 수 없는 미래라고 딱 자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이 변하는 존재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전제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로 천천히 변해가는 토니 스타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고 어린 거미에게 온갖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정말이었다.
*
업스테이트는 늘 바쁜 곳이었다.
어벤져스 본부가 생긴 이후 조용할 날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이 곳에 제일 늦게 발을 디딘 스파이더맨도 마찬가지였다. 피터가 업스테이트에 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린 히어로를 가르쳐야 한다는 구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학교에 다니는 녀석을 데리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 괜찮은데요.’
‘내가 안 괜찮다. 꼬맹아.’
‘학교가 다 뭐라고…….’
‘그런 마음으로 잘도 히어로를 하겠다.’
‘…….’
또 볼이 불퉁하게 부어오른다. 하긴 저번에도 그랬다. 세상 분간을 못 하는 녀석을 잡아 누르기도 힘이 들었는데, 녀석은 그런 것도 잔소리라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피터가 학교에 가지 않으면 메이가 걱정한다. 그 걱정은 바로 토니에게 전해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져 왔다. 그래서 잡은 약속이 바로 이때였다.
‘방학…이요?’
‘그래. 방학.’
‘왜. 굳이…….’
‘학생은 학교에 가야지.’
‘…….’
‘그때부터 움직여도 충분하다. 알았어?’
‘…….’
‘제발 어른이 하는 말 잘 듣고, 내가 할 것 같은 일은 하지 말고. 내가 안 할 것 같은 건 절대 하면 안 되는 거야.’
‘…….’
‘대답.’
‘알았어요. 스타크 씨.’
‘그래.’
‘하지만…….’
‘절대. 안 돼.’
‘…….’
‘방학 전에 거미가 움직인다는 소리 들으면 줬던 슈트도 다시 뺏을 줄 알아.’
‘…….’
물론 슈트가 없어도 히어로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제법 잘 먹히는 협박이었다. 피터는 그런 토니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피터의 달력 한 귀퉁이에는 작은 별표가 생겼다. 물론 달력이 몇 장은 넘어가야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길고 긴 날을 보냈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오지 않을 것 같던 날짜도 어느새 오기 마련이었다. 피터는 불쑥 다가온 날짜를 손으로 짚어보면서 점점 들뜨고 있었다. 오히려 몇 달 남았을 땐 그렇게 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오니 오히려 시간이 늦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
피터는 괜히 침대에서 뒹굴었다. 이렇게 조바심을 내봤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늘 그랬다. 오히려 지금은 조용한 슈트 누나가 이런 모습을 모두 찍어서 토니에게 보고할 수도 있었다. 버둥거리며 팔다리를 휘저어봐도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진짜 시간 안 간다.”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버렸다. 이젠 이런 것도 익숙하다. 하루가 48시간으로 변한 걸까. 아니면 유독 자기한테만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걸까. 똑똑한 녀석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차라리 언제 불러줄지 모르던 쪽이 나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런 식이었을 때도 시끄럽게 히어로 일은 언제 할 수 있느냐며 연락을 하긴 했다. 보통은 해피가 그 연락을 받았다.
“…….”
갑자기 억울해진다. 스타크 씨가 얌전히 있으라고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무거워지면 누가 손해 보는 걸까. 매일 운동을 하거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짧은 훈련을 반복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일주일. 이주일.”
정말 얼마 남지 않았지만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토니 스타크가 제발 얌전히 있으라고 한 이유도 알고 있었다. 짐작이 간다.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피터가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피터는 지금 당장 뉴욕으로 뛰어가고 싶었다.
“정말 미치겠다.”
“피터?”
“네? 네!”
“무슨 일이 있니?”
“아뇨! 그럴 리가요!”
“…….”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거든요!”
“그래. 알았다. 조심해라.”
“네. 알겠어요.”
천장에 붙은 채 넉살스레 대답한다. 물론 메이가 이런 꼴을 봤으면 당장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아니. 저번에도 들킬 뻔했다. 네드한테는 이미 들켰고. 그래서 혼자 쓰는 이 방에서 움직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하루를 보내면 되겠지.
결국, 늘 생각의 종착지는 같았다. 피터는 계속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럴 때면 똑똑한 아이는 할 일을 만들어낸다. 토니 스타크가 이 모급을 본다면 그저 어린애 같은 놀이겠지만 피터에게는 누구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뉴욕에 어떻게 갈지 검색이나 해볼까?”
이 생각이 드니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하긴 피터는 퀸즈에 살았고, 어벤져스 본부는 업스테이트에 있었다. 제법 먼 거리이기에 어린애가 심심하다고 놀러 갈 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다.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피터는 상황이 약간 달랐다. 메이는 늘 피터를 걱정했고, 피터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숙모에게 이런 일을 들키지 않았으면 했고, 걱정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다 보니 멋대로 퀸즈를 떠나 며칠씩 다른 곳에 머무는 것을 꺼렸다. 그렇다고 메이가 무조건 막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최소한의 정보를 알기 원했다. 피터가 토니 스타크와 약속한
날을 기다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늦게 가면 안 되니까.”
피터는 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퀸즈에서 뉴욕으로 가는 길. 차편. 머물 곳. 들릴 곳. 숙모가 걱정하지 않게 꾸밀 변명도 필요했다. 정말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그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찾아가기 어려운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허무맹랑한 곳은 안 된다. 게다가 피터가 관심이 없는 곳도 안 된다. 갑자기 관심이 간다고 해봤자 숙모는 믿지 않을 것이 뻔했다.
“아…이걸 어쩌지.”
교통편만 알아봤는데. 벌써 머리가 지끈거린다. 피터는 다 때려치우고 다시 침대에 눕고 싶었다. 아니면 학교에 가서 거미줄 용액이나 좀 더 업그레이드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하고 싶은 일만 잔뜩 생긴다. 피터는 겨우 두 줄 정도 적어둔 채 다시 컴퓨터를 껐다.
“스타크 씨가 나빴어.”
이건 정말이야. 이 생각을 하며 문자를 보낸다. 하루에 여섯 통쯤은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 피터만 그 사실을 모른다.
*
“피터.”
“…….”
“피터. 오늘 그 날 아니니?”
“…으. 무슨 일이에요.”
“어제까지 뭔가 급하기 가방을 싸면서 준비하던 거.”
“…….”
“피터. 늦는다.”
“…그거 아직 시간이.”
“오늘 스타크 씨랑 약속이 있었던 거니?”
“…….”
잠이 덜 깬 귓가에 흐릿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피터는 늘 그랬던 것처럼 이불을 돌돌 감은 채 눈만 깜박였다. 조금 더 자고 싶은 마음과 이젠 일어나야 한다는 이성이 부딪힌다. 어제 늦게 잔 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졸음이 쏟아지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아직 버스 시간…아닌데.”
“지금 우리 집 앞에 와서 기다리고 계신걸?”
“…….”
“피터? 자니?”
“…….”
“피터?”
“으악!”
저 멀리서 피터의 비명이 들린다. 메이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은 꼭 시간이 안 간다면서 버둥거리다 막상 그 날이 오면 이렇게 대차게 사고를 치곤 한다. 그러니까 일찍 자라고 했는데. 하지만 이미 늦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저 애가 아직도 저런다니까요.”
“괜찮습니다. 뭐, 더 그러면서 크는 거죠.”
“스타크 씨가 직접 오셨는데.”
“아닙니다. 뭐 이 정도쯤이야.”
토니 스타크는 허허 웃기만 한다. 자신의 시간은 금보다 비싸다고 말하던 사람은 간 곳이 없었다. 하긴 이날을 위해 몇 달 전부터 일정을 조정해둔 것도 맞았다. 피터가 연락이 잘 안 된다면서 툴툴거렸던 그 시간에 토니는 하루를 세 갈래로 쪼개서 움직였다. 단지 그걸 주변이 모를 뿐이었다.
“저 녀석이 정말…….”
“괜찮습니다. 제가 먼저 제안한 일인걸요.”
“하지만…….”
“제안한 사람이 기다려야 하는 거죠. 저런 인재를 이쪽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선?”
“세상에.”
“파커군이…아주 똑똑합니다. 벌써 여기저기서 탐을 내고 있어요.”
물론 뒤에 붙을 말이 더 있겠지만, 애써 삼킨다. 별로 다른 것은 아니었으니 괜찮으려니 한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보니 이제 준비를 끝낸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스타크 씨!”
“어, 그래. 오랜만이다.”
“제가…좀…늦었죠. 늦잠을…자서.”
“…….”
“근데 제가 타고 갈…버스는 아직…시간이…….”
“좋아. 파커군. 밀릴 수도 있으니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할까?”
“예? 예?”
“그럼 파커군 얌전히 데려갔다가 무사히 돌려놓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저 그게.”
“서둘러야 할 거다.”
“…….”
피터 파커는 메이와 토니 스타크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스타크의 움직임이 좀 빨랐다. 커다란 가방을 등에 맨 작은 거미가 질질 끌려간다. 숙모는 아무것도 모른 채 손을 흔든다. 파커는 여기서 토니 스타크의 손을 뿌리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저…근데.”
“왜?”
“스타크 씨가 여긴 어쩐 일로.”
“오늘 업스테이트 오는 날이잖아.”
“그건 그런데…….”
“…….”
“왜? 뭔가 잘못된 것이라도 있어?”
“아뇨.”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하기만 한데 뭐라 콕 집어낼 수 없었다. 그렇게 아차 한 순간 차 뒷좌석에 밀어 넣어진다. 제 몸만 한 가방을 든 채 안쪽으로 굴러 들어간 피터는 눈만 깜박이면서 토니를 바라본다. 당연한 듯 그 옆자리를 차지한 토니가 운전석을 툭툭 두드린다.
“…….”
피터가 눈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콕 박혀 있는다. 익숙한 뒷모습을 보아하니 앞에 있는 사람은 해피였다. 당연한 소리이긴 했다. 토니 스타크의 경호실장이니 여기에 같이 왔을 것이고. 그러니까. 음. 피터는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조그만 녀석이 뭘 그렇게 생각을 해?”
“네? 제가 뭐요.”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
“그러니까 얌전히 좀 있으라고 했지.”
얌전히 있던 저를 뒤흔든 쪽은 토니 스타크 씨인데요. 억울함이 절절하게 배어 나온다.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업스테이트였는데. 약속한 날까지 얌전히 기다렸을 뿐이었다. 그런 고뇌는 스타크씨한데 별로 큰일이 아닌 듯싶었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많이 했지.”
“…….”
“버스며 갈 곳이며.”
“…….”
“많이도 찾아놨던데,”
“그거야!”
“그거야.”
“그거야…….”
피터는 말끝을 흐린다. 내가 이 이야기를 스타크 씨한테 했던가. 아닌가. 이젠 그것조차 헷갈린다. 가방을 끌어안은 손이 꼼질 거리며 당황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했다. 토니는 그런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지켜볼 뿐이었다.
“역시 스타크 씨한테 그거 말 안 한 거 같아요!”
“응?”
“제가 언제 어떻게 업스테이트에 간다고 말 안 했잖아요.”
“그래. 뭐 나한텐 말 안 했지.”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알고 여기 왔냐. 이걸 묻고 싶은 거겠지.”
“…그렇죠.”
“네 녀석 머릿속은 훤하지.”
“…….”
“그걸 하기 전에 좀 더 빨리 움직였을 뿐이야.”
“…….”
약간 이상한 말이 끼어든 것 같지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역시 억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며칠 동안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한 번에 해결해줄 거였으면서. 약간 억울해진 입술이 쭉 튀어나온다.
“그래서. 싫어?”
“아뇨. 그렇다기보다.”
“…….”
“자꾸 제가 어려 보이잖아요.”
“어린 거 맞는데?”
“…….”
“넌 그냥 그렇게 있으면 된다.”
“지금은 히어로 훈련하러 가는 거잖아요!”
“그것도 맞지.”
“…….”
“그냥 그렇다는 거야.”
“스타크 씨가 자꾸 절 흔들어요.”
“내가?”
“…네.”
“자꾸 기대하면 안 되는데, 이렇게 쉽게 쉽게 해결되는 거에 익숙해지는 것도 안 좋고.”
“기대를 해?”
“기대하죠. 안 해요?”
“모르겠네.”
정말. 또 속았다. 피터는 어색하게 시선을 바깥으로 옮긴다. 쉭쉭 지나가는 풍경이 눈에 맺힌다. 이렇게 한참 달리면 업스테이트에 도착하겠지.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면 히어로들이 있을 거고. 그러면. 여기까지 생각하던 도중 가볍게 차체가 흔들린다.
“어이쿠.”
“…….”
“도로가 안 좋네. 무슨 일이 있나.”
“…….”
약간 가까워진 둘 사이의 거리는 아직 어색하기만 했다. 피터는 숨을 죽이며 토니 눈치를 본다. 원래 이런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토니가 보이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부담감인지. 동경인지. 그것도 아니면 묘한 애착인지. 아직 둘은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업스테이트에 가면.”
“네. 네!”
“엄청난 훈련을 하게 될 거야. 그땐 힘들다고 울어도 안 봐줘?”
“당연하죠! 저도 뭐…….”
“히어로라고?”
“네. 히어로. 그거 맞아요. 맞죠!”
“한참은 어린 녀석이.”
“…….”
넌 언제쯤 어른이 될 거냐고 묻던 토니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이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 작은 거미만 보면 자꾸 잔소리하게 된다. 어린 녀석이라서. 스스로 그렇게 말해보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숙모는 제가 방학 맞이 인턴 학습을 하러 간 줄 아세요.”
“그렇겠지. 그래서 내가 직접 왔잖아.”
“보통 그렇게 큰 회사는 인턴 한 명을 데리러 오려고 거물이 움직이진 않거든요.”
“그런가?”
“물론이죠. 이렇게 큰 회사에서. 높은 사람이 왜 여길 와요.”
“…….”
“자동차를 대동하고서 말이에요.”
괜히 말끝이 기어들어 간다. 반쯤 농담으로 말한 거지만 정말 이상하긴 했다. 평생 가도 TV에서나 얼굴을 볼 것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덥석 찾아와서 차로 일개 고등학생을 모셔간다. 정말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좋은 점이 없었다.
“그래서 싫어?”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스타크 씨.”
“그럼 왜 그렇게 낯을 가려.”
“스타크 씨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죠!”
“내가? 왜?”
“저 놀리는 거 재밌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그럴지도 모르지.”
“진짜 너무 한다. 당연히 주변 보는 눈도 있고, 괜히 신경 쓰이니까 그러죠.”
“정말 그런 걸로?”
“…그리고 스타크 씨 시간도 뺏는 거 같고, 음. 혼자서도 갈 수 있는데, 저도 다 컸는데.”
“정말 어린애가 할 만한 말이다.”
“…….”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눈치를 보다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러나저러나 이미 차에 탔고, 불편하다고 해서 멋대로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혼자 업스테이트를 찾아가는 편이 낫지. 이렇게 편하면서 불편한 자리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졸리면 그냥 한숨 자 둬.”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애들은 잠이 많다며. 그리고 멀미를 할 수도 있지.”
“저 멀미 안 하거든요.”
“당장 도착하면 힘들 거란 이야기야.”
“…….”
“자라. 그냥.”
슬쩍 손으로 어깨를 끌어당긴다. 펄쩍 뛰어오르는 몸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 녀석은 너무 예민해서 이렇게 움직이는 것도 빠르게 알아챈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능력이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몸속에 들어있는 거미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토니 옆에선 조금 누그러진다.
‘안 졸리다 더니.’
토니는 속으로 웃는다. 몇 번 어깨를 토닥거리자 빳빳하게 굳어있던 몸이 조금씩 말랑하게 늘어진다. 그러더니 조그만 녀석은 잠을 이기지 못하고 가방을 껴안은 채 고개를 푹 숙인다. 이 정도 되면 어깨에 기대도 될 텐데,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닌 모양이었다.
생각대로 가까워진다면 이렇게 끙끙 앓을 필요가 없을 테니, 그저 인간 군상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토니는 동그랗게 몸을 웅크린 채 자는 녀석을 바라보다가 따라서 눈을 감았다. 이 짧은 평화가 지나면 또 시끄러운 사회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냥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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